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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나의 작은 시인에게>, 욕망의 낮과 밤

뒤통수 제대로 맞았다. 제목만 보고 서정적이고 낭만적인 작품일 거라 예상했던 <나의 작은 시인에게>는 잔혹한 심리 스릴러였다.


주인공 리사(매기 질렌할)는 유치원 교사로, 일주일에 한 번씩 시 수업을 받는다. 예술에 대한 욕망은 크지만 그에 비해 특출난 재능을 갖고 있지 않았던 그녀는 다섯 살의 원생 지미(파커 세박)의 시를 듣고 충격에 휩싸인다. 그야말로 '촉이 온 것'이다. 리사는 지미가 불현듯 떠오른 시상을 읊조릴 때마다 그것을 기록한다. 그런 후 시 수업에서 마치 자신의 작품인 것 마냥 발표해 타인의 칭찬을 산다.



지미를 만나기 전 리사의 일상은 특별할 것 없이 흘러갔다. 하지만 지미의 재능을 발견하고 난 이후부터는 예술의 감각이 깨어나기 시작한 것이다. 단조로운 일상을 깨우기 위해 시작한 시 수업이지만 냉담한 평가만을 받아온 그녀는 자괴감에 빠져 있었다. 이는 지미의 시를 발표한 후 타인의 극찬을 받았을 때 그녀의 표정을 보면 알 수 있다.


새로운 자극, 타인의 인정의 맛을 알게 된 리사의 욕망은 걷잡을 수 없이 커져간다. 어떻게든 지미의 시를 받아 적어야만 하는 리사의 행동은 폭력에 가깝다 느껴질 정도로 번져간다. 낮잠 자는 시간에 깨워 시 읊기를 유도하는가 하면, 지미의 보모를 자처해 미술관 등을 돌아다니며 영감을 불어넣기 위해 노력한다.



리사의 행동은 그녀의 다양한 심리가 반영돼 있다. 지미의 천재적인 재능에 대한 질투와 동경, 타인으로부터 인정(사랑) 받고자 하는 욕망과 집착이 뒤섞여 있다.


흥미로운 점은 다섯 살의 지미가 리사의 행동이 폭력이라는 것을 온 몸으로 느끼고 있다는 점이다. 이 둘의 관계는 3자의 입장에서 보면 꽤 좋아보인다. 아이의 천재성을 키워주려는 선생님과 그런 선생님을 따르는 아이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게 보이니까. 둘의 '진짜 관계'는 그들만 알고 있다.


결국 극단적인 선택을 한 리사는 지미와 함께 먼 여행길에 오른다. 바다에 도착해 즐거운 한 때를 보낸 후 휴식을 위해 숙소에 들른 그들. 리사가 샤워를 하는 도중 지미는 911에 '납치당했다'며 전화를 건다. 여기에 대한 리사의 반응이 흥미롭다. 그녀는 지미에게 정확한 주소를 알려주면서 "세상이 널 지워버리려고 해, 너 같은 사람들을 말이야"라며 울부짖는다.


리사는 경찰이 오기를 기다린다. 겸허히 자신의 상황을 받아들이는 씬은 지금껏 그녀가 지미에게 품었던 욕망과 가했던 강압적인 행동들과는 사뭇 다르게 느껴진다. 지미가 경찰관에게 안겨 경찰차에 탄 순간 말한다. "시가 떠올랐어요."


하지만 그의 시에 귀 기울여주는 이는 없다. 유일한 존재였던 리사가 떠났기 때문이다. 영화의 끝에 이르러서야 들었던 생각은 '리사의 행동이 지미를 위한 진심 어린 마음에서 우러나온 것일 수도 있었겠다'는 것이다.


무료하고 건조한 일상을 살아가던 한 중년 여성은 강렬한 예술혼은 지니고 있었지만 재능이 부족했다. 리사는 알고 있었다. 예술은 그것을 갈망하고 노력한다고 해서 이뤄낼 수 없다는 것을 말이다. 그런 그녀가 천부적인 능력을 타고난 어린 예술가를 만난 후 감정과 행동의 변화를 경험했다.


이 영화를 본 후, 최근에 감상했던 <글로리아 벨(Gloria Bell, 2018)>이 떠올랐다. 특별할 것 없는 지루하고 건조한 일상을 살아가던 중년 여성이 자신의 욕망을 표현할 소재를 찾아가는 과정, 그리고 그것이 불러온 잔혹한 결말에 대한 스토리텔링이 <나의 작은 시인에게>와 비슷했기 때문이다. 특히 두 작품 속 주인공들의 나른한 표정들이 오버랩됐는데, 그 씬들을 볼 때면 가슴 깊숙한 곳에서 슬픔이 차올랐다.


감상하는 동안 먹먹하고 섬뜩한 감정이 교차됐던 <나의 작은 시인에게>. 예술에 대한 욕망을 품어본 경험이 있는 사람이라면 공감할 만한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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