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이 책을 여행 중에 읽었다. 여행 중엔 읽기 쉽고, 단락으로 나뉜, 그러니까 쪼개어 읽어도 무리가 가지 않는 책을 선택하곤 하는데, 그런 이유 때문에 이 책을 선택했다. 사실, 책을 펼치기 전엔 큰 기대를 하지 않았다. 에세이류를 선호하지 않기도 했거니와, 익숙한 작가도 아니었기 때문이다(좋아하는 작가의 에세이는 열렬히, 기꺼이 즐긴다).
그런데 웬걸. 읽기 시작한 이후엔 쉬지 않고 읽어나갔다. 속독을 하진 않았지만, 한 단어, 한 문장을 짚어나갈 땐 최선을 다해 글을 음미했고, 그로 인해 작가에게 일방적인 애정이 생기기까지 했다.
이런 류의 책이 좋은 점은, 목차의 순서를 지키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다. 어떨 때는 목차에서 마음에 드는 소제목을 골라 해당 페이지를 펼치기도 했고, 훑다가 마음에 드는 사진을 발견하면 해당 글을 읽기도 했다. 작가가 생각하는 핵심 문장은 카키색의 볼드 타입으로 적혀있는데, 그 글부터 먼저 읽은 후 일기같은 본문을 읽기도 했다. 순서나 중요도를 따지지 않고, 독자가 읽고 싶은대로, 자유로이 읽을 수 있다는 점이 단편 모음집들의 매력이다(이런 이유 때문에 여행 시 선택하는 것).
<사적인 시차: 우리는 다르고 닮았다>의 전반적인 분위기는 따스하고 정겹다. 30대 중반의 여성이 써내려간 에세이는, 30대 초반의 여성이 읽기에 충분히 공감할만했다. 나의 경우, 냉철(독설에 가까운)하고도 현학적인 문체의 글을 좋아하는 편임에도 이 책을 읽을 때는 마음이 움직이더라는 것.
제목부터 좋지 아니한가. 독자들의 공감을 살만한 글들로 가득할 거라는 것은 쉽게 눈치 챌만하다. 사적인 시차. 우리 모두는 사적이고, 그래서 시차를 지니고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비슷한 면을 지니고 있다. 동일한 시간이 주어졌지만, 개인에 따라 흐르는, 그리고 활용되는 시간은 다르다. 하지만 우리는 인간이라는 같은 종의 운명을 타고 났기에 비슷하다. 다른 종의 입장에서 보면 확실히 그럴 것이다.
작가는 독자들을 위로한다. 자신의 사적인 이야기를 풀어내지만, 읽는 이들은 자신만의 과거를 반추하며 나만의 이야기로 가공한다. 그러면서 우리는 작가의 글에 공감하고 감동한다. 나 역시 그랬다. 어떤 글을 읽을 때는 눈물이 핑 돌기도 했다. 일면식 한 번 없었던 사람과 같은 글을 접하며(물론 작가는 쓰고 독자는 읽는다) 공감할 수 있다는 것은 실로 놀라운 일이라는 것. 이 책을 접하며 다시금 생각하게 됐다.
이 책은 꾸짖거나 강요하지 않는다. 독자들에게 변화를 요구하지 않는다. '괜찮다', '지금 그대로도 좋다', '늦지 않다'는 따듯한 태도를 취한다. 그래서인지 더 큰 마음의 그릇, 여유가 커진 듯한 느낌을 들었다. 이런 것도 성장이라고 부를 수 있겠지.
마지막으로, 인상 깊었던 글귀들을 나누며 서평을 마무리하려 한다. 개인적으로는 '계획'이라는 제목의 글이 가장 좋았다. 여러분들도 이 책, 혹은 내가 발췌한 글을 읽으며 조금이라도 마음의 여유를 키웠으면 하는 바람이다. 그렇다면, 이 책을 읽고 가장 와닿았던, 깨달을 수 있었던 교훈 같은 것은 무엇이었을까, 를 생각해보면 바로 이런 것이다. '자신만의 속도로 걸을 것. 타인과의 비교가 아닌, 나의 정채성을 발견하고 그 길을 걸을 것'.
[책 속에서]
〃강함
더 강하고, 더 영리하기를 원하는 세상 안에서 그저 연약하고 상처받기 쉬운 나를 발견한다. 강하다는 건 세상에 맞춰 영악해지는 게 아니라 약한 나를 인정하고 그 모습 그대로 단단해지는 것이다. 그러면 아무도 부술 수 없는 내가 된다. - p. 64
〃멋있는 거랑 멋있어 보이는 것
시작과 끝이라는 화려한 순간 사이에는 '유지'라는 무겁고 더디고 아무도 알아주지 않지만, 아무나 버텨낼 수 없는 시간이 숨어 있다. 산다는 것에는 시작과 끝이 아닌 단 하나의 이어짐이 있다. 우리는 아직 한 번도 실패한 적이 없다. - p. 89
〃계획
계획은 오늘, 내년, 10년 뒤에 무엇을 할까 고민하는 게 아니라 나의 태도와 마음을 정하는 일이다. - p. 91
〃꾹꾹 눌러 담아봤자
인간의 손은 두 개뿐이라, 이미 무언가를 쥔 손으로 다른 것을 쥐려면 쥐고 있던 것을 놓거나 놓쳐야 한다. 아주 잠깐 서너 가지를 쥘 수 있게 되었다 하더라도, 곧 놓거나 놓치게 될 것이다. - p. 103
〃기다림
기다린다는 것은 도전만큼의 용기와 자신감이 필요한 일이다. 얼음이 녹고 나서야 비로소 물은 흐르기 시작한다. - p. 115
〃자기 확신
남이 주는 확신은 유효기간이 잛다. 불꽃처럼 잠깐 터졌다가 우수수 바스러지는 빛과 같다. 기어코 내가 나를 믿어야 한다. - p. 131
〃그래도 괜찮아
포기하고 싶다는 마음은 그동안 포기하지 않고 잘 버텨왔다는 뜻이기도 하니까. - p. 135
〃어른의 일
20대에 질주하는 방법을 배웠다면 30대에는 무리하지 않는 방법을 배운다. 무작정 달려들던 나이가 지났다. 조금 더 나은 때를 기다릴 줄 아는 것도 어른의 일이다. 한번 흘러간 강물은 다시 돌아오지 않지만 곁을 떠나지 않는 한, 강은 계속 흐른다. - p. 15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