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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여행의 기술>

알랭 드 보통이 말하는 다양한 여행 방식

여행의 기술. 누구나 할 것 없이 여행은 한 사람의 삶에 있어 중요한 이벤트다. 한편, 같은 시각에 같은 곳을 찾는다 할지라도 받아들임과 느낌의 차이, 안목의 폭은 사람마다 다른 것이 여행이기도 하다.


책<여행의 기술>은 알랭 드 보통이 런던에서 출발하여, 암스테르담, 마드리드, 시나이 사막, 프로방스 등을 거쳐 런던 해머스미스로 귀환하기에 이르기까지 여행을 통해 그가 귀감을 얻은 인물들의 철학과 활동들을 정리하고 그에 대한 드 보통의 사색을 에세이 형식으로 풀어나간다.


드 보통은 멘토로 끌어들여온 샤를 보들레르, 에드워드 호퍼, 귀스타브 플로베르, 욥, 빈센트 반 고흐, 존 러스킨 등의 인물을 '안내자'로 설정하고 그들이 삶에서 중요히 여겼던 점들을 여행의 기술자로 독자들에게 소개한다. 특히나 드 보통의 기획력이 돋보이는 <여행의 기술>은 출발 전 기대를 안고 어떠한 장소로 향할 것인지 정하는 우리의 여행에 대한 보편적인 심리에서부터 여행의 동기, 여행 중에 느끼는 풍경과 숭고함, 그곳에서 발견할 수 있는 유적지 및 미술들, 아름다움을 소유하는 방법들, 여행에서 일상으로 귀환한 후에 또 달리 느낄 수 있는 여행의 매력을 담아낸다.


제법 까칠한 면도 있는 드 보통은 그의 여느 책들과 마찬가지로 여행에 있어서도 솔직하고 냉담하다. 위트나 풍자보다는 이성과 현실성이 돋보인다.


'기대에 관하여'에서는 여행의 현실이 우리가 기대하는 것이 아니라는 날카로운 지적과 함께 그렇기 대문에 우리의 기대에 부응할 수 있는 것은 현실보다는 예술 속에서 더 쉽게 경험할 수 있다고 설명한다. 즉, 여행이라는 현실을 통해 행복을 끌어내려면 감정적 또는 심리적 요구들을 스스로가 충족시키는 것이 필수라는 것이다. 상상력은 실제 경험이라는 현실보다 더 나은 대체물을 제공할 수 있기에 우리의 '기대'는 중요한 정신적 산물에 해당한다.


한편, '여행을 위한 장소들에 대하여'에서는 휴게소, 공항, 비행기, 기차 내에서 느낄 수 있는 설렘과 일상에서 벗어나 느끼는 자유 등의 심리를 샤를 보들레르의 글과 에드워드 호퍼의 그림들을 통해 기록한다. 특히, 드 보통의 에드워드 호퍼의 작품들을 해석하는 통찰력을 실로 놀라웠다. 읽는 내내 공감의 경탄을 자아내게 만들었으며, 다시 한번 에드워드 호퍼의 도시민들의 고독함과 쓸쓸함을 재확인하게 만들어줬다.


'고독'이 배어있는 에드워드 호퍼의 작품들


우리가 여행에서 느끼는 '이국적인 감정'에 대해서는 귀스타브 플로베르를 안내자로 설정한다. 귀스타브 플로베르가 동양에 대한 관심과 사랑을 이야기하면서 조국에 대한 새로운 정의를 내린다. 우리가 태어나는 것은 비자유로웠지만 충성심이 향하는 조국을 재창조할 수 있다는 것이 귀스타브 플로베르의 주장이다. 


여행에 있어 빠질 수 없는 '호기심'을 말 할때 드 보통은 알렉산더 폰 훔볼트를 안내자로 설정한다. 같은 곳을 여행한다 할지라도 단순한 여행자와 목적(임무)이 명확할 경우에 호기심의 수준이 훨씬 높아진다는 것이 드 보통이 훔볼트를 통해 느낀 여행의 기술이다. 이미 안내책자를 통해 규정지어진 특정한 장소의 유적지에 이끌릴 것이 아니라 개인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것들을 직접 찾아나설 때 여행에서의 호기심이 빛을 발휘한다는 것이 드 보통의 의견이다.


나도 그러하지만, 내면의 치유를 위해 시골 풍경을 즐기러 가는 경우가 많다. 드 보통이 레이크 디스트릭트를 여행하면서 윌리엄 워즈워스의 철학을 인용한 것은 탁월한 선택이라 생각한다. 자연에 대한 심오한 철학을 가졌던 워즈워스는 자연을 자주 여행하는 것이 도시의 악을 씻어내는 데에 필수적인 해독제라고 말했다. 한편, 자연의 숭고함은 위축된 인간의 기운을 북돋는 데에 도움을 줄 수 있다는 것은 '숭고함에 대하여'에서 만나볼 수 있다.


드 보통이 프로방스를 여행하면서 안내자로 선택한 빈센트 반 고흐. 고흐와 프로방스는 이 책에서 뿐만 아니라 다양한 문화영역에서 절대 연계선상에서 빠질 수 없는 관계다. 우리가 반 고흐를 포함하여 다양한 예술가들의 작품을 미리 알고 있노라면, 여행 중에서 발견하는 작품 속 풍경들에 심리적 무게를 심어줄 수 있을 것이다. 이는 어떤 새로운 단어를 여러 차례 들어도 눈치채지 못하다가, 그 의미를 아는 순간 비로소 그 단어를 듣게 되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눈을 열어주는 미술에 대하여' 챕터에서는 비교적 고흐의 상세한 프로방스에서의 삶을 담아낸다. 한편, 특출난 관찰력과 섬세함을 겸비한 고흐의 작품들은 예비 여행자들에게 어떠한 곳을 여행할지 안내하는 선행자 역할을 하기도 한다.


여행에서 만나게 되는 풍경들은 우리에게 '아름다움'을 제공한다. 그리고 우리는 그 아름다움을 '소유'하고 싶어한다. 이 점에 대해서는 존 러스킨이 안내자로 설정되어 있다. 우리는 흔히 카메라를 풍경 앞에 대지만, 존 러스킨은 '말 그림'을 통해 풍경을 묘사하라고 말한다. "나는 보는 것이 그림보다 더 중요하다고 믿습니다. 나는 학생들이 그림을 배우기 위해서 자연을 보라고 가르치기보다는, 자연을 사랑하기 위해서 그림을 그리라고 가르치겠습니다."


드 보통이 다시 런던 해머스미스로 '귀환'했을 때 사비에르 드 메스트르의 방 여행을 찬양했다. 사비에르는 폭풍이나 강도나 절벽을 무서워하는 사람들과 가난한 사람들에게 방 여행을 권했으며 우리가 먼 땅으로 떠나기 전에 우리가 '이미 본 것에 다시 주목하라'고 주장했다. 


<여행의 기술>은 여행을 결심하고 여행을 떠나기 전후(前後)에 이르기까지 모든 여행 과정을 윤택하게 만들어주는 데에 큰 몫을 한다. 여행으로부터 귀환했을 때 우리는 일상으로 돌아왔다는 회의와 또다시 권태로울 일상에 불안을 느끼겠지만, 그 점을 극복하는 방법까지도 드 보통은 놓치지 않고 설명해준다. 여행을 좋아하는 독자들이라면, 한 번 쯤은 꼭 읽어보기를 권한다. 여행이라는 소재를 다룬 책 한 권 속에 철학, 문학, 미술, 사진 등에 대한 모든 삶의 지식들이 녹여져 있는 훌륭한 서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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