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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울(soul)을 터치'하는 영화 <우동>

지난 여름, 나는 일본 다카마쓰로 여행을 떠났었다. 그때의 좋은 기억들을 아직도 생생히 기억하고 있는데, 영화 <우동>이 그 좋은 기분을 한층 더 북돋워준 역할을 했다. 사실, 나는 이 영화의 감상이 두 번째다. 처음 감상했을 때가 대학생 시절이었는데, 당시에는 단지 '오락성은 부족하네' 정도로만 느꼈었다. 한데, 시간이 흐르고 영화 속 배경이 된 곳을 가본 경험에 의해 영화에 대한 감정이 달라졌다. 역시, 문학·예술 작품들은 그들 자체는 변하지 않아도 대하는 사람들의 경험이나 감정 상태에 따라 달리 해석된다는 것을 다시 한 번 인식할 수 있게 됐다.


영화는 우동의 이야기로 출발하지 않는다. 주인공 코스케의 스탠딩코미디 무대부터 보여진다. 코스케는 다카마쓰 시골 지역의 우동집 아들이지만, 코미디언으로 출세하겠다는 꿈을 안고 뉴욕으로 떠나왔다. 일종의 '아메리칸 드림'을 꿈꾼 청년이다.


하지만 그에 대한 평가는 냉담했다. 작은 무대조차 설 자리를 잃은데다, 빚까지 지게 된 코스케는 고향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게 된다. 그렇게 6년 만에 고향으로 돌아온 코스케는 우연히 한 지역 잡지사에 취직하게 되고, 그때부터 영화의 주 소재인 우동의 모습이 드러나게 된다.


코스케가 취직한 잡지사는 지역이 정보를 제공하는 타운지를 내놓는 곳이다. 인구수가 적은데다, 별다른 특색 없는 타운지는 팔릴 리 만무하다. 죽어가던 잡지사를 살리기 위해 코스케가 발굴한 아이템! 바로 지역의 소울 푸드인 우동 맛집들을 소개하자는 것이다. 이 영감은 서점에서 얻을 수 있었다. 코스케가 타운지 영업을 위해 서점에 방문했을 때 여행을 하려던 사람들이 우동에 대한 언급을 했지만, 그에 대해 소개된 책(잡지)이 없었던 것이다. 이렇게 블루오션을 발굴한 코스케는 기자 쿄코와 함께 '우동 투어'를 시작하게 된다.




우동 투어의 과정은 역시나 쉽지만은 않다. 잘 알려지지 않은 우동 가게들을 찾아나서는 것에서부터, 수저와 그릇이 구비돼있지 않아 그것들을 갖고 다니며 먹기까지 해야 한다. 좌석이 비치돼있지 않아, 가게 밖에 서서 먹기까지 하는 우동 투어는 영화의 상당 부분을 채운다. 이 노력 끝에, 타운지는 성공을 거두게 되고 동시에 '우동 붐'까지 불게 된다. 고요했던 시골 마을은 코스케 팀이 의도했던 타운지에 소개된 우동 투어를 직접 체험하기 위해 먼 곳에서부터 비행기를 타고 온 사람들로 즐비하게 된다.

하지만 무언가를 얻으면 잃는 것도 생기게 마련이다. 우동 붐이 불면서, 무질서 등의 단점들이 발생하기 시작한다. 환경의 개선 없이 우동 붐이 일어난 탓에 투어를 제대로 즐기지 못하는 사람들이 생기는가 하면, 사람들로 붐비자 맛과 서비스의 질이 떨어지는 문제, 주차, 쓰레기 문제 등이 불거지기 시작한다. 결국, 문제만 남게 된 상황이 되고 잡지사 사람들은 뿔뿔이 흩어지게 된다.

설 곳을 잃은 듯 보이는 코스케. 하지만 그는 자신이 직접 가업을 이어 우동을 만들겠다고 생각한다. 그 의지를 굳힌 시점에 아버지가 생을 마감하게 되고, 아버지가 아니라면 그 누구도 우동의 맛을 이어갈 수 없다고 판단한 누나는 가게를 정리하겠다고 결심한다. 하지만 가게의 우동 맛을 잊지 못하는 단골들의 끊임없는 접촉 끝에 결국 누나 내외는 가업을 잇게 된다.

소울 푸드는 내면의 기쁨은 더해주고 슬픔으로 인한 허기는 채워주는 엄마 손맛 같은 따듯한 음식을 가리킨다. 우리 모두에게는 소울 푸드가 있다. 코스케 역시, 자신의 소싯적을 돌아보며 아버지와의 추억 때문에 절대 멀리할 수 없었던 우동에 대한 애착이 생기게 된 것이다. 소울 푸드는 맛 뿐만 아니라 추억이 더해진 음식이다. '음식은 추억으로 먹는다'는 말처럼 말이다. 훌륭한 맛에 좋은 추억들이 더해진 음식은 그 어떤 미슐랭가이드 추천 음식들보다도 훌륭하다고 평할 수 있을 것이다.

이렇듯 영화 <우동>은 소울 푸드를 소재로 하여, 감상자들의 내면에 울림을 선사한다. 필자 역시 다카마쓰 사누키 우동의 맛을 본 경험자로서, 영화에 더 공감하며 흠뻑 젖어들 수 있었다. 눈이 희번득 떠질만한 사누키 우동의 탱탱한 면발과 단출하지만 깊은 맛을 자랑하는 육수의 맛은 다카마쓰 여행 시 꼭 경험해보길 권하고 싶다.

영화는 질문한다. '당신의 소울 푸드는 무엇인가요?' 라고. 이 질문 뿐 아니라, 또 다른 질문도 던진다. '당신의 꿈은 무엇인가요?'라고. 코미디언을 꿈꾸던 코스케와 작가를 꿈꾸던 쿄코 등 영화 속에는 '꿈을 가진 자'들이 등장한다. 현실 때문에 꿈을 포기했거나 미뤄왔던 이들도 등장하지만, 영화는 끊임없이 우리에게 꿈을 갖고 그 목적지로 향하라고 넌지시 말한다. 

"꿈은 여기에 없어. 단지 우동만 있을 뿐이야." 코스케가 아버지에게 던졌던 말이다. 우동이 꿈을 이루게 한 기적의 씨앗이었음을 몰랐던 코스케는 많은 것들을 체득하고 다시금 꿈을 향해 도약한다. 꿈(희망)을 꾸지 않는 자는 늙고 만다. 나이가 많아도 꿈을 꾸는 자의 정신은 그 어떤 젊은이들보다 쾌청하다고 생각한다.

<우동>은 지난 여행에 대한 추억을 떠올리게 만든 동시에, 꿈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게 만들어 준 고마운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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