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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냥의 시간> 후기,
벗어날 수 없는 현실의 굴레

"거기 바다 색깔은 완전 다르겠지?"


빛나는 데뷔작 <파수꾼>으로 국내 영화계를 흔들었던 윤성현 감독의 신작 <사냥의 시간>이 넷플릭스를 통해 전 세계에 공개됐다. 한국 영화로는 최초로 베를린국제영화제 베를리날레 스페셜 갈라에 공식 초청되어 전 세계 영화 팬들의 이목을 끌기도 했다.


<파수꾼>이 10대 청소년들의 삶을 예리하게 조명한 영화라면 <사냥의 시간>은 20대 청년들의 삶에 집중한다. 희망 없는 도시에서 살아가고 있는 청년들의 현실과 이상향 사이의 간극을 상징적으로 담아낸 것이 특징이다. 영화가 설정한 세계관은 디스토피아적이다. 유토피아를 꿈꾸지만 결국 어두운 현실을 벗어날 수 없는 상황에 처한 네 명의 청년들의 상황은 청춘의 공감을 이끌어내기에 충분하다.


영화는 더 이상 잃을 것도, 떨어질 곳도 없는 청년들을 지독하게 옥조인다. 금융위기로 희망이 사라진 도시에서 숨겨둔 돈마저 휴지조각으로 변해버려 암울한 상황에 처한 인물들. 상황과 캐릭터 설정만으로도 암울하다. 준석은 어린 시절부터 꿈꿔온 하와이(유토피아, 야자수 나무 문신을 팔에 새김)와 같은 곳에서의 생활을 고대하며 대만 컨딩으로의 밀항을 계획하고 장호, 기훈, 상수에게 위험한 제안을 한다.



결국 청년들은 생존의 위협까지 받는 상황에 처한다. 행복한 미래를 꿈꾼 것도 잠시, 정체 모를 인물 한(박해수)에게 쫓겨 제 목숨 하나 제대로 지키지 못해 피땀 흘리는 상황에 직면한 청년들의 모습은 불안한 시대를 살아가는 청춘의 실상을 압축해 보여준다.


<사냥의 시간>이 집중한 요소는 디스토피아적 세계관과 추격전이 전하는 서스펜스다. 내러티브는 단순하다. 어두운 세계에서 벗어날 수 없는 인물들의 현실을 보여주는 것이 전부다. 청년들이 추격당하고 그에 맞서는 과정을 통해 심장을 조이는 긴장감을 선사하는 것이 이 영화의 매력이다.



단조로운 서사에도 불구하고 두 시간 남짓한 시간 동안 긴장의 끈을 놓지 못하게 만드는 힘은 연출에 있다. 시청자는 청년들의 편이 되어 그들이 '제발' 살아남을 수 있기를 응원한다. 하지만 전반적인 상황을 알고 있는 시청자는 주인공들의 목숨이 위험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여기에서 오는 긴장감은 손에 땀을 쥐게 만든다.


한편, 인물들의 총질을 체험케 만든 것도 <사냥의 시간>의 매력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총격전이지만 감독은 설득력 있는 가상 세계를 만들기 위해 비주얼과 사운드에 신경을 많이 썼다고 한다. 장소 헌팅에서부터 미술, 촬영, 조명, CG에 이르기까지 리얼리티와 극한의 서스펜스를 보여주기 위해 고심했다는 후문이다. 장소 헌팅을 위해서는 디스토피아적 세계관을 표현하기 위해 미국, 남미, 유럽의 몰락한 도심이나 빈민가를 참고했고, 컨셉트의 강화를 위해 그래피티, 힙합, 스트리트 패션 등 하위문화를 상징하는 것들을 덧붙였다고 한다.



인물 묘사의 경우, 액션보다는 내면의 감정을 보여주는 데 집중했다고 한다.

"리얼리티가 살아 있는 영상을 위해 현장에서 배우, 스태프들과 얘기를 나누며 사실적인 부분에 많은 신경을 썼다. 액션 시퀀스의 경우 액션 자체가 보이기보다는 캐릭터의 감정이 드러나길 바랐다. 멋을 부리는 것보다는 담백하고 사실적으로 그려냈고 그 안에 최대한 감정이 담긴 액션을 촬영하려 했다."


이렇듯 <사냥의 시간>은 "이거 악몽이지? 이게 어떻게 현실이야?"라는 기훈의 대사처럼, 악몽 같은 현실을 보여주는 영화다. "거기 바다 색깔은 완전 다르겠지?"라며 희망을 품는 준석과 "어디에 있든 벗어날 수 없어."라고 충고하는 한의 상반되는 대사처럼 희망과 절망을 교차하여 녹록지 않은 현실을 강하게 보여준다.



더불어, 한낱 욕망이 걷잡을 수 없는 사건으로 번져가는 과정을 통해 '인간의 본능'에 대한 메시지도 전한다. 악몽의 134분이 끝나면 큰 고통과 걱정 없는 지금의 삶이 천국이라 느끼게 될 것이다. 봉식(조성하, 총기 도매상)의 ‘법 밖의 세상이 더 무서운 법’이라는 조언을 명심하며 살아가기를 바란다.


<사냥의 시간> 메인 예고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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