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래 글은, 고레에다 히로카즈가 자신의 영화 <공기인형>에 대해 적은 것이다. 산문집 <걷는 듯 천천히>에서 '결핍'이라는 제목으로 썼던 것인데, 깊은 감명을 받아 해당 글의 '거의 대부분'을 옮기게 됐다.
생명은
자기 자신만으로 완결될 수 없도록
만들어져 있는 것 같다
이런 구절로 시작하는 시는, 세상에 넘치는 생명 하나하나의 인연을 그린 후, 다음과 같은 구절로 시의 주제를 뚜렷이 부각시킨다.
생명은
그 안에 결핍을 지니고
그것을 타자로부터 채운다
<공기인형>의 주인공은 제목처럼 비닐로 만들어진 성요 해소용 인형이다. 영화는 이 인형이 어느 날 감정을 갖고 움직이기 시작한다는 판타지다. 뜻밖에 비닐이 찢어져 바람이 빠진 그녀에게 좋아하는 남자가 숨을 불어넣어주는 장면이 있다. 그 일로 비어 있던 그녀의 마음도 몸도 채워진다. 시의 주제는 영화의 주제와 멋지게 닮아 있었다.
인간은 자신의 결점을 노력으로 메우려 한다. 그러한 노력은 현실에서도 영화에서도 미덕으로 그려진다. 꽤 오래전부터 말이다. 그러나 과연 인간이 혼자만의 힘으로 그런 극복을 이뤄낼 수 있을까? 해냈다 하더라도 그것은 정말 아름다운 일일까? 이 시는 이렇게 우리의 가치관을 되묻는 것 같았다.
나는 주인공이 약점을 극복하고 가족을 지키며 세계를 구한다는 식의 이야기를 좋아하지 않는다.
(중략)
결핍은 결점이 아니다. 가능성이다. 그렇게 생각하면 세계는 불완전한 그대로, 불완전하기 때문에 풍요롭다고 여기게 된다. - p. 58~60
고레에다 감독의 거의 모든 영화를 좋아하지만, <공기인형>이 내게 특별했던 이유는 여느 작품들과 다른 소재를 활용했다는 점과 주인공 공기인형 역을 맡은 배우가 배두나였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배우가 다른 나라의 작품에 등장했다는 점에 대한 기쁨, 신선한 소재와 발상 모두가 좋았던 작품이다.
처음 영화를 접했을 땐 '일본스러움이 다분하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돌이켜 보니 이 영화는 인류 보편적 문제, 개인과 관계에 대한 고민을 담은 작품이었다. 완벽할 수 없는 인간이라는 존재, 그리고 그 부족함(결핍)을 채워주는 것 또한 결핍을 안고 있는 물체. 도통 통하지 않을 것 같은 인간과 사물 간의 소통. 결핍으로 가득할 것만 같던 소통으로 치유받는 아이러니.
나는 이 영화를 보며 적잖은 위로를 받았던 기억이 있다. 특히, 인형이 아닌 내가 인형에게 감정 이입을 함으로써 '그녀'와 하나가 된 듯한 느낌을 전해받았었다.
<공기인형>은 이렇듯 따스한 내용의 영화다. 물론, 감정 없는 사물이 감정을 가짐으로써 인간 군상의 단점을 깨달아가는 과정도 확인할 수 있지만, 이로써 '진심 어린 관계'에 대해 한 번 더 생각해볼 수 있었다. 따스한 조도와 색감 역시 이 영화가 지닌 강점이다.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이색적인' 작품을 만나보고 싶다면, 한 번쯤 감상해도 좋을 것. 나도 조만간 다시 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