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는 8월 15일 개봉을 앞둔 영화 <델마>는, 초자연적 힘을 지닌 델마라는 대학생을 중심으로 벌어지는 미스터리 스릴러물이다.
영화의 도입부에는, 아버지와 함께 사냥을 나온 어린 델마의 모습이 비춰진다. 의아한 것은, 아버지가 델마를 향해 총을 겨눈다는 점이다. 왜 그럴까. 이 의문을 안은 채, 우리는 델마의 현실과 직면하게 된다. 갓 대학생이 된 델마는, 부모의 품에서 벗어나 혼자 살아가게 된다. 독실한 기독교 집안에서 자라, 속세와는 동떨어진 삶을 살아온 그녀는 대학 생활을 통해 술과 담배, 사랑에 눈 뜨기 시작한다. 물론, 이것들이 나쁜 것은 아니지만, 종교적 관점에서 보면 죄의 일환이 된다. 그렇게 델마는 종교적 관점에 어긋난 행동들을 하나 둘씩 해나가게 된다. 사실, 그녀의 행동들은 수많은 인간들이 행하는 것이다. 죄라고 볼 수 없지만, 그렇다고 죄가 아니라고 판단하기도 힘든 것들이다.
성인이 되면서 알아가는 것들, 호기심에만 그칠 수 있는 것들을 실행하는 과정. 어쩌면 이것은 아주 자연스러운, 그러니까 평범한 생활일 수 있다. 하지만 델마에게는 앞선 것들 외에 특이점이 있다. 바로, 심인성 발작을 일으킨다는 것이다. 특정한 원인이나 질환이 없음에도 발작을 일으키는 델마는, 주변인들로 하여금 걱정을 불러일으킨다. 기이한 것은, 그녀의 발작 이전에는 자연물들도 기이한 움직임을 보인다는 점이다.
영화는 시종일관 델마의 발작과 그 이후에 벌어지는 미스터리한 사건들을 보여줌으로써, 미스터리를 가중화시킨다. 델마 역시, 의문 가득한 자신의 발작에 대한 원인을 찾아나서기 위해 병원과 요양원에 있는 할머니를 찾는다. 하지만 특별한 원인을 알 수 없다. 그러니까, 초능력인 것이다.
델마가 지닌 초능력은, 마음을 먹으면 자신의 뜻대로 사건을 일으킬 수 있다는 것. 내면 깊숙한 곳에 있는 욕망을 실현시킬 수 있는 능력을 지닌 그녀는, 안타깝지만 (이성적으로)원치 않는 사건의 가해자가 되기도 한다. 어릴 적, 동생을 죽음에 이르게한 것, 그 이후 부모는 종교에 의존하지만, 그 노력 또한 델마의 초능력 위에 서지는 못 한다. 결국 델마는, 부모에게도 공포의 대상이 된다. 누군가에겐 그녀의 초능력이 부러움의 대상일 수 있겠지만, 정작 델마는 자신의 초능력을 저주라 생각한다. 자신은 그럴 만한 자격이 없다고, 왜 자신에게 시련을 안겨줬냐며 하느님에게 고백하는 신에서 확인할 수 있다.
간절히 원하지만 손 안에 넣을 수 없는 상황을 방해하는 모든 것들을 '처리'하는 모습은, 아무리 봐도 이해할 수 없다. 정작 델마 자신도 이해하지 못하는 초능력을 어느 누가 이해할 수 있을까. 누그러뜨리기 위한 실존적인 그 어떤 방법들도 델마의 초능력을 억누르지 못한다. 그녀는 그렇게 살아가야만 하는 것이다.
결국, 이 섬뜩한 저주의 초능력은 가족까지 잠식시키기에 이른다. 정상적인 삶을 살아가는 데 적합하지 않은 인간은 결국 최악질의 인물이 되어간다. 델마의 손을 촛불 위에 올려, 살이 타기 직전까지 뜨겁고 쓰라린 경험을 하게 만든 아버지는 화형에 처하게 만들었고, 딸을 없애버리려는 어머니 역시 감금된 채로 죽어간다. 비록, 가시적인 죄를 일으키는 것은 델마이지만, 델마를 없애고 싶어하는 나쁜 욕망을 품은 장본인들 또한 가해자라 볼 수 있다. 우리가 누군가를 죽도록 미워하여 '죽이고 싶다'는 마음을 품는 경우가 있다. 이것 역시, 죄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우리는 영화를 통해 확인하게 될 것이다. 한편, 델마에게는 선을 향한 초능력도 있다. 결국, 감독이 영화를 통해 다루고 싶었던 것은, 우리를 지배하는 온갖 욕망들과 그것들이 잘못 발현됐을 때의 위험성이다. 만약, 우리 모두에게 델마와 같은 초능력이 존재한다면, 이 사회는 공포 그 자체가 될 것이다.
기구한 운명을 타고 난 인물의 삶이 전하는 근원적 욕망에 대한 메시지. 8월 중순, 극장에서 확인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