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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해피엔드> 리뷰

10대 소녀에게 발각된 부르주아 가정의 비밀

미카엘 하네케 감독의 영화는 늘 서늘한 긴장감을 선사한다. <해피엔드>도 마찬가지다. 자극적인 장면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영화는 겉보기에 별 탈 없어 보이는 '로랑 가'의 실체를 들춰낸다. 이를 들추는 인물은 소녀 '에브 로랑(팡틴 아흐뒤엥)'이다. 약을 먹고 자살 시도를 한 엄마가 병원에 입원한 동안 재혼한 아빠 '토마스(마티유 카소비츠)'의 집에서 지내게 된 에브의 시선으로 발각된 부르주아 가정의 비밀은 무엇일까.



<해피엔드>의 에브가 엄마의 뒷모습을 촬영하는 장면으로부터 시작된다. 화장실에서 씻고 양치질하는 엄마의 뒷모습을 담은 뒤 '지긋지긋하다'는 메시지와 함께 누군가에게 전송하는 에브. 썩 정상적인 모습은 아니다.


로랑 가에 들어선 에브는 이방인과 다름없다. 때문에 낯선 가족을 지켜보는 시선이 객관적일 수밖에 없다. 관객은 에브의 시선을 따라 로랑 가를 관조하게 된다.



외과 의사인 토마스, 건설회사 CEO '앤(이자벨 위페르)', 앤의 아들이자 후계자 '피에르(프란츠 로고스키)' 등 로랑 가의 스펙은 화려하다. 그러나 실체는 문제투성이다. 집안의 가장인 할아버지 '조르주(장-루이 트린티냥)'는 제손으로 아내를 죽였고 자살할 방법을 찾고 있다. 토마스는 다른 여성과 채팅으로 음담패설을 즐기며 바람을 핀다. 앤은 집에서 키우는 대형견이 가사도우미의 딸을 물었음에도 '가벼운 상처'라며 초콜릿으로 상황을 모면하려 하고 피에르는 폭력을 일삼는 등 방탕한 생활을 한다. 이들뿐 아니라 에브에게도 충격적인 비밀이 있다.


우아해 보이는 로랑 가의 실체는 자살 시도, 살인, 폭력, 불륜 등으로 얼룩져 있다. 더 문제인 것은 각자의 비밀을 가족이 전혀 모르고 있다는 점이다. 물론 몰랐기에 문제없는 가정을 유지할 수 있었지만 세상에 완벽한 비밀은 없다. 제목인 <해피엔드>는 반어법이다. 가느다란 행복의 끈을 간신히 쥐고 온 로랑 가의 행복은 완전히 끝났다.


<해피엔드>는 2012년 칸영화제 황금종려상을 수상한 <아무르> 속 일부 이야기를 담았다. <아무르>에서 아내를 죽인 조르주가 <해피엔드>에서 에브에게 자백한다.


미카엘 하네케의 작품 답게 감각적인 연출이 돋보인다. 마지막까지 구성원들의 비밀을 감춰 관객의 상상력을 자극한 점이 인상적이다. 스마트폰과 SNS을 활용해 자기고백을 터놓고 일탈을 하는 현대인의 모습을 반영한 것도 의미 있다. 제작 노트를 통해 감독은 "잘못된 일을 하고 교회에 가서 고해성사한 것처럼, 요즘은 소셜 미디어로 고백하기 시작했다. 마치 다른 형태의 종교 같다"라는 생각을 밝혔다.


인간의 이중성과 위선을 담담하게 보여주는 <해피엔드>는 관람객의 심장을 콕콕 찌르는 영화다. 어느 누가 로랑 가를 떳떳하게 손가락질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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