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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포 영화 <큐어> 리뷰

묘하게 빠져드는 연쇄살인 이야기

세 건의 엽기적인 연쇄살인사건의 발생으로 '타카베'(야쿠쇼 고지) 형사는 골머리를 앓고 있다. 사건들의 공통점은 피해자의 목에서 가슴에 이르는 부위에 X자 모양의 자상이 남아 있는 것이다. 찾아낸 피의자들은 평범하기 이를 데 없다. 그들은 살인은 인정하지만 당시 상황을 뚜렷하게 기억하지 못한다. 무언가에 홀린 것처럼. 수사가 진행되는 동안에도 사건은 계속 발생한다.



타카베는 정신질환을 앓고 있는 아내 때문에 인간심리에 대해 꽤 잘 알고 있다. 동료 '사쿠마'에게 다양한 가능성을 던지던 중 '최면 암시 수법'도 나온다. 이 수법을 중점에 두고 수사하던 타카베는 '마미야'(하기와라 마사토)라는 청년이 피의자임을 확신하고 긴급 체포한다. 피의자들 모두는 마미야를 만난 후 살인을 저질렀던 것이다.



심문 과정은 녹록지 않다. 마미야 역시 다른 피의자들처럼 자기 자신을 비롯한 모든 것을 기억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여느 피의자들에게 그랬듯 마미야는 라이터를 찾아 불을 켠 후 타카베에게 "당신은 누구인가?"라고 질문한다. 마미야의 수법에 걸려든 타카베는 수사를 이어가던 중 정신이 혼란스러워지는 것을 느낀다. 다카베는 무사할 수 있을까.



<큐어>는 제작된 지 25년 만에 국내에서 처음으로 정식 개봉됐다. 범죄 스릴러 장르에 구로사와 기요시 감독만의 문법이 더해진 독보적인 걸작이다. 감독은 영화 자체의 재미에, 당대 일본의 공포스러운 사회적 함의가 담겨 범죄 스릴러의 장점을 최대치로 끌어 올릴 수 있었다고 밝힌 바 있다.


영화가 그린 1990년대 중반은 1980년대의 거품경제 시기 이후의 '버블 붕괴' 시기로, 세계 1위를 위협하던 경제대국이 한순간에 나락으로 떨어진 때다. 패닉에 빠진 일본 사회의 병폐는 개인의 무의식 속에 잠재되어 있었다. 마미야의 질문에 '진짜' 자신이 아닌, 직업으로 스스로를 설명할 수밖에 없는 사람들은 최면에 이끌려 아픈 구석을 자각하고 홀린 듯 살인을 저지른다. 무의식에 잠재된 결핍이 끔찍한 사건을 저지르는 원인으로 작용한 것이다.


질문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병든 사회 속 개인은 누구나 살인(감염)자가 될 수 있다고 말한다. 평범한 이들의 저지른 살인이 이를 설명한다. 최면 암시가 아니더라도 집단주의의 병폐에 의한 사건은 발생할 수 있다. 아내를 정신병원에 입원시키려는 타카베에게 의사가 던진 말이 인상적이었다. "당신이 더 환자 같습니다."


<큐어>는 논리가 아닌 정신을 다루는 영화다. 이를 위해 의도적인 음악 사용을 절제하고 현장음을 적극 활용했다. 물방울이 떨어지는 소리, 바람 소리 등에 이따금씩 더해지는 일상 소음들이 묘한 공포감을 선사한다. 사건과 인물에 집중할 수 있도록 롱테이크 촬영을 선택한 것도 인상적이다. 실제로 영화에 몰입하다 보면 정신이 혼미해지고 시야가 몽롱해지는 기분을 느낄 수 있다.


하마구치 류스케의 스승으로도 유명한 구로사와 기요시 감독의 <큐어>는 국내 감독들에게도 많은 영향을 미쳤다. 봉준호 감독은 '영화에 대한 개인적 생각에 가장 많은 영향을 끼친 작품 가운데 하나', 연상호 감독은 '넷플릭스 '지옥'을 촬영할 때 촬영 감독과 함께 가장 많이 봤던 영화'라고 밝힌 바 있다.


불빛에 홀린 듯 마미야의 질문에 대한 답을 떠올려보게 된다. '나는 누구인가'. 그리고 선뜻 답할 수 없는 질문을 읊조려 본다. '나는 저 살인 바이러스에서 자유로울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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