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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힐링 영화]
마음의 힐링이 필요한 이들에게 권함

진정한 쉼, 마음의 힐링이 필요한 이들에게 '마음이 느긋해지는 영화' 세 편을 추천한다. 나는 이 영화들로 하여금 '또 위로 받았다'.



안경(for. 눈 뜨자마자 하루가 걱정인 직장인들에게)


오기가미 나오코 감독의 열혈팬인 나는, 그녀의 영화들을 반복 감상하는 것을 즐긴다. 매해, 어떤 작품이건 간에, 나는 그녀의 작품들을 한 번씩은 다시 본다. 물론, 개봉작이라면 놓치지 않고 영화관으로 향한다. 그녀의 작품들 중, 지금 이맘때 감상하기에 최적인 것이 있다. 바로, 2007년작 <안경>이다.


시원하고 한적한 바다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이야기. 특별한 사건 사고 없이, 마을 주민들이 일상을 스케치하는 <안경>은 많은 이들에게 '힐링 영화'로 불린다. 옳다. 풍광과 사람 모두 힐링 그 자체다. 어디, 힐링 뿐이겠는가? 심지어 교훈도 있다. 그러니, 이 영화는 연이어 보여지는 바다 빛처럼 눈부시다.


'왔다', '왔다'. 

민박집 주인 유지와 생물 선생님 하루나의 이 말로부터 시작되는 영화. 과연, 누가 온다는 걸까. 봄기운을 타고 온 인물은, 매년 봄마다 이곳 바닷마을을 찾는다는 빙수 아줌마 사쿠라다. 그리고, 또 이곳에 온 이가 있다. 휴대전화가 터지지 않는 곳을 찾아 온 타에코다. 유지가 그려준 형편 없는 지도를 보고 단번에 민박집을 찾은 타에코.


그녀에게 유지는 "이곳에 살 자격이 있네요"라고 말한다. 그 말의 영문을 이해하지 못해 고개를 갸우뚱대는 타에코. 하지만 어찌됐든 이곳은 휴대전화가 터지지 않는, 그러니까 타에코가 그토록 찾아나서던 곳이 맞긴 한 듯하다. 그래서일까. 어딘가, 다른 장소들과는 다른 특색을 보인다. 그렇다면, 이 마을에는 어떤 특별함이 있을까.


함께 식사를 한다 

이곳 마을 주민들은 '함께 모여' 식사를 한다. 첫 방문에, 모르는 이들과 식사를 하기엔 어색했던 타에코는, 그 '문화'에 낯설어 피했지만, 그녀 역시 신선한 재료들로 만들어진 정갈한 먹거리들을 계속 피할 수만은 없었다. 결국. 그녀 역시 유지와 하루나, 사쿠라와 함께 '식구'가 된다.


메르시 체조

타에코가 이 마을에 들르기 전 상황은 제시되지 않지만, 우리의 삶과 크게 다르지 않은 과거를 살아왔던 것 같다. 도심에서 지친, 그래서 그곳 생활에서 잠깐이라도 벗어나고 싶었던 모양이다. 그녀 역시 '힐링이 필요'했던 상황이었던 것 같다. 오랜만에 조용하고 한적한 곳에서 늘어지게 늦잠을 자고 싶었을 것이다. 한데, 매일 아침마다 사쿠라가 그녀의 단잠을 깨우는 거다. 사쿠라에게 '이렇게 매일 아침 잠을 깨워야 하냐'며 '이제 그만해달라'고 요청한다. 그렇게 그녀의 '자유'를 획득한 '듯' 보인다. 하지만, 사쿠라가 있는 한 매일 아침 진행되는 메르시 체조의 음악 소리 때문에 타에코는 깊은 잠을 청할 수 없게 된다. 그리하여, 그녀는 짐을 챙겨 다른 숙소로 옮기고자 결심한다.


노동 

한데, 옮기려던 숙소는 유지의 민박집 이상으로 '피곤한' 곳이다. 함께 농사를 짓고, 그 노동이 끝난 후에 함께 식사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에 '질겁'한 타에코는 냉큼 빠져나와, 다시 유지의 민박집으로 향한다. 오히려, 메르시 체조 음악 소리를 듣는 게 더 낫다는 거다. 농사를 짓든, 메르시 체조로 몸을 움직이든, 이 마을 사람들은 몸을 움직이는 활동을 해나가고 있다.


