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려도, 서툴어도 괜찮아
'느려도, 서툴어도 괜찮아'라고 위로의 메시지를 건네는 작품들을 좋아한다. 영화 <일일시호일(日日是好日)>이 그랬다. 오랜 시간 다도를 배워왔지만 '아직도' 서툰 노리코의 삶을 다룬 작품은 보는 내내 내게 '힐링'을 선사했다.
《매일매일 좋은 날》은 <일일시호일>의 원작 도서다. 일본의 인기 에세이스트 모리시타 노리코의 대표작이자 오랫동안 사랑받아 온 스테디셀러이다.
영화도 인상 깊었지만 개인적으로는 도서가 더 좋았다. 이유는 명문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가슴에 새기고 싶을 정도로 아름다운 글귀들이 많았다. 영화 속 다케타 선생 역을 맡았던 故 키키 키린이 직접 위로와 격려의 말을 건네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고나 할까. 영화를 볼 때도 그녀를 감싸고 있는 듯한 온기에 취했었는데, 그 여운이 책을 읽을 때 영향을 미친 것도 같다. 만약 영화 속 인물이 키키 키린이 아니었더라면 이렇게까지 감흥을 느끼진 못했을 수도 있다.
<일일시호일>보다 풍성한 내용을 접할 수 있는 《매일매일 좋은 날》. 즉 흐름은 비슷하다. 엄마의 권유로 스무 살에 다도를 접하게 된 노리코는 무려 40대에 이르기까지 2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차의 매력'에 빠져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그녀는 다도의 세계에 대해 정확히 알지 못한다. 이는 우리네 인생과 닮아 있다. 아무리 오래 살아도, 수많은 경험을 했더라도 한 치 앞을 알 수 없는 것이 우리의 삶이다.
다도에는 정답이 없다. 끊임없이 변하는 계절처럼 말이다. 뭘 하나 배워서 익혀 몸에 밸 정도가 되면 새로운 다도법이 등장해 노리코를 당황하게 만들었던 것처럼. 다도에서 가장 중요한 점은 '몸에 자연스럽게 입는 것'이다. 이성과 의식을 뒤로 하고 '오감'에 중점을 두는 것이다.
영화에서도 등장하지만, 뜨거운 물과 차가운 물이 떨어지는 소리는 다르다. 하지만 우리는 그것들의 차이를 간과한 채 살아간다. 영화와 책 모두는 계산적이고 의식적인 삶을 살아가는 우리들의 '본능과 무의식을 흔들어 깨운다'.
번잡하고 흐트러진 마음을 잡고 싶다면 영화, 책 어느 것이라도 좋다. 두 포맷 중 하나라도 접해보길 권한다. 스스로가 자연의 일부가 되는 기분, 온전히 자연과 자기 자신에게 집중하는 순간을 경험하길 바란다.
그렇다면 내가 이 책에서 '반한' 문장들을 몇 가지 정리함으로써 서평을 마무리하겠다. 다도뿐 아니라 삶의 메시지도 다분히 갖추고 있는 이 책. 추천, 또 추천한다.
"그러냐, 알겠다, 괜찮아, 괜찮아. 다음에 보면 되니까." 그것이 아버지와 나눈 마지막 말이 되었다. (중략) 나는 다급히 시간을 돌이키려 했다. 과거로 돌아갈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돌아갈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평범하고 진부하다고 생각했던 단란한 네 식구의 모습은 이제 두 번 다시 볼 수 없다. 그 '두 번 다시'라는 말의 냉혹함에 그 자리에 선 채 꼼짝할 수 없었다. 인간은 어느 날을 경계로 두 번 다시 만날 수 없게 되는 순간이 반드시 찾아오는 것이다. - 230
소중한 사람을 만나면 함께 먹고 함께 살아가며 단란함을 만끽하자. 일기일회란 그런 것이다. - 232
세상은 밝고 긍정적인 것만 가치가 있다고 여긴다. 하지만 애초에 반대가 존재하지 않으면 밝음도 존재하지 않는다. 빛과 어둠이 모두 존재할 때 비로소 '깊이'가 태어난다. 어느 쪽이 좋고 어느 쪽이 나쁜 것이 아니라 어느 쪽이든 저마다 좋은 것이다. 인간에게는 그 양쪽이 모두 필요한 법이다. - 236, 237
학교에서는 정해진 시간 내에 정해진 정답을 이끌어내는 사고방식을 배운다. 올바른 답을 빨리 찾아낼수록 우수하다는 평가를 받고, 일정 시간이 지나거나 다른 답을 제출하거나 그런 제도를 따라가지 못하면 낮은 평가를 받는다. 그러나 차를 이해하는 데는 시간제한이 없다. 3년이 걸려 깨닫든 20년이 걸려 깨닫든 본인의 자유다. 깨달을 때가 오면 깨닫게 된다. 성숙의 속도는 사람마다 다르다. 그 사람의 때를 기다리는 것이다. 빨리 이해했다고 해서 좋은 평가를 받지도 않는다. 이해가 늦더라도 고민하는 과정에서 그 사람만의 깊이가 탄생한다. - 266
학교도 다도도 인간의 성장을 목표로 삼고 있다. 하지만 한 가지 큰 차이가 있다. 학교는 언제나 '타인'과 비교하고, 다도는 '어제까지의 자신'과 비교한다는 점이다. - 26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