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관점에 따라 모든 순간이 인문학일 수 있다. 제목에서부터 꽂혔던 이 책. 드디어 접하게 됐다. 일상에서 인문학의 인지도가 높아진지도 꽤 오래 됐다. 철학과 견줄만한 무게감이 느껴지는 인문학. 그 때문인지, 책의 제목처럼 모든 순간을 인문학적 관점에서 접근한다면 머리가 지끈 아파올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이 책의 내용은 무겁지 않다. 가볍다는 말은 결코 아니지만, 머리 싸매고 골몰해야 할 만큼 어려운 책이 아니라는 것이다. 읽어가면서 느낀 이 제목의 참 의미는, 매 순간을 어렵게 여기라는 것이 아닌, 별 것 아닌 듯한 일상에서도 인문학적 요소를 발견할 수 있다는 뜻이었다. 그 뜻대로, 작가는 자신이 봐 온 영화와 드라마, 읽어왔던 책과 그 외 무수한 경험들에서 발견해온 인문학적 요소들에 대한 자신의 가치관들을 펼쳐낸다.
특히, 영화를 좋아하는 작가이기에 영화 애호가인 내가 빠져들기에 충분한 챕터들이 많았다. 그리고 매 챕터 마지막 문단은 각 소재에 해당하는 작가의 생각들로 압축돼 있는데, 그야말로 고개 끄덕일 수밖에 없는 글들로 가득했다. 아래와 같은 것들이다.
'어쩌면 사는 일은 자신을 긍정하는 일이다. 우리 시대에 자신을 긍정하기란 쉽지 않다. 우리는 일터에서, 학교에서, 하물며 운전을 하거나 길을 걷다가도 비난을 받는다. 미니홈피나 어쩌다 단 댓글에 대해서도 비판을 당한다. 그런 비난과 비판은 이 세계 전체가 경쟁체제이기 때문에 나온 것이다. 그러니 비난은 다반사고 자기 긍정은 힘겹다. 그러므로 칭찬이 필요하다. 이 시대의 칭찬은 단지 기분을 좋게 만들기 위한 일시적인 처방이 아니라 우리를 존재에 대한 긍정으로 이끌고 특별한 관계를 만드는 힘이 있는 언어다.' - p. 121
'결코 멋있을 수 없는 부류가 있으니, 바로 작은 이익에 안달하는 사람이다. 소탐대실을 경계하자는 말이 아니다. 작은 이익에 골몰하는 사람들은 절대로 자기 몸과 영혼에 멋을 걸칠 수가 없다. 사실 멋있는 사람들은 탐에도 실에도 큰 의미를 두지 않는다. 멋은 그 탐과 실을 초월할 때 몸에서 우러나오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멋은 여유와 관조와 자연스러움에서 나온다. 많은 것들이 그렇지만 멋 또한, 멋을 내려 하지 않았다는 전제에서만 멋스럽다. 멋은 애씀이 아니라 무심함이다.' - p. 127
'국립도서관장이기도 했던 소설가 보르헤스도 도서관을 미궁이라 표현했다. 세상과 우주의 은유인 도서관에서 우리는 늘 길을 잃고, 현재와 과거, 사실과 환상 또는 동양과 서양은 텍스트의 미로 속에서 서로 연결되고 뒤섞인다.' - p. 149
'진실로, 모여서 공허하느니 혼자서 충만한 게 낫다. 앤서니 스토는 <고독의 위로>에서 "누구에게나 어느 정도의 인간관계가 필요하다. 하지만 동시에 혼자서만 느낄 수 있는 충족감도 필요하다. 주변에 친구와 지인이 있고 또 자신에게 중요한 일에 열정적으로 몰입할 수 있다면, 그 사람은 (...) 행복할 것"이라고 말했다. 고독은 관계 맺기에도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고독해본 사람은 알 것이다. 혼자인 시간이 관계를 맺는 데 얼마나 큰 힘이 되는지, 고독에 침잠해봐야 진정한 환대를 그리워하게 되고, 상대를 진심으로 환대하게 된다.' - p. 157
'이것저것 해보고 싶은 게 많은 사람에게 '자존감=성공/욕구'라는 공식은 정말 희한한 것이다. 자존감을 높이려면 욕구를 낮추어야 한다. 제임스도 그런 말을 했다. 자존감을 위해서는 '홀가분한 마음'이 중요하다고. 받아들일 수 없다. 자존감이 욕구에 반비례한다는 것도 그렇지만, 성공과 정비례한다는 것도 인정할 수 없다. 자존감은 성공과 직접적인 관계를 갖지 않는다. 진짜 자존감은 성공이나 욕구가 아니라 자신을 가치 있게 생각하는 마음에서 오는 것이 아닐까. 자존감이란 '나는 잘났다'가 아니라 '나는 의미 있는 사람이다'라고 생각하는 쪽이다. 나는 의미 있는 사람이기 때문에 그 의미와 가치를 향해 꾸준히 나아가는 것이다.' - p. 200
하. 공감되는 부분들이 너무 많아서, 다 옮겼다가는 큰일 날 것 같다. 어찌됐든, 이 책을 접하며 이미 봤던 영화들이 등장할 때면 공감 혹은 조금 다르게 생각할 수 있어서 좋았다. 책의 인용문들의 경우에는, 내가 접하지 못했던 것들이 많았는데, 그래서 읽을거리에 대한 정보를 얻을 수 있는 책이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