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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laire Kim Jun 14. 2024

1300만원짜리 목소리

AI라는 우르슬라

<AI라는 우르슬라>


40년 넘게 살면서, ‘운 좋게’ 뭘 얻어 본 적이 없다. ‘세상에 공짜는 없다’가 삶의 신조일 정도로 대가를 바라지 않는 호의는 다 ‘사기’라고 여기며 살았다. 로또는 2년전인가 남편이랑 냉전일 때 홧김에 처음 사봤는데, 5천원 나왔다. 그 뒤로 쳐다도 안 본다. 


그랬는데 열흘 전쯤, 1달 전에 보낸 목소리 샘플이 채택 됐다면서, 이름만 들으면 아는 글로벌 테크 기업이 하는 TTS프로젝트에 한국어녹음 성우로 참여하겠냐고 메일이 왔다. 클라이언트인 기업과 관련된 사항을 누설하지 않겠다는 NDA를 작성하자마자 시간당 녹음 rate를 알려달라고 하더니, 견적서가 왔다. 보통 성우가 견적을 먼저 보내는데, 이런 프로젝트는 예산이 정해져 있어서 정해진 가격으로 준다고 했다.  


아일랜드 더블린의 사무실에서 이번 프로젝트를 위탁 받아 진행한다는 담당자는 G로 시작하는데, 스펠링이 너무 어려워서 제대로 읽기도 어려웠다. 그래도, 시종일관 친절했고 내가 한 질문에 자세히 답변해주는 태도를 보였다. 이름은 못 읽어도 이 아일랜드 언니가 (돈 주면 다 언니) 보낸 메일에는 녹음비와 저작권료 (내 목소리가 영원히 고객의 회사 자산으로 귀속 된다는 사용료)를 구분한 네 칸의 귀여운(?) 표가 달려왔는데, 거기 적힌 금액이 전혀 귀엽지 않았다.

 

      녹음료만 만불이 넘었다. 저작권료까지 하면… 천정을 뚫었다. 


만불이면, 지금 환율로 천3백만원이 넘는 돈이다. 물론 10,000문장을 녹음해야 하니, 녹음시간만 40시간 정도 된다. 눈꼽을 떼고, 다시 봤다. 알음 알음 듣기론, KT의 Genie 같은 전문 성우 목소리 녹음에 몇 천만원 또는 그 이상 지불한다고는 들었는데, 이제 목소리를 팔아서 한 탕하고 이 바닥을 뜰까… 잠깐 생각했다.

 

AI때문에 매일 매일 일거리가 줄어든다고 욕을 해댔다. 딥러닝인가 뭔가가 나와서 목소리를 공짜로 쓰게 되기 전까지 하던 소소한 작은 규모의 녹음은 다 죽었다. AI가 함부로 목소리 카피 못하게 법제 보완을 해야 한다고 해외 성우 노조협회에서 목소리를 낼때, 좋아요도 누르고 응원 댓글도 달았다. 좋아요는 백개 누르고 싶었다. 그런데, 누가 나한테 천만원이 넘는 돈을 줄 테니 너도 AI 훈련시키는 프로그램에 source가 되는 목소리 제공할래 물어보니, 사실 약간의 가책은 있었지만 ‘ 내가 안 한다고 AI가 없어지나…’, ‘내가 안 하면 누군가가 할 텐데, 이것도 경쟁에서 뽑힌 건데 안 하는게 바보 아닌가’라고 결론을 내리는데 몇 분 걸리지 않았다. 


그래도, 우르슬라에게 목소리를 판 인어공주(?)가 된 기분이 완전히 가시진 않았다. 인어공주는 목소리를 잃고 다리를 얻었는데, 나는 왕자님과 ‘제대로 된’ 해피 엔딩을 가질 수 있나? 보상이 큰 일을 앞에 두고 온갖 불길한 생각을 해대야 하는 버릇을 못 버리고 유치찬란한 상상을 하면서 마치 이 비밀이 새나가면 큰일 날 것 같은 기분에 남편에게만 조용히 말했다. 


평생 월급쟁이로만 살아봤지, 단타성 프리랜서 일이라곤 해본 적이 없는 남편은 녹음 단가를 듣고, 원화로 머리에 인식이 되자 그 작은 눈이 극도로 커지더니 레이저가 뿜어져 나왔다.

‘내가 맨날 욕하던 AI관련된 프로젝트인데, 결국 나는 내 살을 깎아 먹는 짓이다’ 라고 말했지만, 남편은 내가 안 해도 누군가는 낼름 받아서 할거라며, 나의 논리와 0.1도 다르지 않은 얘길 해주었다. 이제 나는 회사도 그만두고, 녹음 끝나면 한번 도 못 타본 비즈니스 석 쿨하게 결재해서 가열차게 여행 다닐거라고 반 농담, 반 진담을 해대며 우리 부부는 잠시 행복해졌다. 


