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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그들이 진심으로 엮을 때>

추운 계절, 이 영화로 위로받을 수 있을 것


외로운 사람들을 한데 묶는 데 탁월한 감독 오기가미 나오코. 그래서인지, 그녀의 영화들은 언제나 따듯하고 든든하다. 5년만에 만난 <그들이 진심으로 엮을 때> 역시, 제목에서 느껴지는 것처럼 '엮임의 힘'을 보여준다.

실제 트렌스젠더들의 이야기를 모티브로 제작된 이 영화는, 성(性), 가족 등에 대한 고정관념을 깨부순다. 부서진 고정관념들은 따듯하고 진심 어린 마음을 통해 새로운 형태로 봉합된다.

<그들이 진심으로 엮을 때>는 '진정한 가족의 의미는 무엇일까'에 대한 답을 찾아가는 여정이다. 엄마의 사랑을 받지 못한 채 매일 삼각김밥으로 끼니를 때우는 11살 소녀 토모의 불행한 상황이 트렌스젠더 린코를 만나 변해가는 과정을 통해 관객들은 자연스럽게 그 답을 자연스럽게 깨닫게 될 것이다. 토모와 린코의 만남은, 집 나간 엄마 때문에 토모가 외삼촌과 함께 살게 되면서부터 시작된다. 외삼촌의 연인이자 동거자인 린코는 토모를 보자마자 애정과 정성을 쏟아붓는 등 진심을 표한다. 그런 태도에 토모 역시 어렵지 않게 마음을 연다. 린코에 대한 편견은 있을 수밖에 없다. 외형은 여성이지만, 아직 완전히 남성을 벗지 못한 토모에 대해 사람들은 '이상하다'며 비난한다. 하지만 이같은 시선에서 결코 벗어날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



차갑고 따가운 시선에서 벗어나기 위한 린코만의 대처 방법은 뜨개질이다. 묵언수행을 하듯 그녀는 입을 닫은 채 열심히 남근 모양의 주머니를 만들어낸다. 주머니 만들기는 린코 나름대로의 통과 의례다. 108개의 주머니를 완성해 태운 다음, 사회적으로 인정받는 여성으로 거듭나겠다는 개인적인 의례인 것. 여성의 정체성을 안고 있지만 남성의 외형을 타고난 이들(그 반대의 경우 포함)은, 린코의 경우처럼 '죄인'으로 치급당하기 일쑤다. 정작 그들의 아픔은 이해하려고도 하지 않은 채, 자신들과 다르다는 이유로 비난하고 멀리하려는 사람들의 생각과 행동에 대해 영화는 묵직하게 비판한다. 나아가, 진심이 있다면 어떠한 형태로든 가족이 될 수 있다고 덧붙인다.

물론, 영화는 '지극히 현실적'인 결말로 이어지지만 이 작품은 다양한 성찰을 고무시킨다. 감독은 중간자적인 입장에서, 성 소수자와 그렇지 않은 사람들의 입장 모두를 다룬다. 한쪽의 입장을 내세우거나 찬양하기보다는 '모두'의 이야기를 펼쳐냄으로써, 성 정체성이라는 잣대와 벽을 허물어버린다. 그 후, 오로지 진정한 가족의 의미에 대해 생각하게 만들어준다. 토모와 린코의 관계와는 대조적인 가족의 형태로는, 혈육 관계이지만 자식을 방치하거나 이해하려 들지 않는 엄마와 자식 간의 모습이 보여진다. 과연 여러분은 두 가정을 지켜보면서 어떤 쪽에 더 마음이 끌렸는가?



진정한 가족의 의미를 새기는 것, 성 소수자에 대한 편견을 줄이고자 하는 것 외에 <그들이 진심으로 엮을 때>는 개인의 정체성, 즉 한 사람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태도에 대해서도 일러준다. 영화 속 일화인, 트렌스젠더를 희망하는 아이에게 가짜 가슴을 만들어 준 엄마의 사례를 보면 알 수 있다. 이 사례는 실화다. 이 엄마의 태도처럼, 우리는 타인의 정체성과 가치관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또한 존중하는 자세를 잃지 말아야 할 것이다.



영화 속에 끊임없이 등장했던 행동인 뜨개질과 그로부터 완성된 따듯한 결과물들처럼, 작품이 지닌 온도는 따듯했고 감촉은 부드러웠다. 털실이 전한 수많은 메시지들은 차갑고 건조한 계절인 이맘때와 더할 나위 없이 잘 어울렸다. 오기가미 나오코 감독의 영화들은 언제나 우리들을 보듬어준다. 그리곤 더 밝은 미래가 다가올거라는 희망도 선사한다.

<카모메 식당>, <안경>, <고양이를 빌려드립니다> 등 오기가미 나오코 감독의 작품들이 내게 선사했던 울림은 가히 강렬했다. 이번 영화는 전작들보다 보다 풍성한 소재들과 이야깃거리들로 구성돼 있어서 마니아층이 아니어도 충분히 즐길만한 작품이었다고 생각한다. 영화를 보는 내내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몇 작품들이 오버랩됐는데, 토모의 암울한 상황을 마주했을 때는 <아무도 모른다>가, 토모와 린코의 관계, 그 외 대조되는 가족들의 상황을 마주했을 때는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가 떠올랐다.

이 영화를 본 후, 나는 가족들을 어떻게 대하고 있는가, 에 대해 곰곰이 돌아켜볼 수 있었다. 진정한 가족의 '조건'은, 그들을 객관적으로 대하고 그들을 인정, 존중하는 자세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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