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지웅. 나는 그의 (꽤 열렬한)팬이다. 그래서일까. 그가 써왔던 글과 그의 모습을 볼 수 있는 영상, 그리고 심지어는 그를 만나기 위한 자리에도 참석한 바 있다. 고백하건대, <나의 친애하는 적> 역시 열렬한 팬심으로 읽기 시작한 책이다. 즉, 호의를 안고 읽기 시작했다는 뜻이다. 이런 마음으로 읽게 돼서인지, 나는 이 책이 정말 좋다. 그래서 작가를 더욱 친애하게 됐다.
책은, 허지웅이라는 사람을 좀 더 알게 만든다. 영화에 대한 단평들에서부터 경험에 대한 고백, 그리고 거기에서 느낀 뚝심있는 생각들을 담겨있기 때문이다. 에세이이기에 자신의 생각은 물론이거니와 욕도 서슴없이 뱉는다. 그래서 더 매력있다. 때로는 긴 말보다 외마디 욕설이 감정 전달에 효과적일 때도 있으니까(한데, 그 욕의 너무 이른 등장 탓에 조금은 긴장한 감도 있다. 더하여 '역시 허지웅'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나의 친애하는 적. 제목에 쓰인 핵심 단어들이 반대어다. 친애와 적. 과연 그 사랑스럽지만 거리를 둬야만 했던 적은 누구였을까. 작가에게 있어 이 대상은, 특정인이 아닌 다수의 타자이다. 친애하는 동시에 적이라는 생각을 하여,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는 것. 그것이 관계를 이어나가는 현명한 방법이라 생각한 것 같다. 사실, 맞다. 친애한답시고 무작정 거리를 좁히려고만 든다면, 숨통 트일 공간마저 사라져 답답한 관계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즉, '허지웅의 적'은 공격과 경계의 대상이 아닌 적정한 거리를 유지하는 것이라 보면 되겠다.
책에는 온갖 작가의 친애 대상들이 등장한다. 개중에는 적의 기세가 강한 대상들도 있다. 한때, 세상에서 가장 큰 존재였지만 지금은 작아진 엄마, 오랫동안 대면하지 못한 아버지와의 일화에서부터, 故 신해철과의 추억도 기록돼 있다. 그리고 빼놓을 수 없는 영화와 배우들에 대한 단상들도 만나볼 수 있다. 특히, 스타워즈의 경우에는 '정신 바짝 차리고' 쓴다고 고백했음에도 여느 주제들과는 달리 하고 싶은 말이 많아보여서 '극 친애'를 드러내기도 한다. 더하여, 그를 두고 빼놓을 수 없는 청소에 대한 단상도 등장하는데, 나 원 참. 청소 이야기에서 나는 한 번 더 그에게 반해버리고 말았다. 청소를 두고 '공간을 이해하기 위한 활동'이라고 말하는 이 남자. 정말 매력있지 않은가. 이 외에도 다양한 소재들을 통해 과감 없이, 그리고 심도 깊은 생각들을 펼쳐낸다. 책을 읽노라면, 평론가(그의 직업 중 하나다)다운 면모들을 곳곳에서 확인할 수 있다. 냉철한 시선과 관찰력 같은 것들 말이다. 물론, 정치(사회)적인 이야기들도 한다. '끓는점'이라는 마지막 챕터에서 두드러진다.
내가 너무 극찬만 늘어놓았기 때문에, 자못 진지하고 무거운 책이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 수도 있을 것 같다. 하지만, 이 책은 그런 책이 아니다. 에세이다. 다만, 역설할 줄 아는 사람의 에세이이기 때문에 '개성 있는 에세이'다. 그리고 재미있는 이야기들도 만나볼 수 있다. 가령, '단추가 모두 채워져 있었다' 같은 것들이다. 기묘한, 아무리 이해하려 해도 그럴 수 없는 경험들도 만나볼 수 있다. 그래서, 그 눈이 무지하게 큰 남자와는 어떻게 됐는지 궁금해지기도 했다(정말, 세상엔 별 일이 다 있다).
영화와 텍스트를 가까이 하는 작가 덕분에, 접하고 싶은 작품들의 정보도 얻게 됐다. 특히, 소설 <모래의 여자>는 꼭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에 구매했다. 그리고, 다르덴 형제의 영화 <로제타>와 제이크 질렌할의 출연작 <데몰리션>은 다시 볼 예정이다.
책에는 명문장들이 많다. 마음에 드는 문장들을 작정하고 공유하려 든다면, 책의 거의 모든 부분들을 카피하게 되는 격이라 그럴 순 없고, '특히' 좋았던 문장들을 옮기며 서평을 마무리해본다. 허지웅의(할 말은 하는 드셈을 좋아하는) 팬이라면, 영화와 책을 사랑한다면 읽어보길 권해드린다.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종종 벌어지곤 한다. 내가 아는 거라고는 요즘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옷장 앞으로 걸어가 실눈을 뜨고 셔츠에 단추가 채워져 있는지 슬쩍 확인해본다는 것뿐이다. 그리고 혼자 웃는다. 이해할 수 없는 일을 이해할 수 없는 상태 그대로 내버려둘 수 있는 태도야말로 삶을 살아가는 데 가장 중요한 재능 가운데 하나일지 모르겠다. - p. 84 단추가 모두 채워져 있었다' 중
그것을 쓴 자가 집중력을 발휘해서 자기 딴에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아이디어와 문장, 정확한 단어들을 탈탈 털어놓은 기록이다. 탈탈 털어넣었기 때문에 작가 입장에서 이것은 매우 친절한 텍스트다. 그러나 독자 입장에서는 그렇지 않다. 작가가 정말 이야기하고자 했던 비전은 한 번에 눈에 들어오지 않기 마련이다. 작가에게 쉽고 당연한 명제가 독자에게는 생소하고 어려운 것일 수 있기 때문이다. 작가가 이야기하고자 하는 정수에 가닿기까지는 독자가 직접 채워넣어야 하는 구멍이 많다.
나는 그 구멍을 채워나가는 과정이 독서라고 생각한다. - p. 104 '책' 중
슬픈 게 취미인 자들과 어울리지 말라. 우리는 슬플 시간도 없다. - p. 98 '우리는 슬플 시간도 없다'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