그리고, 이틀이 지나서, 아일랜드 더블린에서 메일이 또 왔다. 

녹음시간이 40시간이 넘으니, 스튜디오를 대여해서 스튜디오 녹음을 진행해도 되느냐, 스튜디오 렌탈 비용도 비용 처리를 해줄 수 있느냐, 예산에서 벗어난다면 나머지 차액은 내가 부담하겠다 라고 보낸 내 질의에 스튜디오 견적을 먼저 보내면 경비처리를 해 줄 수 있는지 알아보겠다는 답변이었다. 

사실, 작년 딱 이맘때 3일 이상 하루에 3시간 이상씩 집에 있는 스튜디오에서 녹음을 하고 난 후에, 이석증이 생겨서 그 뒤 집에 있는 녹음실에서 1시간 이상 앉아 녹음하는 것이 너무 공포스러워졌다. 1년을 말도 못할 난리를 치른 후에 이제 겨우 어지럼증에서 벗어났는데 환기가 잘 안 되는 녹음실에서 열흘 이상 작업할 생각을 하니 아찔해졌다. 


홍대 근처에서 녹음실을 갖고 있는 친 오빠에게 부랴부랴 연락을 했다. 사실, 회사 그만두고 프리랜서로 일하면서 지금까지 성우 일 할 수 있게 전폭적으로 지원한 오빠에게 큰 건수가 생기면 늘 제대로 컨설팅 비용을 주고 싶었다. 잔챙이 녹음 수정료 말고, 늘 경제적으로 쪼들리는 오빠에게 무언가 제대로 보상을 해주고 싶었다. 시간당 3만원 받고 천안까지, 대학 실용음악과 외부 강사로 가르치러 다니는 오빠에게 누군가는 그 재능에 합당한 비용을 지불해야 한다고 늘 생각했다. 


그래도, 통장에 돈이 꽂히기 전까지는 ‘제안 단계’의 긴장을 놓치면 안 된단 생각에 오빠에게 정확한 금액을 얘기하진 않았다. 무엇보다 혹시나 일이 잘 안될 경우, 오빠가 실망하게 될까 봐 그게 더 싫었다.

아이들과 태안에서 조개를 캐고 파김치가 되어 돌아오는 차 안에서 한 단어 한 단어, 수 놓듯이 공들여 선택해서 견적 이메일을 보냈다. 


아일랜드에서 다시 메일이 오기 전까지, 앞으로 녹음을 어떻게 ‘성공적’으로 해낼까 계획을 짜느라 밤에 잠도 안 왔다. 당장 내일 새벽에 눈뜨면 헬스장부터 가야지. 예전 날 가르쳐준 성우 선생님들이 성우 일은 진짜 체력전이라고, 운동 열심히 해야 한다고 하신 것이 이제야 실감이 나면서 지금부터 근력을 키우면 작년처럼 이석증이 생기진 않을 거라고 행복회로를 마구 돌렸다. 


돈이 들어오면 어디에 쓸까, 대출금 이자는 조금만 보태고, 그 동안 후원하고 싶었던 교회와 기관에도 통 크게 쾌척을 하고, 아이들 데리고 여행을 갈까, 마치 로또 2등 당첨복권을 손에 쥔 사람 인양, 머릿속에서 ‘하고 싶은 것’들의 거품 풍선이 빨대로 컵 안의 우유를 불어대는 것처럼 생겨났다.    


10년 가까이 녹음을 했는데, 이런 일이 생기다니… 올해는 안 되는 일 투성이라고 생각했던 상반기가 다 보상 받는 기분이었다. 


그러다가도 그동안 무수히 제안 단계에서 날아가버린 이전 일들이 생각나면서 남편에게 ‘여보, 우리 정신 차려야 해. 통장에 돈이 꽂히기 전까진 알 수 없는 일이야.’ 라며 남편에게 하는 말인지, 나에게 하는 말인지 모를 말을 주억거렸다. 그리곤 아일랜드의 G언니에게서 온 메일을 읽고 또 읽었다. 


어마어마하게 큰 테크 기업의 고객을 대리하는 에이전시가 시원찮으면 중간에 일이 골치 아파질거라면서 중개를 하는 에이전시를 구글에서 파고 또 팠다. 나스닥에 상장된, 통번역 분야 시장 1위 기업이었다. 문제가 될 일은 없을 거라고 혼자 꾹꾹 새겼다.


그리고 답장이 왔다. 


