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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유열의 음악앨범> 리뷰,
결국 닿을 인연이었다

인연은 내 뜻대로 되지 않는 법이다. 사랑, 우정, 일로 엮인 관계 등. 이 모든 연에는 다 때가 있는 법이다. '인생은 타이밍이다'라는 말이 괜히 탄생한 게 아니다.



영화 <유열의 음악앨범>은 인연을 다룬다. 믿을 수 없을 정도의 우연에 의한 만남과 이별을 반복하는 남녀의 이야기를 통해 '이어질 수밖에 없는 인연'을 말하는 작품이다.



주인공 현우(정해인)와 미수(김고은)은 우연히 연에 닿은 관계다. 누군가에게 우연이란 스치고 쉽게 부서질 수 있는 찰나의 순간으로 정의될 수 있지만, 이들의 관계는 놀랄 만큼 깊고 짙다. 물론, 이들을 이어주는 매개체는 있다. 제목이자 영화 속에 끊임없이 등장하는 '유열의 음악앨범'이다. 이는 1994년부터 10여년 간 KBS FM라디오에서 진행된 인기 라디오 프로그램이다. 이 소재가 일종의 코드 역할은 하지만 영화에서 주목해야 할 점은 '연(緣)'이라는 점을 명심하자.



우연에서 시작된 현우와 미수의 관계는 거듭 반복되는 만남과 이별에도 불구하고 필연으로 이어진다. 결국 둘의 연은 운명, 아니 숙명이라 봐도 좋을 것이다. 이 둘의 관계는 믿기 어려울 정도로 질기다. 우리는 경험 상 잘 알고 있다. 한 번 어긋난 연이 다시 닿는 것이 얼마나 힘든 것인지를 말이다.


나 같은 경우도 한 번 헤어진 사람과 우연히 재회한 경험이 많지 않다. 그런데, 한 인물과는 (믿기 힘들 수 있지만)다섯 번 이상 마주친 적이 있다. 물론 서로를 스쳐 보냈지만 인지한 건 분명하다. 연이 끊긴 사람과 마주하면 괜히 죄 지은 사람 마냥 피하기 일쑤였다.


이런 나의 경험을 토대로 <유열의 음악앨범> 속 인물들을 판단하자면 서로에 대한 갈망의 강도가 높은 듯하다. 잦은 우연의 만남을 피하려고만 했던 나와 달리, 현우와 미소는 서로와의 만남을 원했고 노력도 아끼지 않았다. 그에 비해 헤어질 땐 쿨한 면모도 있다. 보내줘야 할 땐 슬픔을 감내하며 보내줬다. 다양한 상황 때문에 이별의 수순을 밟아야만 했던 두 사람은 그렇게 만남과 헤어짐을 반복했다.



이렇듯 <유열의 음악앨범>은 숱한 악조건에도 불구하고 완성된 인연(사랑)을 다룬 낭만적인 영화다. 사회적으로도 질풍노도의 시기인 1990년대를 중심 시대적 배경으로 진행되기 때문에 만남과 이별의 상황이 더 극적으로 느껴지기도 한다.


이 영화는 멜로드라마임에도 불구하고 심장이 조여들고 편안해지는 미스터리한 분위기를 지니고 있다. 둘의 만남이 어떻게 될지에 대한 궁금증에 대한 끈을 놓을 수 없기 때문이다. 현우와 미수의 관계가 조금씩, 점진적으로 가까워지는 과정을 지켜보는 것은 마냥 편안한 로맨스물을 보는 것과는 사뭇 다른 느낌이었다(물론 정해인의 외모가 큰 몫을 하기도 했다. 심장 폭행 당함).


인연의 끈을 조율하는 힘을 보여주는 <유열의 음악앨범>. 혹자에게는 지루한 멜로드라마로 느껴질 수 있겠지만 개인적으로는 정지우 감독의 연출력에 의한 특유의 무드가 좋았던 영화다. 내게도 저들과 비슷한 숙명의 연이 다가올까. 괜한 기대심도 품게 만들어 더 심장 떨리게 만드는 작품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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