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모래의 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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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어느 날, 한 남자가 행방불명되었다(…)
이렇게 하여 아무도 그가 실종된 진정한 이유를 모르는 채 7년이 지나, 민법 제30조에 의해 끝내 사망으로 인정되고 말았다.

소설의 도입부에서 확인할 수 있는 글이다. 누군가 사라졌고, 끝내 사망처리된 한 남자. 독자의 호기심을 자극하기에 충분한 사건이다. 그렇다면 그는 어디에서 어떻게 실종된 것일까. 과연 실종이 맞는 것일까. 목숨이 사라진 것일까. 갖가지 의문을 안고 읽기 시작했다.

의문의 남자는 31세의 교사 니키 준페이다. 그는 사흘간의 휴가를 얻어 모래사막에 서식하는 곤충 채집을 위해 떠난다. 이 행동은, 그의 원대한 포부인 신종 곤충을 발견해, 자신의 이름을 곤충 도감에 올리기 위해서이다. 당연히 이름을 남기기 위해서는 각고의 노력이 필요하기 마련이다. 한데, 준페이가 겪게 된 상황은 웬만한 노력이 아닌, 목숨을 건 사투에 가까웠다.

준페이가 도착한 모래사막은 기이했다. 원래 그런 곳들이 미지의 느낌을 전하기도 하지만, 왠지 이곳은 배경뿐 아니라 사람들도 의심스럽다. 그는 모래의 특성을 잘 알고 있다. 아래의 묘사에서 확인할 수 있다.

'지상에 바람과 흐름이 있는 이상 모래땅의 형성은 불가피한지도 모르곘다. 바람이 불고 강이 흐르고 바다가 넘실거리는 한, 모래는 토양 속에서 끊임없이 생성되어 마치 살아있는 생물처럼 장소를 가리지 않고 기어다닐 것이다. 모래는 절대로 쉬지 않는다. 조용하게, 그러나 확실하게, 지표를 덮고 멸망시킨다(p. 19)'

그렇다. 모래는 유동한다. 한 자리에 존재하는 것이 아닌, 바람으로 인해 다른 곳으로 끊임없이 흐른다. 따라서, 어떠한 것들을 받아들이기도 힘들지만, 한편으로 신선한 존재이기도 하다. 그래서 모래는 '정착'이나 '생존'과는 적합하지 않다. 그는 이런 모래의 특성을 예찬한다. '만약 정착을 포기하고 모래의 유동에 몸을 맡긴다면 경쟁도 성립하지 않을 것이다. 실제로 사막에도 꽃은 피고 벌레와 짐승도 산다. 마음속으로 유동하는 모래의 이미지를 그리면서 그는 간혹 자기 자신이 유동을 시작한 듯한 착각에 빠지는 일도 있었다(p. 20)'

이어질 일(사건)들에 대한 암시다. 모래는 유동하고 정착에 걸맞지 않지만, 결국 준페이는 다른 세계로 이동했고, 또한 정착하게 된다. 어쩌면 모래의 삶은 인간의 그것과 닮아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소설에는 모래의 세계 속에서 살아가는 모래의 여자가 준페이와 함께, 이 소설의 미스터리와 세계관을 보여주는 주연급에 해당하는 인물로 등장한다. 그녀는 어딘가 음침한 구석이 있다.
'아무래도 일부러 보조개를 보이려는 것 같아, 남자는 자기도 모르게 긴장한다. 한 가족의 죽음을 얘기한 직후라서 더욱 음란하게 여겨졌다(p. 34)' 과부인 그녀는, 준페이에게 남편의 죽음을 냉담하게 표현했다. 그리고 그녀는 시간이 흐를수록 모래 속에서, 모래와 함께 살아가는 모습들을 온전히 보여준다. 그녀는 유동하는 세계 속에서 정착해 온 인물이니까.

어찌됐든 준페이는 모래의(혹은 여자의) 세계에 갇힌다. 여자와 단 둘이 갇혀 살아가는 동안, 준페이는 온갖 탈출을 시도하지만 좀처럼 뜻대로 되지 않는다. 결국 순응해야만 하는 것이다. 그런데, 순응을 했음에도 그는 끊임없이 움직여야만 한다. 가만히 있다가는, 모래가 자신을 뒤덮는 모래 사태의 피해자가 되고 말 것이기 때문이다. 살기 위해서라도 그는 모래 세계의 법을 따라야만 한다. 그러면서, 그는 여자와 점점 가까워진다.

