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영화 '헌트' 리뷰, 여름 사냥 나서나

감독 이정재의 성공적인 데뷔작

※스포일러가 포함돼 있습니다.



'헌트'의 개봉 소식을 접했을 때 단순한 첩보 액션물일 줄로만 알았다. 예상은 틀렸다. 압도적인 스케일의 액션과 심장 쫄깃하게 만드는 서스펜스로 한 순간도 긴장을 놓을 수 없었다.


영화 '헌트'는 1980년대 민주주의를 향한 열망과 이를 짓누르려던 독재 정권 시대를 배경으로 한다. 안기부 해외팀 차장 '박평호'(이정재)와 국내팀 '김정도'(정우성) 차장은 미주 한인들의 시위와 대학생들의 시위로 신경이 날카롭다. 망명을 신청한 북한 고위 관리로부터 안기부 내에 숨어있는 스파이 '동림'의 존재를 알게 된 두 팀은 서로를 용의선상에 놓고 감시한다. 사냥이 시작된 것이다. 서로의 비밀을 파헤칠수록 예상치 못한 실체에 다가가는 둘. 이 가운데 대통령의 해외 순방 일정이 다가오고 '대한민국 1호 암살 작전'과 직면하게 된다.



'헌트'는 제75회 칸영화제 미드나잇 스크리닝에 공식 초청작이자, 월드스타 이정재의 감독 데뷔작으로 일찍이 화제를 모았다. '태양은 없다' 이후 23년 만에 이정재와 정우성이 스크린에서 호흡을 맞춘 것도 기대 포인트였다.


영화는 흥행 요소가 다분하다. 5·18 광주민주화운동, 장교 이웅평 월남 사건, 아웅산 테러 사건, 친인척 비리 장영자 사건 등 근현대사의 주요 사건들을 다룬데다 인물들의 목적의식이 뚜렷해 몰입도를 높인다. 액션과 미장센도 좋다. 도심에서 펼쳐지는 카체이싱, 228곳에 달하는 장소, 10,000발에 이르는 총탄까지 거대한 스케일을 자랑하며 한 여름 무더위를 날릴 만한 시원한 액션을 선보인다. 이야기가 느슨해질 때쯤 액션을 넣어 활력을 불어넣는다. 1980년대 시대상 구현은 물론, 해외 촬영이 어려운 상황에서 미국과 일본, 태국에서 그려지는 장면들을 어색함 없이 그린 점도 훌륭하다.



스토리는 두 말 할 것도 없다. 사냥의 대상이 달라지는 점이 흥미롭다. 덫을 놓고 비밀을 파헤치며 서로를 사냥하던 박평호와 김정도는, 사냥감이 같다는 것을 알고 의기투합한다. 이 과정에서 펼쳐지는 고도의 심리전은 긴장을 놓을 수 없는 몰입 포인트로 작용한다.


이정재는 '헌트'를 통해 성공적인 감독 데뷔식을 치렀다. 짜임새가 돋보이는 스토리와 액션의 완급을 조절하는 연출력은 놀라운 정도다. 실화를 모티브로 영화적 상상력을 가미해 흥행을 노렸다.


1980년대는 폭력과 혼돈으로 가득한 암흑기이자, 새로운 시대로 나아가려는 열망과 권력을 유지하려는 구시대적 욕망이 치열하게 대립하던 과도기적 시기다. 서로를 의심하고 파헤치려는 박평호와 김정도는 불안한 시기를 대표하는 상징적인 존재다. 특히 의도적으로 누군가를 간첩으로 내모는 상황은 독재 유지를 위한 방법과 흡사해 의미심장하다.



이정재, 정우성의 활약 뿐만 아니라 두 사람과 함께한 안기부 요원 전혜진, 허성태의 연기도 훌륭하다. 황정민, 주지훈, 김남길, 이성민, 박성웅, 조우진, 유재명 등 내로라하는 충무로 스타들의 특별출연도 보는 재미를 더한다.


이정재의 차기 연출작이 기다려진다. 박스오피스 1위를 기록하며 많은 관객들의 관심을 모으고 있는 '헌트'. 흥행이 기대된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