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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에릭호퍼 길위의 철학자>

에릭호퍼와 사람들



떠돌이 철학자, 에릭 호퍼의 자전적 에세이<에릭호퍼 길위의 철학자>. 에릭 호퍼는 평생을 떠돌이 노동자 생활로 일관한 미국의 사회철학자다. 정규 교육을 받지 않았음에도 독서와 사색만으로 독자적인 사상을 구축해 세계적인 사상가의 반열에 오른 인물이다. 7세 때 시력을 잃어 학교를 다니지 못했다가 15세 때 기적적으로 시력을 회복한 이래로 끊임없는 독서(거의 광적으로)와 사색을 했고, 아버지의 죽음 이후(18세) 로스앤젤레스로 건너가 떠돌이 노동자의 삶을 시작했다. 28세 때 자살을 시도했지만 실패로 돌아간 후 10년 동안 전국 각지를 돌며 방랑자의 삶을 통해 생계유지와 독서를 해나갔다. 이후 49세 되던 1951년, <맹신자들>을 발표해 미국 사회에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으며, 사망한 해인 1983년, 미국 대통령의 자유훈장이 수여되었다.


그의 '일기'와도 같은 <에릭호퍼 길위의 철학자>는 그야말로 그를 조금 더 알게 해준 책이다. 간단한 짐 옮기기에서부터 사금 채취, 부두 업무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노동을 해온 에릭 호퍼. 특히, 엘센트로의 임시수용소에서의 삶은 그의 모든 사고를 물들이게 한 계기가 됐고, 모든 글의 씨앗을 키우게 한 계기가 됐다고 고백했다. 다양한 노동을 하며 만난 다양한 사람들을 통해 다양한 삶의 모습들을 발견하고 그 속에서 철학적 사유를 한 그의 모습이 가히 존경스러웠다.


이 책은 '사람의 풍경'을 다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에릭 호퍼와 연결된, 혹은 스친 사람들과의 경험이 기록됐기 때문이다. '오랜 세월 내가 보아 온 수천의 얼굴 중에서 내 마음속에 새겨져 내면의 풍경이 된 얼굴은 12명이 넘지 않는다(p. 145)'라는 그. 하지만 이 책에는 12명 이상의 사람 풍경이 담겨있다. 그래서 나는 또 깨달았다. '기록'의 중요성을 말이다. 그리고 각 개체(인간)들의 숭고한 유일무이성도 발견한 그의 기록을 통해, 다시금 개체의 가치를 새기게 됐다. '지상은 인간들로 넘쳐 난다. 마을에서도, 들판에서도, 길에서도 사람들을 보게 되지만 당신은 그들을 주목하는 일이 거의 없다. 그러다 당신의 눈이 한 얼굴과 마주치고 경탄하게 된다. 갑자기 당신은 지상의 어떤 것과도 다른 인간의 숭고한 유일무이성을 의식하게 된다(p. 134).'. 또 감탄했던 문장은, 우리는 결코 홀로 살아갈 수 없다는, 즉 인간의 숙명이자 본능인 '무리지음'에 대한 깨달음을 줬다. '양과 마찬가지로 사람도 생에 대한 두려움과 이 세상에서 영원한 이방인이라는 느낌 때문에 종족이나 민족으로 무리를 짓는 것이리라(p. 150).'


에릭 호퍼의 기록들은 삶의 다양한 관념들에 대한 그의 세계관이 담겨 있다. 사랑과 용서, 희망과 용기 등에 대한 관념적인 것들 뿐만 아니라 약자들, 돈 등 '현실적인 문제'들도 짚어낸다. 에릭 호퍼가 상투적인 것들이 아닌 현실적인 관념들에 집중했음을 역력히 알 수 있는 문장들도 많다. 특히, '돈이 가진 힘'을 깨달은 명언 '돈이 모든 악의 근원이라는 상투어를 만들어 낸 사람은 악의 본질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며, 인간에 대해서는 거의 아는 게 없다'와 책 속의 글 '한 줌의 지폐 뭉치를 흔들자 버스가 멈추었다. 내 자리를 찾았을 때 나는 계속 지폐 뭉치를 응시했다. 갑자기 내 손에 쥐고 있는 것이 평범한 달러가 아니라 놀라운 힘을 지닌 부적이라는 느낌이 들었다(p. 173).'에서 그 사실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다양한 사람들과 만나며 그들의 생활환경에 적응해나가고 조화를 이루며 배움을 이룩해낸 길 위의 철학자, 에릭 호퍼. 그의 다른 책들도 못견디게 궁금해지게 만든 <에릭호퍼 길 위의 철학자>다. 일상의 기록이니만큼 가볍게 읽어낼 수 있지만, 한 철학가의 위대성을 발견하기에 좋은 책이었다. 에릭 호퍼의 삶을 들여다보면, 위대한 인물이 된다는 건 결국 '삶의 다양성'을 체험하는 것에서 비롯되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이론에 기반을 둔 교육을 받지 않음에도 놀라운 삶의 통찰을 펼쳐보인 이가 '실존'했기 때문에 여기에 대해 완전히 부인할 순 없을 것이다. 에릭 호퍼 이외에도 니체와 루소, 랭보, 소로 등 수많은 철학가들은 집 안(독서)·팎(걷기 등의 활동을 통한 발견)에서 세계관을 펼쳐냈다. '길 위'에서 철학을 발견했다는 식의 이야기와 기록들을 많이 접해왔을 것이다. 에릭 호퍼, 그에 대해 알고 싶거나 '독학을 통해 탄생한 철학가의 삶'을 엿보고 싶은 독자들에게 이 책을 권하고 싶다. 다시 한 번 강조하건대, 이 책은 철학서가 아닌 에세이므로 편안하게 읽어나갈 수 있다(절대! 겁 먹을 필요가 없다는 것). 책의 사이사이에 더해진 에릭 호퍼의 명언들을 공유하며 이 책의 서평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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