이 소설의 매력은, 미스터리한 공간에 갇힌 한 남자의 정착 과정을 염탐하는 재미와 함께, 섬세하고도 농염한, 그래서 모래와 땀으로 뒤범벅돼 끈적이는 촉감이 그대로 전해지는 듯한 남녀의 섹스를 묘사하는 구절들을 읽는 재미도 있다. 준페이의 성 관념과 본능에 이끌린 몸짓의 간극을 지켜보는 과정이 흥미롭다.
'아무래도 대부분의 여자는 사타구니 한번 벌리는 데도 멜로드라마의 틀 안에서가 아니면 자기의 가치를 상대방이 인정하지 못한다고 착각하고 있는 모양이다. 그러나 그 답답할 정도의 천진한 착각이야말로 실은 여자들을 정신적 강간의 일방적인 피해자로 만드는 원인인데(p. 128)'

'단, 어렴풋이 성욕에도 두 가지 종류가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은 있다. 예를 들어 뫼비우스의 띠란 놈은, 여자 친구를 꼬실 때 반드시 미각과 영양에 관해서 강의를 하는 것으로 시작하는 모양이다. 원래부터 굶주린 자에게는 일반적인 먹을거리가 있을 뿐, 특등 쇠고기니, 국내산 굴이니 하는 것은 미처 존재하지 않는다...... 일단은 배가 부를 수 있다는 보장이 있어야 비로소 개개의 미각도 의미를 갖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성욕에 대해서도 우선은 일반적인 성욕이 있고, 그 다음에야 다양한 성의 맛이 발생하는 것이다...... 성도 일률적으로 논할 것이 아니라, 때와 장소에 따라서 비타민이 필요하기도 하고, 또 장어 덮밥이 필요하기도 한 것이다. 그야말로 정연한 이론이었지만, 안타깝게도 그 이론에 따라서 성욕 일반, 또는 고유의 성을 자진하여 그에게 바친 여자 친구는 아직 한 명도 없었떤 것 같다. 당연한 일이다. 남자든 여자든, 이론에 넘어가는 인간이 있을 리 없다(p. 132)'

'마지와 함께 모래 한줌이 손가락 사이사이를 빠져나와 허벅지 안쪽으로 흘러 떨어진다. 땀에 절은 신발 같은 냄새가 피어오른다. 천천히, 그러나 확실한 충실감이, 단수가 시작된 수도관 같은 소리를 내며 다시금 물건을 채우기 시작한다. 모자 없이 방향을 가리키는 물건. 날개를 펼치고 벌써 알몸으로 변한 여자 뒤로 녹아들었다(p. 136)' 훌륭한 묘사 아닌가!

준페이는 미지의 세계, 그가 살아왔던 세계와는 전혀 다른 곳에서 점차 적응해나간다. 자신만의 장소로 회귀하려고 발버둥치지만, 결국 낙담한 그는 새로운 세계에 적응해나가고, 심지어 '더 나은' 세계를 개척하기 위해 힘쓰기까지 한다. 여자의 자조적인 말에 결국 전염되고 만 준페이다.
"무슨 그런 웃기는 소리를 하는 거야! 자기 마음을 열어 보라고, 모를 리가 없으니까! 개도 우리 속에만 갇혀 있으면 미쳐버려!"
"걸어봤어요." 여자는 불쑥, 껍질을 닫은 조개처럼 억양 없는 목소리로 말했다.
"정말이지, 끔찍하도록 걸었어요. 이곳에 올 때까지... 애를 안고, 오래오래... 이제, 걷는 데는 지쳤어요."

그렇다. 준페이도 모래의 세계에 적응해나간다. 끊임없는 모래 사태를 이겨내기 위해 모래를 퍼내는 노동을 해나가면서 말이다. 그리고 끝내, '저쪽 세계'에 이름을 남기고자 했던 원대한 꿈을 '이쪽 세계'에서 이루고자 희망하며 소설은 마무리된다.
'딱히 서둘러 도망칠 필요는 없다. 지금, 그의 손에 쥐어져 있는 왕복표는 목적지도 돌아갈 곳도, 본인이 마음대로 써넣을 수 있는 공백이다. 그리고 그의 마음은 유수 장치에 대해 누군가에게 말하고 싶은 욕망으로 터질 듯하다. 털어놓는다면, 이 부락 사람들만큼 좋은 청중은 없다. 오늘이 아니면, 아마 내일, 남자는 누군가를 붙들고 털어놓고 있을 것이다. 도주 수단은, 그 다음날 생각해도 무방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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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토록 도망가고 싶었던 세계에 순응(나아가, 적응)하고, 거기에서 더 큰 뜻을 품으려는 준페이의 변화. 그의 변화는 우리가 처한 세계와 그 속에서 살아가는 우리들의 모습을 압축한다. 망망대해같은 곳에서 끊임없이 조여오는 압박, 노동을 할 수밖에 없는 우리, 더 나은 사람이 되어 이름을 남기고자 하는 욕망. 그렇다. 준페이는 새로운 세계에서 다시 태어난 것이다. 그는 저쪽 세계에서는 소멸됐지만, 이쪽 세계에서 재탄생했다. 뭐가 됐든 그의 앞날은 희망하던대로 이뤄지길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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