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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살인자의 기억법>

주인공 병수는 열다섯 살에 아버지를 죽였다. 자신에게는 물론, 가족들에게 폭력을 휘두르던 아버지를 우발적으로 죽인 것이다. 아버지의 폭력성을 고스란히 이어받은 병수는 달리 죄책감을 느끼지 못한다. 병수의 살인은 한 번에 그치지 않는다. 자신의 기준에서 죽어 마땅한 사람들을 하나 둘씩 죽여나간 것이다. 그 행위에 대해 병수는 '쓰레기 처리'라고 표현했다.



살인을 중단하고 동물 병원 원장으로 살아가던 병수. 하지만 어느날 교통사고 후유증으로 알츠하이머 치매 판정을 받는다. 가까운 기억부터 점차 사라지게 되는 병수의 증상. 결국 그에게 최종적으로 남게 되는 것은 무엇일까.

병수의 치매 뿐 아니라 심각한 상황이 또 하나 더 있다. 병수 외 살인범이 한 명 더 존재한다는 거다. 태주라는 인물을 본 순간 그가 살인범임을 직감한 병수. 그런데 태주가 어느날부터 병수의 딸에게 접근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때부터 관객은 서스펜스와 미스터리를 오가는 상황에 빠져들게 된다.



이 영화는 제시된대로 보면 안 된다. 관객들은 혼란스러운 상황들에 대한 나름대로의 추리를 해나가며 봐야만 한다. 특히, 그 혼란은 결말에서 극대화될 터. 영화의 시작과 끝을 장식하는 공간처럼, 긴 어둠 끝에 보이는 가느다란 빛처럼 손에 잡히지 않은 결말을 제시한다.

살인의 습관과 그보다 앞선 본능. 결국 병수의 기억과 몸에 남은 것들이다. 폭력성과 생활에 반영된 습관은 기억을 잃어가는 병조차도 무색하게 만든다. 폭력은 타고난 산물일까, 경험으로 쌓여가는 것일까. 잔인하고도 섬뜩한 사색을 하게 만드는 이 영화는 동명의 원작 소설을 바탕으로 제작됐다. 하지만 원작과 영화는 다른 궤도를 보여준다. 영화는, 매체와 장르의 특성에 걸맞게 사건들의 당위성을 부여했다. 그 당위성은 '부성애'라는 이름의 행위다. 한편으로는 클리셰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했지만, 그것이 없었다면 관객들의 만족도를 높이기는 힘들었을 것이다.



영화 <살인자의 기억법>에서 가장 인상깊었던 면은 설경구의 연기다. 믿고 보는 배우인 그는 역시나 명연기를 선보였는데, 특히 얼굴 한쪽면의 경련을 보여줄 땐 위기와 섬뜩함이 보는 이들에게 고스란히 전해질 정도였다. 원작을 그대로 옮긴 것이 아니기에, 영화만의 특색을 만나볼 수 있을 것. 두 매체의 이점을 비교하며 접해보는 것도 의미있는 활동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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