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 청소하다 개봉한 민음사 '세계시인전' 포스트카드.
백석의 '사슴'이 가장 좋다. 그리고 꽃으로 위로받고 싶은 지금의 마음을 잘 담아내준 김수영의 '꽃잎'도...
현명한 생각을. 술을 내려라.
짧은 우리네 인생에 긴 욕심일랑 잘라내라.
말하는 새에도 우리를 시새운 세월은 흘러갔다.
내일은 믿지 마라. 오늘을 즐겨라.
- '카르페디엠' 호라티우스
누구는 성품과 명성에서 더 훌륭하다
도전하고, 누구는 피호민이 더 많다
떠벌리지만, 죽음의 필연은 높으나
낮으나 데려감에 차별이 없다.
모든 이름을 담아 항아리를 흔든다.
- '소박함의 지혜' 호라티우스
내 절친한 이들마저 가증하다 여기는데,
사랑하던 이들조차 등 돌리네.
나는 피골 상접하여 오직 잇몸만 남았구나.
불쌍하게 여겨 다오, 동정하라. 자네들은
내 친구들이니......
신의 손이 나를 쳤다.
너희마저 신이 되어 나를 괴롭히는가?
내 몰골만으로 성이 차지 않는 것인가
- 욥의 노래
나를 그처럼 잔혹하고 거부하여,
나에게서 즐거움을 금하고,
또 일체의 쾌락을 쫓아낸,
내가 말했던 그 여인에게는
핏기 없고 가련한, 죽어 생기 없는 내 심장을
유물함에 넣어 남긴다.
알면서도 그녀 내게 이러한 불행을 안겨 주었지만,
신이여, 그녀의 죄를 사해 주소서!
- '유언의 노래' 프랑수아 비용
나는 무얼 바라
나는 다만, 홀로 침전하는 것일까?
인생은 살기 어렵다는데
시가 이렇게 쉽게 씌어지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 '별 헤는 밤' 윤동주
그녀의 하얀 몸이 불에서 썩고 있을 때
신이 점차 그녀를 망각하는 일이 발생했다.
천천히, 처음에는 얼굴, 다음에는 손,
마지막으로 머리카락을 잊었다.
그녀는 강물 속의 썩은 고기들처럼
썩은 고기가 되었다.
- '검은 토요일에 부르는 노래' 베르톨트 브레히트
시대는 우리에게 노래하라고 요구하고는
우리의 혀를 잘라 버렸다.
시대는 우리에게 거침없으라고 요구하고는
거짓말을 늘어놓았다.
기대는 우리에게 춤추라고 요구하고는
우리를 강철 바지에 욱여 넣었다.
그렇게 시대는 기어이 뜻대로
요구한 개짓거리를 손에 넣었다.
- '거물들의 춤' 어니스트 헤밍웨이
그녀는 내가 그리울 거야
내 사랑이 아니라
내 피 맛이
- '사랑은 지옥에서 온 개' 찰스 부코스키
꽃을 주세요 우리의 고뇌를 위해서
꽃을 주세요 뜻밖의 일을 위해서
꽃을 주세요 아까와는 다른 시간을 위해서
- '꽃잎' 김수영
하늘이 이 세상을 내일 적에 그가 가장
귀해하고 사랑하는 것들은 모두
가난하고 외롭고 높고 쓸쓸하니
그리고 언제나 넘치는 사랑과
슬픔 속에 살도록 만드신 것이다
- '사슴' 백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