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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유리정원> 리뷰

순수와 광기의 줄다리기


<유리정원>은 대중(오락)성은 없지만, 인상깊은 영화다. 현실과 공상, 순수와 광기, 아름다움과 잔혹함을 넘나드는 전개는, 국내에서 쉽사리 볼 수 없었던 신선함을 제공한다.

캐릭터와 소재부터 참신하다. 인공 혈액을 연구하는 과학도 '재연'과 좀처럼 빛을 보지 못했지만 베스트셀러 작가의 반열에 오르게 된 '지훈'. 이들의 만남 이후로 펼쳐지는 미스터리한 사건들을 지켜보는 과정이 흥미롭다. 열 다섯 살 이래로 한쪽 다리가 자라지 않은 재연과 한쪽 근육의 마비 증상을 보이는 지훈은 왠지 모르게 닮았다. 또 하나 비슷한 점은, 둘 모두 사회로부터 외면당한 시기가 있었다는 점이다. 이 결핍 많은 인물들의 만남은 행복한 결말로 이어질 수 있을까.



재연은 홀로 숲 속의 유리정원에서 인공 혈액으로 임상 실험을 하고, 지훈은 그런 재연을 훔쳐본다. 유리정원 속에는 그 주변을 둘러싼 환경처럼 녹색 혈액들로 가득하다. 관객은 지훈의 시선이 되어 재연의 미스터리함을 훔쳐보게 되는데, 이 과정이 흥미롭다. 또한, 이 과정에는 영화가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들이 스며들어있다.

재연의 유리정원은 그녀가 유일하게 열정과 강인함을 발휘할 수 있는 공간이다. 결핍을 안고 있는 재연이 일에 대한 열정과 사랑의 힘을 발휘할 수 있는 자연의 세계 유리정원. 재연은 말한다. 자신만의 이득을 위해 타인을 해치기 일쑤인 인간들과 달리, 나무들은 가지를 뻗을 때 다른 나무들을 해치지 않기 위해 노력한다는 맥락의 대사가 인상적이다. 또한, 영화에서 연거푸 등장하는 대사인 "순수한 건 오염되기 쉽죠"는 재연이라는 캐릭터를 관통한다.

유리정원의 '유리'처럼, 재연은 언제든 깨지기 쉬운 순수한 영혼이었다. 하지만 그녀는 오염되고, 나아가 돌이킬 수 없는 상황에 직면하고 만다. 현실과 공상을 오가며 펼쳐지는 영화는, 특유의 분위기를 갖추고 있다. 또한, 미스터리한 분위기가 영화가 끝날 때까지 밀도있게 이어지는 힘 또한 칭찬할 만하다.

독특한 캐릭터 재연 역을 맡은 문근영의 역할이 돋보인다. 더불어, 그녀를 신비롭게 만들어준 영상미도 좋다. 하지만 대중성은 약하다. 극적인 위기나 갈등을 그리기보다는, 재연과 지훈의 감정선에 집중한 영화이니까.

어른들을 위한 한 편의 잔혹 동화 같은 <유리정원>은 인간의 이기심을 지적한다. 그래서일까. 기대 없이 영화관을 찾았던 필자는 꽤 흡족한 감상을 품에 안고 귀가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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