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영화 <드라이브 마이 카> 리뷰

그럼에도 살아가야지(※스포일러 포함)

연극배우이자 연출가 '가후쿠'와 각본가 '오토'는 부부이다. 가후쿠가 체호프의 [바냐 아저씨] 연극을 무대에 올린 날 아내가 쓴 드라마에 출연한 젊은 배우 '다카츠키'가 찾아와 "오토의 글과 가후쿠의 연출을 좋아한다"며 인사를 한다. 며칠 뒤 가후쿠가 해외출장을 가던 날, 일정이 밀려 집에 돌아왔을 때 아내와 다카츠키가 정사를 벌이는 장면을 목격한다. 가후쿠는 조용히 문을 닫고 나와 다시 공항으로 향한다. 그런 후 마음을 추스를 틈도 없이 아내는 병으로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난다.



2년 후 가후쿠는 히로시마국제연극제에 초빙된다. 연극 <바냐 아저씨>의 연출 의뢰를 받은 것. 가후쿠는 도쿄를 떠나 한 달 반 동안 히로시마에 머물며 배우 캐스팅과 연습을 한 뒤 보름 간 공연을 진행할 예정이다. 그 동안 연극제 방침에 따라 스물 세 살의 '와타리 미사키'가 그의 차를 운전하게 된다. 캐스팅된 배우에는 다카츠키가 포함돼 있고, 그는 가후쿠가 과거에 연기했었던 '바냐' 역을 맡는다.



<드라이브 마이 카>는 94회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 '국제장편영화상'과 75회 영국 아카데미 시상식 '외국인영화상', 74회 칸 국제영화제 '각본상' 등을 수상해 전 세계를 떠들썩하게 만든 작품이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단편소설집 [여자 없는 남자들]에 수록된 동명의 원작을 기반으로 만들어졌다. 그리고 소설집의 다른 수록작 [셰에라자드] 이야기도 '칠성장어의 빈집털이 여학생' 스토리로 녹아있다.


세계적인 거장이 된 하마구치 류스케 감독은 원작소설에 미스터리와 힐링을 더했다. 먼저 상처받은 가후쿠의 상처 극복기다. 슬픔을 극복하기 위해 매일을 열심히 살아가던 그에게 다카츠키의 등장은 여러모로 혼란을 가중시킨다. 이때 힐링을 선사하는 인물이 드라이버 미사키이다. 원작에 비해 역할이 커진 그녀는 가후쿠와는 다르지만 가족에 대한 정서적 아픔이 있었다. 이 둘은 장거리 운전을 하는 과정에서 서로의 내밀한 사연을 알게 되고, 정서적 교감을 통해 상처를 치유해나간다. 그리고 스스로를 성찰하고 살아갈 날에 대한 다짐을 한다.



<드라이브 마이 카>의 전반에는 기묘한 긴장감이 깔려있다. 시작부터 끝에 이르기까지 무슨 일이 벌어질 것만 같은 기대를 주지만 끝내 이렇다할 사건이 발생하지는 않는다. 170분에 달하는 러닝타임에 극적인 사건이 없어 자칫 지루할 것으로 예상하겠지만, 인물의 내면을 파고드는 집요함으로 보는 이들을 끌어당긴다. 인상적인 대사들도 흡인력의 주요 요인이다. 영화의 재미를 높이기 위해서는 원작과 희곡 [바냐 아저씨]를 읽으면 좋다. 영화 속 무수한 메타포와 연관돼 있기 때문이다.


주제를 함축한 마지막 연극 씬은 깊은 여운을 남긴다. '바냐 아저씨, 우리 살아가도록 해요. 길고 긴 낮과 긴긴밤의 연속을 살아가는 거예요. 운명이 가져다주는 시련을 참고 견디며. 마음의 평화가 없더라도 지금 이 순간에도 나이 든 후에도 다른 사람을 위해서 일하도록 해요. 그리고 언젠가 마지막이 오면 얌전히 죽는 거예요. 그리고 저 세상에 가서 얘기해요. 우린 고통 받았다고, 울었다고, 괴로웠다고. 그러면 하나님께서도 우리를 어여삐 여기시겠지요. 그리고 아저씨와 나는 밝고 훌륭하고 꿈과 같은 삶을 보게 되겠지요'라는 (수어)대사는 가후쿠를 비롯해 살아남은, 살아가야만 하는 모든 이들에게 전하는 메시지다.



삶은 고통의 연속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어떻게든 살아가야 한다. 때로는 받아들이기 힘든 진실을 마주할 때도, 고통 받을 때도 있다. 그러나 있는 그대로를 인정하고 감내하며 나가야가만 한다. 인생은 장거리 여행 혹은 기나긴 연극이기 때문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영화 <누구의 딸도 아닌 해원> 리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