아일랜드의 G언니는 예의 그 친절하고 자세한 말투로, ‘고객이 갑자기 프로젝트 중단’을 통보했다고 했다. 자신의 회사 문제가 아니라 고객 측에서 정한 일이라 왜 중단했는지 자기들은 알 길이 없다 (no visibility)고 했다. 그리곤 내가 보내준 스튜디오 견적과 내 녹음실 상황은 잘 알았으니 다음에 녹음 프로젝트가 생길 때 고려하겠다는 하나 마나 한 얘기를 덧붙여놨다. 


그리고, 아직까지 ‘프로젝트가 재개될 가능성은 없는지, 그래도 지금까지 너와 너희 회사가 해준 서포트에 감사한다’고 쓰린 속으로 써서 보낸 내 메일에 일언반구 답이 없다. 


약 일주일간 무섭게 커지기만 하던 행복한 상상의 풍선이 결국 터져버렸다. 


내 인생이 그렇지 뭐. 


온라인으로 좋은 기회랍시고 오는 것들이 다 그렇지 뭐.


자기들이 필요한 정보만 쏙 빼먹고 일이 안될 모양이면 매몰차게 모든 연락을 끊어버리는 전형적인 외국계 에이전시가 그렇지 뭐. 


여기까진, 그 동안 프리랜서로 무수히 많은 지원과 거절을 경험한 나의 실망이고, 음악 프로듀서이자 작곡가로 아이돌 곡을 써서 보내며,(곡이 아이돌 기획사에게 채택되기 전까지 데모곡의 작곡료는 없다. 모조리 재능 기부 일 뿐) 나보다 훨씬 더 많은 거절과 좌절을 경험한 친 오빠에게는 또 다른 결의 ‘거절’이 되었다. 


오빠가 실망할까 봐 정확한 견적도 얘기하지 않았는데, 오빤 상황이 정말 어려운 것인지 혼자서 또 나와 비슷한 상상의 풍선을 불고 있었다. 전화로, 프로젝트가 취소됐단 얘길 하면서 오빠가 쥐고 있는 행복한 풍선들의 빵빵한 배를 내가 커다란 바늘로 다 터트리는 느낌이 들었다. 


프로젝트가 자빠졌단 이메일을 확인한 다음 날 아침, 오랜 시간 준비하고 공들인 시험에 낙방한 기분이 들었다. 7일간 부풀었던 마음의 풍선이 다 터지고 나자, 씁쓸하고 망측한 모양의 누더기를 마음에 얹은 채, 종종걸음으로 아이들을 깨우고, 아침을 해 먹이고, 머리를 빗겨서 학교에 보냈다. 


헛헛한 빈 속에, 아이스 라테를 들이 부으면서 거실 밖 풍경을 보며 생각했다.


이번 일만 그런 것이 아니라, 프리랜서로 일하는 내내, 타인에게 인정받고 ‘간택’돼야 하는 상황에서 오는 스트레스가 제일 컸다. 지나보니, 내가 하고 싶은 일, 하고 있는 일은 ‘공들여서’ 무언가를 하고 있다는 것 자체를 잊어버려야 할 만큼 보상이나 열매를 기대하면 안 되는 성질의 것이었다. 


내가 그만큼 좋아서 선택했으니 업이 원래 이렇게 굴러가는 것을, 이제는 좀 덜 기대하면서, 스스로를 덜 볶아 대면서 지내야 하지 않을까…


동시에 내 인생에서 노력한 것과 비교 할 수 없을 만큼 ‘공짜로’, ‘어마어마한 운’으로 주어진 것이 뭐가 있나 생각해봤다. 아무리 생각해도, 지금 내 옆에서 눈만 마주치면 ‘안아줘’를 시전 하는 똥 강아지들 밖에 없다. 딸 만 둘 이길 간절히 원했고, 거의 다 계획한 시점에 별 고생 없이 생겼고, 작년에 둘 째 코에 구슬 넣어서 응급실 간 것 말곤 10년 넘게 키우면서 아파서 응급실 한번 간 적이 없었다. 태어나서 지금까지 까다로운 기질에, 예민 덩어리로 꾸준하게 엄마를 힘들게 하나, 크게 아프지 않고 잘 자라줘서 이것보다 더 한 ‘운’을 바라면 벌받는 것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든다.


여전히 속은 쓰리지만, 역시나 세상에 거저 주어지는 것은 하나도 없으며, 지금 내 손을 꼭 잡고 걷고 있는 아이들이 2024년 초여름의 선물이란 생각을 하면서 아이들에게 먼저 산책을 가자고 했다. 단지 내 인공 폭포에 살고 있는 청개구리를 찾아 깡총거리는 아이들을 보면서 기대하고 실망하고, 다시 일어나는 일상이 계속 되는 것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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