사색 

이곳 마을 사람들은 사색을 즐긴다. 아니, 사색에 능통하다. 오히려, 사색을 할 줄 모르는 사람이 이 마을로 왜 왔냐고 반문하기까지 한다. 그만큼, 마을 사람들은 사색에 능하다. 뭐, 그렇다고, 사색의 특별한 방법이 있는 것은 아니다. 그냥, 바다를 바라보며 번뇌에서 벗어나, 한적함을 즐기는 것 뿐이다. 어쩌면, 사색의 방법은 너무 많은 걱정과 고민을 안고 있는 우리네 마음을 비워나가는 것 아닐까. 타에코가 짐가방을 버린 것처럼 말이다.



그렇다면 <안경>이 전하는 메세지는 무엇일까.


비워라

마음을 비우라는 것이다. 딱히 관광거리도, 즐길거리도 없는 이곳 마을을 찾는 사람들의 유일한 이유는 사색을 위해서라고 한다. 사색은 중요하다. 그 과정이 있어야만, 자신을 돌아볼 수 있을뿐 아니라, 삶에 있어 중요한 가치를 체득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물질과 내적 고민거리에서 벗어날 수 있어야만 한다. 사쿠라가 마을을 찾을 때, 마트 가듯 단출한 차림으로 오는 것처럼, 큰 걱정거리 없이 살아가는 마을 사람들처럼, 우리는 몸과 마음을 비울 줄 알아야 한다. 그토록 타에코가 강조하던 '자유'를 얻기 위해서는, 비우고 또 비워야만 한다.


기다려라, 그리고 조바심 내지 마라

유지가 타에코에게 했던 것처럼, 그는 자신의 자리에서 묵묵히 기다릴 줄 아는 사람이다. 무엇을 기다리냐는 타에코의 질문에, '흘러가는 것들'이라 답한 것의 의미를 되새겨볼 필요가 있다. 마을의 핵심이 되는 바다는 늘 흐른다(움직인다). 바다처럼, 우리의 삶 모두 흐른다. 시간은 흐르고 사람은 그 세월에 맞게 변한다. 가둬두려 노력해도 그럴 수 없는 게 인생이다. 그렇기 때문에 '때'를 기다리는 것이 지혜라 볼 수 있다. 팥을 만드는 사쿠라의 모습, 묵묵히 기다려야만 하는 낚시를 즐기는 유지의 모습 등, 이곳 사람들은 조바심 내지 않고 기다리는 것에 익숙해있다. 그것이 사색의 기본 자세라 본다.


<안경> 덕분에 나는 또 힐링할 수 있었다. 드넓은 바다 풍광을 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평온해졌고, 마을 주민들의 넉넉한 마음의 넓이 역시 내 마음을 어루만져줬다. 도심의 번잡함과는 전혀 다른 생활상을 이어가고 있는 영화 속 사람들. 현실적으로, 그들의 삶을 따를 수 없는 나는 이와 같은 영화들로 위로받을 수밖에 없다. 마음이 번잡할 때, 자연의 소리에 귀 기울이고 그들로부터 무언가를 배우고자 할 때, 이만한 영화도 없는 것 같다.



타이페이 카페 스토리(for. 취업 스트레스로 고민 중인 취준생들에게)


우리의 인생에서 무엇이 중요한가는 개인에 따라 다르다. 의식주를 충당할 수 있는 기본적인 환경을 갖췄다고 가정해 보자. 그 상황 위에서 개인이 중점을 두는 가치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 좀 더 많은 돈(물질)을 소유하고 싶은 사람, 공부(학업)에 열중하고 싶은 사람, 전 세계를 여행하고 싶은 사람, 사랑하는 사람과 행복한 가정을 꾸리고 싶은 사람 등. 내가 감히 생각하지 못한 부분에서 가치를 찾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세상은 넓고 사람은 많다. 그렇기에 가치있는 것들도 다종다양하다. 영화 <타이페이 카페 스토리>는 '심리적 가치'에 대한 사색을 고무시킨다. 실제로, 영화에서는 많은 사람들을 상대로 인터뷰를 진행하고 그것을 통해 개인이 중점을 두는 가치 기준이 다르다는 것을 입증해보인다. 가치기준에 따라 '선택'되는 것들은 우리 인생의 방향과 결과를 바꿔놓는다. 무엇을 선택하고 행할 것인가. 영화는 결국, '선택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영화의 주인공, '두얼'과 '창얼'은 자매다. 우아한 카페를 운영하고 싶었던 두얼. 디자인 전공자이지만, 그것으로 생계를 잇는 것은 포기한 상태다. 동생 창얼은, 두얼을 돕는다. 카페 개업식을 앞두고 꽃을 사러 가던 두얼은 우연한 접촉사고를 경험한다. 때마침 꽃배달 트럭과 사고가 난 그녀는, 카라(꽃)를 한아름 싣고 카페로 돌아온다. 그렇게 카페 내에는 갈 곳을 잃은 다량의 카라가 자리를 차지하게 된다. 처리 방법을 모색하던 창얼은, 개업식을 찾는 친구들에게 꽃 한 송이를 나눠주기로 결심한다. 개업식을 찾은 지인들은 선물 한 가지씩을 들고 오게 되고 그것과 꽃이 맞교환되는 형국이 된다. 이때부터 두얼의 카페는 '물물교환'으로 유명해진다. 돈을 많이 벌고 싶다던 두얼의 꿈과는 반대로, 물건들만 쌓여가는 카페. 이는, 창얼의 아이디어였다. 처음에는 못마땅해하던 두얼도, 카페가 유명해지면서 찾는 손님들이 많아지는 과정을 즐기기 시작한다. 


