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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빵과 수프,
고양이와 함께 하기 좋은 날'

겨울에 감상하기 좋은 힐링 드라마

부쩍 추워졌고, 앞으로 몇 달 간은 혹독한 계절을 버텨내야만 한다. 이럴 때일수록 따듯하고 포근한 것들이 그리워진다. 가족, 연인, 친구의 존재를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뭉클해지기도 한다. 잊고 있었던 내 안의 감수성이 피어 오르는 이맘때쯤, 나는 소소한 일상을 담은 일본 드라마를 꺼내보곤 한다.


<빵과 수프, 고양이와 함께 하기 좋은 날>. 내가 좋아하는 일본 드라마들 중 하나다. 동명의 소설을 기반에 두고 있는데, 개인적으론 원작보다 살아 움직이는 캐릭터들을 볼 수 있는 드라마를 더 선호한다. 소위 '힐링 드라마'로 불리고 있는 이 작품은 다양한 요소들로 나를 매혹했다.



내가 이 드라마를 접했던 가장 큰 이유는, 주인공 아키코 역을 맡은 배우 고바야시 사토미 때문이다. 오기가미 나오코 감독의 열성팬인 나는, 그녀의 작품들에 자주 등장했던 고바야시 사토미에게 자연스럽게 애정을 갖게 됐다. 그녀가 맡았던 역할들 중 가장 인상 깊었던 캐릭터는 <카모메 식당>의 사치에였다. 낯선 땅 헬싱키에서 소신 있는 일본 음식점을 운영하는 여성. 작은 체구임에도 불구하고, 똑부러진 내면을 갖춘 그녀는 내가 지향하는 여성상이기도 했다. 그렇다고 사치에라는 캐릭터가 까칠한 까칠한 것은 아니다. 음식점을 찾은 이들을 품을 줄 알고, 또한 그들에게 베풀 줄도 아는 인물이다. 지나치게 강하면 부러지게 마련이다. 유연하고 부드러운 사고를 지닌 이들만이 부러지지 않고 오래 버틸 수 있다는 것을 몸소 보여주는 캐릭터이다.



그런 그녀(어느새 캐릭터와 배우 자체를 동일시하기 시작했다)가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드라마라니. 안 볼 수 없었다. 아니, 나는 한 때 '고바야시 사토미'를 검색해 그녀의 필모그래피들을 훑은 후 구할 수 있는 작품들을 닥치는대로 봤다. 앞으로도 그녀의 연기를 볼 수 있는 작품이라면 열심히 찾아 볼 계획이다.


고바야시 사토미의 지나친 팬심으로 이야기가 잠깐 샜는데, 드라마 이야기로 돌아가겠다. <빵과 수프, 고양이와 함께 하기 좋은 날>은 총 4부작으로 구성된 작품이다. 대개의 일본 드라마가 10부 내외인 것을 감안하면 이 드라마는 단편 드라마쯤으로 보면 되겠다. 부담 없이 시청할 수 있는데다, 마음을 몽글몽글하게 만들어주는 작품이니 접해볼 것을 권해드린다.


드라마를 아우르는 스토리는 간단하다. 오랜 기간 식당을 운영해오던 엄마의 죽음 이후 '자신만의 개성'으로 식당을 운영해나가는 아키코의 일상을 그려낸다. 식당을 운영하기 이전의 아키코는 출판사 직원으로 근무했다. 하지만 부당한 부서이동을 권고받은 어느 날, 과감한 퇴사 후 취미로 해오던 요리로 식당 운영을 결심하게 된다.



아키코가 선보이는 메뉴는 단출하다. 제목 그대로 빵과 수프가 전부다. 손님은 샌드위치에 들어갈 빵의 종류와 속 재료들을 선택하고 그날의 수프를 먹을 수 있다. 직원도 아이코 외 건장한 여성 '시마' 한 명뿐이다. 그날 준비한 메뉴가 다 떨어지면 시간에 상관없이 문을 닫는다. 이것이 아키코만의 경영 방침이다. <카모메 식당>의 사치에와 비슷한 뚝심을 자랑한다. 엄마 가게의 단골이었던 동네 아저씨들의 참견에도 불구하고, 다른 사람들의 시선과 비교에는 연연해하지 않고 소신대로 밀고 나가는 아키코. 만약 그녀와 같은 인물이 내 주변에 존재한다면 언니로 모시고 싶다.


손님들은 끼니를 위해 식당을 찾기도 하지만, 아키코로 인해 영혼의 위안까지 안아간다. 아키코의 오랜 지인들부터 남녀노소 누구랄 것도 없이 아이코의 힐링푸드를 먹고 만족해한다.  <카모메 식당>의 언어를 빌리자면 '소울푸드' 같은 것이다. 음식은 영혼이 깃들어 있을 때 그 풍미가 배가된다. 어떠한 상황에서, 누구와 함께 먹느냐에 따라 같은 음식의 맛이 다르게 느껴진다.


그럼, 아키코는 무엇으로부터 치유 받는가. 손님들을 위해 음식을 마련하는 것부터가 힐링일 수 있지만, 그녀에게는 고양이 '타로'가 있다. 일을 끝내고 집에 왔을 때 개냥이처럼 살갑지는 않지만 존재만으로도 마음을 어루만져주는 고양이는, 원작 소설가 무레 요코와 오기가미 나오코 감독 작품들에서도 자주 등장해왔다(애묘인이라면 <고양이를 빌려드립니다>를 추천한다).



자신만의 식당을 운영하면서 소박하지만 행복한 일상을 살아나가는 아키코를 통해, '행복은 거창한 것이 아님'을 이해할 수 있다. 세상의 풍파 속에 휘둘리지 않고, 자신만의 방식으로 살아가는 모든 이들의 삶은 존중 받아 마땅하다. 행복의 기준과 가치는 사람마다 다르다. 타인의 삶을 질타할 시간에 개인의 철학을 정립하고 그것을 실행에 옮기는 것이 더 현명한 삶의 태도라 생각한다.


맹렬한 추위를 누그러뜨리게 만드는 따스한 이야기와 베이지빛 가득한 색감을 지닌 <빵과 수프, 고양이와 함께 하기 좋은 날>은 지금 이 계절에 시청하기 제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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