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여행의 기술> '예술' 중 발췌
니체는 <사실주의 화가>라는 제목의 광시에서 조롱하는 목소리로 이렇게 말했다.
"자연에 완전히 진실하라!" - 이런 거짓말이 어디 있는가.
자연을 어떻게 속박하여 그림 속에 집어넣을 수 있겠는가?
자연 가운데 아무리 작은 조각이라 하더라도 그것은 무한하다!
따라서 화가는 자연 가운데 자기가 좋아하는 것을 그린다.
화가는 무엇을 좋아하는가? 자기가 그릴 수 있는 것을 좋아한다!
우리가 관객으로서 어떤 화가의 그림을 좋아한다면, 그것은 어떤 특정한 장면에서 우리가 가장 중요하다고 믿는 특징을 그 화가가 골라냈다고 판단하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화가가 어떤 장소를 규정할 만한 특징을 매우 예리하게 선별해냈다면, 우리는 그 풍경을 여행할 때 그 위대한 화가가 그곳에서 본 것을 생각하게 되기 마련이다.
나중에 반 고흐는 동생한테 파리에서 아를로 이사 온 이유를 두 가지 댔다. 첫째는 '남부를 그리고' 싶었던 것이고, 또 하나는 자신의 작품을 통하여 다른 사람들이 남부를 '보도록' 돕고 싶었던 것이다. 그가 자신의 능력으로 그런 목적을 달성할 수 있을지에 대해 의심을 품었을지는 몰라도, 이 기획이 이론적으로 가능하다는 믿음은 한 번도 흔들리지 않았다. 즉 화가는 세상의 한 부분을 그릴 수 있고, 그 결과 다른 사람들이 그것에 눈을 뜨게 해줄 수 있다는 믿음이었다.
사이프러스에서 반 고흐는 보았는데 다른 화가들은 보지 못한 것이 무엇일까? 한 가지는 사이프러스가 바람에 따라 움직이는 방식이었다.
이런 움직임에는 건축학적인 이유가 있었다. 우듬지로부터 맡을 향해 부드럽게 내려앉는 소나무 가지들과는 달리 사이프러스의 잎은 땅에서 위를 향해 밀고 올라간다. (…) 사이프러스는 원뿔 모양이기 때문에(직경이 1미터가 넘는 경우가 드물다) 바람에 신경질적으로 퍼덕이는 불길을 닮았다. 반 고흐는 이 모든 것을 보았고, 또 다른 사람들도 보게 해주려고 했다.
반 고흐가 프로방스에 머문 지 몇 년 뒤, 오스카 와일드는 휘슬러가 안개를 그리기 전에 런던에는 안개가 없었다는 말을 했다. 마찬가지로 반 고흐가 사이프러스를 그리기 전에 프로방스에는 사이프러스가 거의 눈에 띄지 않았다고 말할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