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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혼자가 되는 책들>

사적인 시간들을 풍성하게 채워주는 예술서들


<혼자가 되는 책들>은, 예술서 MD 최원호가 추천하는 예술서들에 대한 '이야기'를 엮은 책이다. 간략하게 책에 대한 평을 적자면 '여느 예술서들과는 다르다'는 점이었다. 예술서 MD이기에 수많은 작품들을 읽어왔을 것이며, 시대에 따른 트렌드나 장르 일련의 특색 등을 연구해왔을 그다. 필자가 이 책을 타 예술서들과 '비교'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저자 자신만의 삶을 주체로 하지 않았음에도 책의 상당 부분에서 '저자만의 시각'이 배어있다는 점에 있다.


이 책이 기획된 궁극적인 목적은, 예술에 관심 있는 독자들에게 좋은 예술서들을 소개하고 독서를 권하는 데 있을 것이다. 보통, 이같은 기획의도를 지닌 책들에서 소개되는 예술서들은 어딘지모르게 익숙한 느낌을 받을 때가 많을 것이다. 이유는, 리스트된 책들이 비슷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점을 잘 아는 독자들은 저자들이 소개한 책 리스트(대개, 목차에 집약돼 있다)만을 훑은 후 그 책들을 바로 구매해버린곤 한다. 다른 책들을 소개하는 '친절한' 작가들은 결국 '남 좋은 일'만 시키게 되는 형편이다.


하지만 <혼자가 되는 책들>은 조금 다르다. 이 책 역시, 기획의도대로 저자가 독자들에게 권하고자 하는 책들이 리스트돼 있지만, 다른 책들에서는 소개된 바 없는 생경한 책들을 소개한다. 저자 또한 수많은 예술서들 중, 몇 권만을 뽑아내는 데에는 고충이 있었을 것이다. 그는 소개된 책들 속에서 발견한 좋았던 것들에 대해 썼다고 고백한다. 동시에, 책의 어떤 지점이 독자로 하여금 세상을 새로이 발견하도록 이끄는지에 대해서도 썼다고 말한다. 즉, 책들에 숨겨져 있는 '보물'들을 '발견'한 후, 독자들에게 그것을 직접 선보이기도 하지만 '좌표를 알려주는 데' 목적을 뒀다는 것이다. 이 과정을 통해, 독자들은 단순히 책에 대한 정보 얻기에만 그치지 않고, 저자가 발견한 좋은 점들을 개별적으로 찾아가는 '여정'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더불어, 저자가 '왜 추천했을까'에 대해 생각해보는 것도 재미있을 것이다.


책 제목에 의도하는 바는, 자신만의 세계, 자신의 참 모습을 찾기 위해서는 혼자되기를 두려워하지 말라는 데 있다. 같은 상황에 처하더라도 받아들이는 이에 따라 해석과 감상, 이후의 행동이 다르듯 같은 좌표를 쥐고 있다고 해서 많은 동일한 효과가 발새하지 않는다. 그래서 저자는, 다중적 해석이 가능한 제목을 정했다. 독서를 통해 온전한 혼자만의 시간을 가져보라는 것과, 책을 읽으며 자기만의 세계를 만들어나가라는 것. 결국, 이 책은 자신을 알아가는 여정의 좌표인 셈이다.


앞서, 이 책에서 소개된 책들이 다소 생경하다고 말했었다. 대중들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작품들, 혹은 세상(현실)이야기를 할 수 있는 작품들이 주로 선택돼 있다. 가장 좋은 예가 <마이너리티 클래식>이다. 많은 사람들이 클래식음악을 어렵게 여긴다. 하지만, 이는 경험하지 않음에서 오는 낯섦에서 기인된 감정일 뿐이다. 무엇이든 '모르는 것'을 접하기 전에는 막연함 때문에 두렵게 마련이다. 그래서 저자는, 어떠한 것이라도 '경험해보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그는, 음악감상도 다르지 않다고 말한다. '나는 앞서 음악 감상의 여정이 자신의 내면이 찾으려는 풍경을 향해 가는 것이라고 말했다. 자신이 실제로 찾으려는 풍경을 향해 가는 것이라고 말했다. 자신이 실제로 어떤 음악 또는 음악가를 좋아하게 될지는 겪어보기 전에는 알 수 없다. 알 수 없어서 더 좋다. 예기치 못한 감동일수록 우리를 더 먼 곳으로 데려다줄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선은 어느 해변에라도 당도해 여정을 시작하는 게 중요하다. (22쪽에서)' 예술을 어렵게만 '여기던' 독자들에게 두려움을 거두고 '경험'을 고무시키는 글이다.