많은 사람들이 모이고 다양한 물건들이 쌓이면서 다채로운 이야기도 쌓여가는 두얼의 카페. 실제로 이야기가 물물교환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사연이 담긴 물건과 이야기들은, 개인의 추억에 의해 다양한 가치를 지니게 된다. 그러던 어느 날, 다양한 나라를 여행한 남자가 카페를 찾는다. 그는 35개의 비누를 갖고 나타났다. 남자는 그 비누와 무언가를 교환하기를 원하면서 두얼에게 비누 각각에 얽힌 이야기를 펼쳐놓는다. 두얼은 비누와 이야기와 교환할 그림들을 그린다. 그렇게 둘은 매일같이 물물교환을 실행한다. 

그러던 어느날, 남자는 변심했다며 자신의 비누들을 회수하기 시작한다. 심지어, '자신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며 두얼의 그림까지도 들고 간다. 이렇게 황당한 일을 겪고도 두얼은 반박할 수가 없다. 남자의 말이 맞기 때문이다. 남자는 두얼에게 이야기를 들려줬고, 그 대가로 두얼은 그림을 그렸던 것이다. 두얼이 남자로부터 들었던 이야기들은 무형의 가치이다. 이야기와 그림이 맞교환됐다고 따지면, 남자가 비누들을 들고 가는 것은 죄가 아닌 것이다. 이 상황을 통해 두얼은 마음 속 큰 깨달음을 얻게 된다. 다양한 이야기들을 좋아하는 그녀이지만, 정작 '자신만의 이야기'는 없다는 것을…. 그래서 그녀는 자신만의 이야기를 만들기 위해, 비행기 티켓만을 가지고 세계여행을 떠나기로 결심한다. 

세계여행과 공부. 어떤 것이 중요할까? 물론, 이에 대한 답변 또한 영화가 연신 이야기하고 있는 것처럼 개인에 따라 다르다. 이 두 가지 선택의 소재는 두얼과 창얼의 과거와도 연관되어 있다. 어릴적 세계여행을 선택했던 창얼과 공부(디자인)를 선택했던 두얼. 과거의 두얼의 내면에는 세계여행보다 공부가 더 중요했던 것이다. 하지만 지금의 두얼에게는, 공부나 돈 보다는 세계여행이 중요해졌다. 이처럼, 개인이 여기는 가치 판단의 기준은 모두 다르다. 심지어, 개인 내에서도 어떤 시점과 상황에 처해있느냐에 따라 가치의 척도가 바뀔 수 있다.


궁극적으로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점은 이것이다. 개인마다 가치 판단 기준과 선택이 다르다는 것. 그리고 어떠한 상황에 처해있느냐에 따라 가치관 또한 달라질 수 있다는 것. 결국, 우리는 '다름'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매 순간 달라지는 상황과 가치 판단을 안고 살아가는 우리의 인생길에 '정답'은 없다. 단지, 원하는 바를 향해 보다 나은 선택을 하고 나아갈 뿐이다. 여행을 결심한 두얼의 앞날은 현재의 그녀가 선택한 것과 또 달라질 수도 있다. 하지만, 그녀의 표정은 밝다. 그렇다면 옳은 선택을 한 것이다. 어찌됐든 여행은 사람을 성장시키는 활동들 중 하나이기에, 그녀의 앞날은 오늘의 상황보다 나아지리라 믿는다.




