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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엄마가 돌아가셨을 때 그 유골을 먹고 싶었다>

엽기적인 제목에 '헉'했을 예비 독자들. 하지만 정작 책 속으로 들어가면 엽기보다는 사랑스러움과 인문학적 요소가 다분하니 염러 말고 읽어 보시길.



사실 이 제목에 대해 저자 미야가와 사토시는 해명을 펼치기도 했다. 많은 이들이 "호러 만화인가요?", "처음엔 좀 무서워서 꺼려졌습니다"라는 의견을 냈다고 한다. 편집부에서도 여성 독자들이 책을 집어 들기 주저할 거라면서 다른 제목을 고민하기도 했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자는 다소 섬뜩할 수 있는 제목을 세상에 소개했다. 이유는 '이 마음이 자신 안의 가장 강렬한 감정'이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너무 슬퍼서 견딜 수 없었던 기억이 떠오르는 것과 동시에 '이토록 근원적이고 궁극적인 사랑을 나도 누군가를 향해 품는 것이 가능하구나'라는 그런 용기도 생겨나는 제목이 아닐까 싶었습니다." - '작가의 말' 중에서



이 만화 에세이는 일본에서 누적 조회수 500만 뷰를 돌파한 화제의 도서다. 저자의 엄마가 돌아가기 전후를 기록한 것으로, 모든 이들이 겪을 수밖에 없는 가족(부모)의 죽음에 대해 사색하게 만든다.


부모의 죽음은 슬프다. 그리고 그들이 죽고 난 후에야 우리는 그들에게 최선을 다 하지 못한 것에 대해 후회하기 시작한다. 살아 생전 해주지 못한 것들에 대해 미련을 갖고 스스로를 한탄한다. 나의 부모들도 그랬다. 조부모들이 생을 달리하셨을 때, 오열하며 내뱉었던 말들이 기억에 생생하다. "살아있을 때 여행도 많이 못 갔는데... 조금만 더 기다려주시지..." 하지만 생이 연장됐다고 해서 상황이 달라졌을까. 장담하건대 '아니었을 것'이다.


우리는 이기적인 동물이기에 내 상황에 집중하기 일쑤다. 바쁘다는 핑계로 부모와 함께 보내는 시간을 소홀히하는 것쯤은 너나할 것 없는 모두의 경험이다. 그래놓고 소중한 사람들이 사라진 후에야 비로소 후회한다. 우리는 어떤 수단과 방법으로도 돌이킬 수 없는 상황에 대해 미련을 갖는 미련한 존재들이다.


저자 역시 그랬고 나도 그렇다. '진짜 행복은 사랑하는 사람들(특히 가족)과 함께 보내는 소소한 시간들에서 오는 거야'라는 아름다운 진리를 알면서도 행동에 옮기지 못했다. 그래서 이와 같은 책을 접하면서도 '있을 때 잘 하지'라는 말을 함부로 내뱉지 못한다.


'이제는 압니다. 한밤중에 계속 전화벨이 울리는 것도, 늦게까지 집에 불이 켜져 있는 것도, 그게 얼마나 고마운 일이었는지.'


'엄마가 돌아가신 뒤 무의식적으로 무언가에 몰두하며 하루가 빨리 끝나기만을 기다리는 생활이 계속 이어졌습니다. 딱히 예전과 같은 웃음이 사라진 것도 아니다. 맛있는 걸 맛있다고 느끼지 못하게 된 것도 아니고. 다만 엄마가 없는 이 세계에서는 항상 가슴 언저리에 납덩어리가 걸려 있는 듯 소화되지 않는 나른함이 계속 이어졌습니다.'


'일과 관련된 내 자랑을 질리지도 않고 자신의 일처럼 열심히 들어주는 사람은 아마도 이 세상에서 엄마 단 한 사람. 소소한 자랑거리로 엄마를 기쁘게 해드리는 일이 어느새 나의 즐거움이 됐던 것입니다. 그런 즐거움이 갑자기 빼앗겨버렸으니 감기에 걸린 것처럼 계속 나른하고 몸이 무거운 걸...'


책에는 세상 가장 슬픈 일을 겪었음에도 배가 고파 음식을 먹는 것 등 다양한 인간의 본성들이 그려져 공감을 자극한다.


'엄마는 가슴을 크게 움직이며 열심히 호흡하고 있었습니다. 솔직히 어제는 시끄러워서 잠을 잘 수가 없다고 생각했었는데... 미안해요... 엄만 필사적으로 숨을 쉬고 있던 거구나.'


'이런 상황에서도 배가 고프고 아무렇지 않게 음식이 넘어가다니. 이런 우리가 불경한 걸까?'


'나도 모르는 새에 '당신도 나와 똑같이 당해봐'라고 생각하는 내가 있었습니다.'


또한 <엄마가 돌아가셨을 때 그 유골을 먹고 싶었다>는 우리가 평소에 생각하지 않았던, 혹은 생각하기를 꺼리던 죽음에 대한 사색의 기회를 제공한다. 저자가 생각하는 죽음은 '순서'라고 한다.


'그보다 다는 죽음은 순서라고 생각한다. 누구에게나 차례가 돌아오는 예방주사 같은 것. 언젠가 나도 죽어서 이 세상에서 갑자기 사라질 테고 무르고 새하얀 뼈만 남게 되겠지. 그러니 나를 불쌍하게 여기지는 않아도 된다.'


저자는 엄마표 카레를 사랑했던 사람이다. 음식만큼 추억이 깃든 것도 없을 것이다. 심지어 그는 도쿄의 수많은 카레집들도 엄마의 카레맛을 따라가지 못한다고 고백했다. 이보다 더 짙은 사랑고백이 또 있을까 싶다.


'도쿄에는 맛있는 카레집이 많다. 다진고기 카레, 스파이스 카레, 수프 카레 여러 가지를 먹어봤지만 역시 엄마의 카레와는 비교할 수 없다. 추억의 미화일까.'



추억은 남은 자들을 살아가게 만드는 힘이자, 죽은 자들을 그리워하게 만드는 힘이다. 그래서 우리는 더 많은 추억을 남기기 위해 더 많은 시간(경험)을 투자한다. 그래야 죽음 이후에도 그들이 존재했음을 기억할 수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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