대학에서 사진을 전공한 저자의 이력 때문인지, 이 책에는 사진을 다룬 책들도 많이 소개돼 있다. 이 또한 다른 예술서들과 조금 다른 느낌이다. 대부분의 예술서들이 미술과 음악 위주로 소재를 택하는 경우가 많은데다, 사진을 다룬 책들은 반 이상이 '사진을 보여주는' 것에 급급해있다. 하지만 이 책은 사진서들을 저자 자신만의 관점으로 해석하고 '서술'해낸다. 더불어, 기존 사진서들이 지닌 한계점을 지적하고, 그것들과 다른 방향을 선택한 용감한 작가들의 책을 소개한다. 소개된 책<내 사진을 찍고 싶어요>는 '사진을 찍을 때 무엇이 가장 중요한가'를 쉽고 정확하게 지시한다고 서술한다. 또한, <천재 아라키의 애정 사진>은 사진에 관심 있는 모든 이에게 '아무 고민 없이 권할 수 있다'고 써낸다. '이 책을 추천하는 이유는 대부분의 '아마추어를 위한 사진 책'들이 하나같이 놓쳐버린 사진 작업의 핵심적인 한 축을 아무렇지 않게 드러내 보여주기 때문이다. (…) 그 축이란 바로 단 한 장의 멋진 장면에 목매달지 않는 튼튼한 사진 데이터베이스의 축성 작업, 즉 아카이브 제작을 뜻한다. (135쪽)' 사진서로 또 달리 추천되는 책은 <윤미네 집>이다. 이 책은, 기존 사진서들이 내세우는 소위 '잘 찍은 한 컷의 작품'들과는 전혀 다른 느낌의 '아카이브'다. '반면에 <윤미네 집>에서는빗나간 구도와 실패한 노출, 때로 피로가 엿보이는 가족들, 딱히 눈을 잡아끄는 주요 피사체가 보이지 않는 조용한 장면들이 손쉬운 해석을 거부한 채 멀뚱히 감상자를 바라본다. 이때 감상자는 "그런데 이건 무슨 장면이지? 이런 특별할 것 없어 보이는 사진이 왜 사진집에 수록됐지?"라고 묻게 된다. 난해한 현대미술처럼 아예 파악 불가능한 비주얼이어서가 아니다. 그 사진들은 분명히 감상자들이 다 아는 사물들로 구성된 이미지임에도 '이건 이런 사진이야'라고 말할 수 없는 생경함, 익숙한 사물들이 풍기는 모호함을 품고 있다. (137쪽)'


필자도 이 책을 접한 바 있는데, 이 '추억이 담긴' 사진집은 윤미네 가정의 기록서다. 필자는 이 책에 대해 이렇게 설명하고 싶다. '그 어떤 다큐멘터리보다 감동적이며 접하는 이의 상황과 호흡에 따라 다른 감흥을 전해받을 수 있을 만한 사진집'이라고.


저자의 주된 관심사로 보이는 사진에 그만의 철학과 추천하는 책들이 많아, 필자 또한 사진에 대한 글을 조금 길게 적어봤다. 어쨌든, 이 책은 이제껏 봐왔던 예술서들과는 다른 정보와 사색거리를 제공한다. 크게 보면, 예술에 대한 철학에세이로 볼 수도 있겠다. 이 책이 지닌 또 하나의 장점을 꼽으라면, 저자의 문체다. 사용되는 단어나 비유가 아름답다. 주관이 뚜렷한 데 반해, 문체는 유려해서 금세 빠져들 수 있었다. 감동의 연신 이어질 때도 있어서 더이상 진도를 나갈 수 없었던 때도 있었다. 유려한 문체로 예술을 다루니… 이 얼마나 치명적인 책인가.