툴리(for. 자존감이 낮아진 주부들에게)


<툴리>는, 이 세상 모든 엄마들에게 권하고 싶은 영화다. 육아 스트레스와 그로 인한 우울증, 피하고 싶어도 피할 수 없는 독박육아의 상황에 처한 엄마들이라면 이 영화를 통해 위로받길 바라는 마음이다.



영화 속 주인공은, 제목에서 확인할 수 있는 툴리라기보단 두 남매를 키우는 중이며 최근 셋째 아이까지 낳은 마를로다. 직장과 직업을 포기한 채, 육아에 지친 그녀를 위해 오빠는 야간 보모 툴리를 소개한다. 툴리는, 관념 상의 모습과는 전혀 다른 인물이다. 26세의 젊은 아가씨다. 육아는 커녕, 출산의 경험도 없는 그녀가 보모로 들어온 것이다. 

적잖은 충격을 받은 마를로이지만, 툴리의 따듯한 말과 숙련된 육아 능력을 확인한 후 그녀에게 자신과 어린 아이를 맡기기 시작한다. 그렇게 마를로와 툴리는 둘도 없는 절친한 사이가 되고, 마를로는 삶의 활력을 찾아나간다.


 
영화를 보다보면, 다소 이해되지 않는 장면과도 맞닥뜨리게 된다. 툴리는, 마를로의 남편의 성적 취향에 맞춰 의복을 입고 침대 위까지 오른다. 그것도 마를로가 버젓이 보고 있는 상황에서 말이다. 이것이 '반전을 불러일으키는 건 아닐까'라는 염려 아닌 염려에 빠지게도 만들지만, 이는 염려로 종결지어도 좋을 것이다. 이유는, 툴리가 실존 인물이 아닌 마를로를 위로하기 위해 세상에 잠시 내려 온 구원자 같은 존재이기 때문이다. 

나는, 툴리를 마를로의 과거로 봤다. 마를로 오빠의 말처럼, 마를로는 과거의 자신을 되찾아야만 하는 순간에 직면했다. 꿈도, 희망을 잃고 아름다웠던 과거의 여성성까지 잃고 만 그녀는 누군가로부터 구원받아야 마땅한 순간에 직면한 것이다. 육아에 신경 쓰지 않는 남편과, 그녀를 미치게 만드는 아이들은 가정의 분열을 초래하는 원인이었다. 이것들이 해결되지 않는 이상, 마를로의 가정은 순탄하게 이어지지 않았을 게 분명하다. 이 때 나타난 천사 같은 존재가 바로 툴리였던 것이다. 

툴리가 등장하면서부터 참담했던 상황이 따스한 온기를 품기 시작하는데, 이 분위기가 <툴리>가 지닌 매력이라 볼 수 있겠다. "전체를 치료하지 않고 부분만 고칠 순 없어요. 당신(마를로)을 돌보러 왔어요.". "실패한 삶이라고 생각하지만 오히려 꿈을 이루신 거예요."라는 툴리의 주옥 같은 대사들은, 영화를 보는 모든 이들의 마음을 훈훈하게 데우기에 충분하다. 
    
그렇다. 현재, 독박육아에 지친 엄마들은 간혹 자신의 현재가 실패한 삶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다. 치료해야 할 심신의 고통이 있지만, 이것들이 케어되지 않고 이미 일상화됐을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관점을 조금만 바꿔 생각해 보면 이 모든 상황에 누군가에겐 부러움을 살 만한 것일 수도 있다. 그런 의미에서 이 영화는 남편과 만나 가정을 이루고, 자식을 낳아 기르는 일상의 행복이 얼마나 큰 행복인가를 인지시켜준다는 점에서도 의의가 있다. 

<툴리>는 이 세상 모든 엄마를 위한 위로작인 동시에, 부부가 함께 감상하며 서로의 존재 가치를 깨닫고 더 나은 삶으로 나아가기를 돕는 작품이다. 이 영화를 보며 떠올랐던 영화가 있다. 프랑소아 오종의 <리키, 2009>라는 작품이다. 두 영화의 공통점은, 구세주와 같은 캐릭터의 등장만으로 우리의 앞날은 완전히 달라질 수 있다는 메시지를 안고 있다는 것이다. 

독박육아, 육아로 인한 우울증에 지친 엄마들이여. 이 영화를 통해, 조금은 위로받기를 바란다. 이 위로의 힘을 더 키우고 싶다면 '남편과 함께 감상'하기를 권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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