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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7> 후기


부끄러운 역사에 대한 영화들이 줄곧 쏟아지는 가운데, <1987>이 한 몫 제대로 해냈다. 분노에 분노를 유발케 만드는 이 영화. 실존 사건, 인물을 바탕으로 만들어진만큼 감정이 북받쳤다.


올 줄 몰랐던, 올 수 없을거라는 생각들이 만연했던 '그 날'이 드디어 왔다. 시민들의 용기가 모여 잘못을 고쳐 잡아나가는 모습은 예부터 이어져왔다. 지금까지도 진행 중인 올바른 의식과 용기 있는 행동들. <1987>에서 다룬 주된 인물은 박종철, 이한열 열사들이다.


영화는 스물 두 살의 한 대학생의 죽음으로부터 시작된다. 박종철 열사의 고문에 의한 죽음을 숨기고자 박처장은 서둘러 화장을 진행하려 한다. 화장을 하기 위해 최검사를 찾아 도장을 받으려 하지만, 최검사는 사인을 밝히기 위해 부검을 밀어붙인다. 비협조적인 최검사로 인해 경찰은 초조해하기 시작한다. 거기에 단순 쇼크사로 몰아가는 경찰 측 말에 기자들까지 의문을 품고 사건의 진상을 밝혀내려 든다.



부검 소견은 물고문 도중 질식사. 이제 경찰은 고문 현장에 있던 둘만 구속시켜 사건의 규모를 축소시키려 든다. 하지만 이 과정에는 협박과 억압 등의 부조리가 존재한다. 박처장은 자신을 믿고 따랐던 조반장을 협박하는데, 이 과정에서부터 깊은 분노가 시작된다. 나쁜 짓을 한 이에게 연민이 들기란 쉽지 않은데, 필자는 조반장의 분노 섞인 눈빛을 지켜보는 내내 가슴 저릿함을 느꼈다. 또한, 자신의 손으로 인해 죽어나간 사람들을 생각하며 고통스러워하는 자조적인 말은 그의 심정을 정면으로 보여준다. 조반장은 억울함을 호소한다. 그가 억울함을 호소하는 이유는 '진짜 살인자'들이 있기 때문이다. 그 진실이 밝혀지는 곳은 교도소. 경찰과 교도관만이 아는 진실이 갇히지 않고 알려지는 데 힘을 쓴 인물은 교도관 한병용이다. 그는 자신의 조카 연희에게 부탁해, 재야인사에게 진실을 전하고자 한다. 단순히 삼촌의 부탁만 들어주려했던 연희도 이한열을 만난 이후, 가치관이 바뀌게 된다.



이한열 열사. 중반부 이후에 등장하는 용기 있는 인물이다. 박종철 열사의 죽음에 대해, 그를 살려내라며 시위 운동을 주도한 인물 이한열. 그의 안타까운 죽음은 충격 그 자체다. 정의의 외침이 한 순간의 총질로 인해 사라지고 마는 현실. 받아들일 수 없는 이 상황이 우리의 역사였다.



<1987>은 <택시운전사>의 연장선에 있는 작품이다. 한데, <택시운전사>보다 아프고 슬프다. 묵직하게 엮어낸 이야기이지만, 충분한 상업성을 갖췄다. 내로라하는 연기파 배우들을 만나는 반가움과 속도감 있는 전개는 감상자들의 몰입도를 드높이는 데 성공했다.


묵직한 울림, 감상의 재미. 게다가 역사를 다룬 의미있는 작업. 이 요소들의 합이 이뤄낸 <1987>은, 다사다난했던 2017년을 마무리하고 새해를 맞이하는 이 시점에 감상하기에 걸맞은 작품이다. 정권이 바꼈고, 그에 따라 사회와 구성원들도 조금씩 바뀌고 있다. 하지만 예나 지금이나 인간의 내적 가치는 변하지 않는다. 옳고 선한 것, 정의를 지향하는 것. 이는 시대와 세대를 관통하는 인간적 가치다. 이것을 지향하는 모든 사람들의 힘이 사회와 국가를 바꿀 수 있음을 다시금 확인시켜 준 영화 <1987>. 영화관의 엔딩 크레딧이 끝날 때까지 대부분의 관객들이 자리를 뜨지 못한 광경을 보며 이 영화의 힘을 확실히 느낄 수 있었다. 영화가 끝나고도 여운이 가시질 않았다. 전두환 정권. 우리는 반드시 그것의 그릇됨을 인지하고 다시는 그런 날이 오지 않기 위해 노력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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