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의 나라>는 양영희 감독의 개인사가 반영된 작품이다. 재일한국인으로서 겪어야 했던 외부적 핍박과 사적 정체성 혼란은, 같은 입장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밀도 높은 연출 덕분에 고스란히 전달받을 수 있었다.
영화의 소재는, 재인한국인의 북송사업이다. 1959년 이래, 일본 내에서 벌어진 이 사업으로 북으로 건너가 북한 사람이 된 재일한국인들의 이야기를 다룬다. 가족과 떨어져, 북한에서 살아가고 있는 성호는 25년 만에 뇌종양 치료를 위해 도쿄 가족네에 체류하게 된다. 한데, 성호는 홀로 가족을 찾지 않는다. 가족들과 회포를 풀기에도 모자란 그는,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는 수행원 양 동지와 함께 귀향한 것. 하여, 성호네 가족들에겐 양 동지가 눈엣가시 같은 존재가 된다.
이렇게 불길하고도 꺼림칙하게 시작되는 영화는, 시종일관 불편한 감정선을 잇게 만든다. 한편, 고국의 노래를 불러서도 안 되고, 가족과 친구들과도 마음 편히 회포를 풀 수 없는 상황에 놓인 성호에게는 더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 떨어진다. 생각보다 성호의 뇌종양 상황이 좋지 않다는 것이다. 3개월 만으로는 진료 시간이 부족하다는 의사의 판단에, 가족들은 더 흥분한다. 어찌됐든 3개월 동안 그리워했던 가족과의 시간을 보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성호에게는 작게나마 행복한 상황이었을 거다. 하지만 이것도 잠시. 갑자기 떨어진 조기 귀국 명령 때문에, 성호는 도쿄에서의 생활을 중단해야만 하는 상황에 놓인다.
가차 없는 상황. 이유도, 자비도 없는, 생각할수록 골치 아파지는 상황들이 일상이라는 성호네 나라, 북한. 물론, 우리나라의 일면이기에 욕하고 싶지 않지만, 그래도 욕이 나오는 상황이다. 어쩌면 성호의 뇌종양은, 생각을 불허하는 북한이라는 사회 속에 적응하느라 발생된 건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해봤다.
동생과의 대화 중, 성호가 했던 대사가 이해와 사고를 불허하는 사회를 직설적으로 보여준다.
"그 나라에선 말야. 이유따윈 전혀 의미가 없어. 그 나라에선 말야. 생각하지 않고 그냥 따르는거야. 그냥, 따를 뿐이야. 생각해버리면 말야, 머리가 이상해져버려. 생각해야 할 건 말야, '어떻게 살아남을까?' 그것 뿐이야. 그 외엔 사고를 정지해버려. 편하다고, 사고정지."
그저, 어떻게 살아'남을'까, 만 생각하는 사회. 과연 이런 사회에서 제대로 된 개인의 삶을 살아갈 수 있기나 한 걸까. 가족과 헤어져 살아가는데다, 심각한 병을 앓고 있음에도 이해할 수 없는 명령에 순순히 따라야만 하는 북한이라는 나라는, 경험해보지 못했지만 섬뜩할 게 틀림 없다는 생각을 하게 만든다.
이렇게 자비와 정이 없는, 어떻게 보면 비인간적인 사회 속에서 살아가던 이들의 모습을 보여주는 영화이지만, 가족애로 인해 짧고 굵은 눈물을 보이게 만들 만한 장면이 등장한다. 바로, 성호의 어머니가 양 동지에게 베푼 정이다. 자신의 아들을 잘 보살펴 달라면서 건넨 감동의 선물들. 이 장면이 없었다면 <가족의 나라>는 시리고 따갑기만 한 영화로 평가됐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