지난 2월 말에 출간됐는데, 필자 생각만큼 많은 사랑을 받지는 못한 것으로 보여진다. 아쉽다. 뭐, 그래도 괜찮다.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았다고 해서 모든 이들에게 좋은 책으로 인식되지 않듯, 많이 팔리지 않은 책일지라도 누군가에겐 최고의 책이 될 수 있는 법이니까. 기존 예술서들에 대한 비판, 경험하기 전에 섣불리 판단해버리는 예술에 대한 대중들의 편견 등 책에서는 저자의 예술비평들도 만나볼 수 있다(사실, 이 부분들을 만날 때 개인적으로 가장 기뻤다!). 그래서 필자에겐 <혼자가 되는 책들>은 좋은 작품으로 기억될 듯 하다.



[본문에서]


그러나 비평은 신뢰가 아니라 의심과 걱정에서부터 출발해야 하며, 비평 언어는 질문에 접근하기 위한 도구로 조심스럽게 다루어져야 한다. 나는 책을 추천하기에 앞서 말하곤 한다. "먼저 인생을 돌아보세요. 내가 뭘 해왔고 뭘 하고 싶고 뭘 두려워하는지를 아는 게 먼저입니다. 열쇠는 내가 그걸 손에 쥐고 문을 열라고 주는 거지, 그걸 모셔다 놓고 백날 치성을 드려도 문은 알아서 열리지 않습니다." - 46, 47쪽


<혼자 가는 미술관>은 감상자와 미술 작품이 사적으로 소통하는 순간들로 이루어져 있다. 특정 작품이 어떤 체험을 부르거나, 반대로 어떤 체험이 특정 작품을 호출해 자기의 내면 안에서 즉각적인 교감을 이룬다.

- 48쪽


좋은 게 좋은 거라는 말은 쓸쓸한 말이다. 왜 쓸쓸하냐면 질문을 던지(고 싶)지 않(아지)기 때문이다. 상대에게 더 해주고 싶은 말도 더 알고 싶은 점도 없다. 오직 아름다운 모습을 바라보는 걸로 만족할 뿐이다.

물론 사랑에는 여러 방식이 있다. 개중에는 직관적이고 즉각적인 호감을 사랑의 원동력으로 삼고 그에 대해 질문을 던지지 않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역마살과 손재주를 타고난 이들처럼 말이다. 그러나 대개는 뭔가를 좋아하게 되면 그 대상을 더 알고 싶어지고 이해하고 싶어진다. 사랑은 자신의 세계 바깥에 존재하던 객체를 자신의 세계 속으로 포섭하려는 욕망과 그에 따른 노력의 과정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사랑의 대상을 향해 던져지는 질문은 자신이 질문을 던지는 대상에 대한 깊은 애정 표현(나는 그를 내 안으로 초대하고 있다)이며, 그 결과로 떠오르는 감상이란 자신이 앞서 던졌던 질문에 대해 성의껏 구한 답으로서 도출되는 것이다. - 57쪽


'원형 신화' 자체는 클리셰가 아니다. 클리셰는 특정한 장치나 설정이 아니라 무비판적으로 답습하는 '태도'에 달린 문제다. - 75쪽


<우연한 걸작>은 결국 삶을 찬양하는 책이라고도 볼 수 있다. 각각의 예술 작품은 예술 행위의 종착지가 아니라 창작자와 감상자 사이에 놓인 촉매이며, 그 촉매에 의해 빛과 열을 뿜는 것은 작품을 만들고 감상하는 인간들 자신이다. - 85쪽


언제나 열려 있는 문은 밀고 닫는 행위를 불필요하게 만듦으로써 문의 의미를 잃고 만다. 그것은 문과 닮은 무엇이지만 문은 아니다. 문을 문답게 만드는 것은 그럴듯한 생김새나 재질이 아니라 열고 닫고 두드리는 행위들이다. 묻지 않고서 얻은 지식은 언제나 열려 있는 문과 같다.

그 지식은 답과 비슷한 모양이지만 답이 아니다. 아는 만큼 보인다는 문구는 아는 것에 따라 보이게 된다는 뜻이기도 해서, 구하고 묻는 과정을 생략한 채 쌓은 지식들은 어떤 신비나 놀라움도 불러일으키지 못한다.

- 93, 9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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