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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공작>, 잊지 못할 브로맨스!


무게있는 소재임에도 재미있다는 인상을 심어주는 영화는 많지 않다. 남북문제, 그 경계를 아슬아슬하게 넘나드는 인물들, 스파이와 정계, 그래서 타인을 속이고 또 속게 되는 인간 군상, 이에 동반될 수밖에 없는 개인의 딜레마. 영화 <공작>이 껴안은 소재들이다. 그럼에도 이 영화에는 현란한 액션이 없다. 주인공 박석영의 이동과 내면을 중점적으로 쫓을 뿐이다.


'흑금성 사건'을 모티프로 제작된 영화는, 암호명 흑금성으로 불리는 스파이 석영의 고백으로부터 시작된다. 정보사 소령 출신인 그는, 북핵의 실체를 밝히기 위해 북의 고위층 내부에 잠입하라는 명령을 받고 대북 사업가로 위장한다. 이후, 고위간부 리명운과 정무택과 가까워지는 등 작전 수행에 한 단계씩 나아간다. 이들과의 접촉은 아슬아슬하기 그지 없다. 낯선 땅에서 홀로 다수의 적들을 상대해야 하는 석영의 어깨는 마냥 무겁기만 하다. 총 하나 없는 그에게는 길고 머나먼 여정이다. 진정한 스파이로 거듭나기 위해 신분 세탁에서부터 위기 모면을 위한 연기력에 이르기까지. 매 순간 긴장을 놓지 않고 적들에게 자신의 신분 노출은 물론이거니와, 임무 수행을 위해 전력을 발휘하는 석영의 행보는 손에 땀을 쥐게 만들 정도다.



석영은 적과 가까워져야 한다. 협상을 너머 진정으로 그들의 마음을 사야만 하는 입장에 서지만, 여간 쉬운 일이 아니다. 그를 끊임없이 의심하는 리명운과 정무택은, 급기야 간첩이 되기를 요구하기까지 한다. 이 상황 뿐만 아니라 석영에게는 쉬지 않고 위기가 찾아오는데, 문제는 적으로 생각했던 단체만이 그를 괴롭히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임무 수행에 다다랐다고 생각하는 순간, 석영에게는 예상하지 못했던 배신에 봉착한다. 바로, 자신이 안기부의 정책에 '이용됐다'는 것이다. 안기부의 전략은 대선에 북한을 이용하려 했고, 막힌 북측 문을 뚫기 위해 석영을 이용한 것이다. 이 사실을 알게 된 석영은 딜레마에 휩싸인다. 국가를 위한 임무를 수행해왔다고 믿었던 그는, 남한의 정치 놀음에 이용됐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는다. 자신이 믿어온 국가와 소속된 직장으로부터 배신당한 석영은, 어느 편이 적과 동지인지에 대한 기준이 무너지게 된다. 그는 분명, 리명운이 자신이 적임을 눈치 챘을거라 믿었기 때문이다. 배신으로 인한 불신, 확실하지 않은 상황에 선 불안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의 행보와 일관된 행동을 보여야만 하는 상황. 모든 조직과 사람이 적이 되어버린 셈이다.


적과 동지의 기준이 무너진 상황은 석영에게 있어, 가해와 피해, 선과 악, 흑백의 경계가 무너진 것과 다름 아니다. 이는, 북측 리명운에게도 적용된다. 적이라는 것을 알고 있음에도, 적이 아닌 동지라고 믿는 것이 최우선이라고 생각하는 인물. '북한도 바뀌어야 한다'는 리명운의 이념은, 한반도의 평화와 정의로운 사회를 지향하는 박석영의 이념과 이어져, 결국 '마음이 동한' 관계가 된다.



석영이 북에 있을 때, 유일하게 마음을 놓는 신(scene)이 있다. 바로, 리명운의 집에서 그와 술 한 잔을 기울일 때다. 긴장을 놓을 수 없어, 북 최고위원장 앞에서도 거절했던 술잔을 받아든 모습은 가슴 뭉클한 감정을 선사한다. 이렇게 둘은 심적인 한 편이 되고, 경계와 동체의 어느 기점 위에 선 그들은 그렇게 공작을 펼친다.


이 사건이 벌어진 10년 후, 남북의 스타들이 만나 광고 촬영을 한다. 이 성과가 있기까지 무려 10년이나 걸린 것이다. 박석영과 리명운의 공작이 이뤄낸 뒤늦은 성과이다. 서로에게 건넨 선물을 간직하며 서로를 잊지 않은 그들의 브로맨스! 훈훈함 그 자체다.


실제 사건과 픽션이 가미된 <공작>. 화려한 액션 없이도 긴장을 놓지 못하게 만든, 이 영화의 힘은 섬세한 시나리오와 세밀한 연출, 그리고 앞선 요소들을 훌륭히 구현해 낸 배우들의 열연이다. 시나리오의 힘은, 이 영화에 대해 '구강액션물'이라는 장르적 수식어가 붙여진 것에서 충분히 확인할 수 있다. 한편, 속고 속이는, 그리고 속게 되는 캐릭터들의 정밀한 내면 묘사를 이끌어 낸 황정민과 이성민, 조진웅, 주지훈의 연기는 영화에 대한 몰입도를 드높인다. 스파이의 이동 경로와 내면을 훑는 카메라 무빙과 적재적소에 활용된 소품들 중에는 '주연급이다'라는 수식어가 어울릴 법한 것들도 등장한다. 한편, 세심한 연출이 돋보이는 캐릭터가 있으니, 다름 아닌 '김정일'이다. 놀라운 싱크로율을 발휘하는 그는, 스크린과 안방은 물론, 연극 무대에서도 활약을 펼치는 베테랑 연기자 기주봉이 맡았다. 등장할 때마다 놀라움을 자극할 것이니, 아직 영화를 보지 못한 관객이라면 큰 기대감을 품어도 좋을 것이다.



<공작>은 잘 만들어진 첩보물이다. 이 영화가 의미있는 것은, 실제 사건을 바탕으로 한 역사물인 동시에, 남북평화를 기원하는 바람이 깃든 희망적이고도 정의로운 영화라는 점이다. 또한, 서로 다른 이념에 휩싸인 인물들의 화합을 그린 휴머니즘도 놓치지 않았으며, 딜레마에 놓인 인물의 상황을 통해 인간 군상의 문제도 지적하고 있다. 이 영화를 보며, 더 나은 사회와 국가를 위한 개인이 되어야겠다는 생각에 잠겼고, 그럴 듯하게 그려낸 묘사로 '북한에 가보고 싶다'는 상상도 해봤다. 이렇듯, 북에 대한 관심을 부추겼다는 것만으로도 이 영화는 충분한 의의가 있다. 특히, 남북 관계에 있어 큰 역사가 이뤄진 2018년에 개봉된 것 역시 특별한 의미를 부여할 수 있겠다. 더 큰, 더 나은 우리나라가 되길 바라는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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