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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더 메뉴' 리뷰

고급 레스토랑의 소름 끼치는 비밀

인당 170만원을 호가하는 코스요리에는 어떤 비밀이 숨겨져 있을까.


영화 '더 메뉴'는 외딴 섬에 위치한 호손 레스토랑에 초대된 12명의 손님들이 최후의 만찬을 즐기는 과정을 보여준다. 식사 전 제공되는 한입거리 음식인 '아뮤즈 부슈(amuse bouche)'부터 디저트까지 각 요리에는 스토리가 담겨 있다. 스토리는 손님들과 연관돼 있다. 덕분에 레스토랑 안의 사람들은 황홀한 요리와 더불어 사연 속 인물의 인생까지 맛보게 된다. 요리의 퀄리티는 형언할 수 없을 만큼 끝내줄 것이다. 그러나 편한 마음으로 충분히 음미하기는 쉽지 않을 듯하다. 불편한 이야기와 긴장 가득한 분위기가 감돌기 때문이다.



셰프 '슬로윅'(랄프 파인즈)은 이 불편한 공간을 연출한 감독이다. 그가 이끄는 요리사들은 스태프이고, 메뉴는 각본이다. 배우 혹은 관객과도 같은 손님들은 감독의 연출을 받아들이고 지시대로 응한다. 이해 못할 상황일지라도 감독의 의도를 입으로 흡수한다. 


그러나 초대받지 않은 '마고'(안야 테일러 조이)가 슬로윅의 계획을 흐트러놓는다. 겪고 싶지 않은 상황에 초대된 마고는 미각 세포가 죽는다며 담배를 피우지 말라는 '타일러'(니콜라스 홀트)와의 다툼이 불편함의 시작이었다. 요리가 "심연의 경계에 있는 예술"이라고 말하는 타일러, 음식에 일가견이 있는 요리 비평가 '릴리언'(자넷 맥티어), 명성이 있는 영화배우(존 레귀자모) 모두 마고와는 다른 사람들이다.



마고는 불만을 표출하는 인물이다. 원치 않거나 이해되지 않는 상황이나 작품을 접했을 때의 불편함을 솔직하게 표현하는 캐릭터인 것이다. 그녀는 타일러처럼 슬로윅에게 잘 보일 이유도, 다른 손님들처럼 자유의지로 레스토랑에 온 것도 아니므로 자신의 목소리를 마음껏 낸다. 때문에 슬로윅과 대립한다. 마고의 태도는 작품에 실질적인 입김을 불어넣는 투자자나 제작자와 같다.


'더 메뉴'는 더 좋고 특별한 것을 맹목적으로 좇는 현대인들의 집착과 문화를 풍자하는 영화이기도 하다. 눈을 사로잡는 파인 다이닝의 예술성에 매료된 관객은 호손 레스토랑을 경험해보고 싶다는 욕망에 사로잡힐 것이다. 영화는 이 욕망의 포인트를 포착해 계급 사회를 풍자한다. 각 테이블에 착석한 각기 다른 개성과 사연을 지닌 캐릭터들을 통해 다양한 인간 군상을 확인하는 재미가 있다.


미장센도 훌륭하다. 특히 샌프란시스코에서 미쉐린 3스타를 받은 레스토랑을 운영하는 셰프 도미니크 크렌의 도움을 받아 완성된 메뉴들이 몰입도를 높였다.



'더 메뉴'는 음식 영화를 표방하지만 은유와 상징으로 가득한 블랙 코미디물이다. 신랄한 계급 풍자와 킬킬대게 만드는 유머가 적절히 어우러진 메뉴처럼 영화 역시 완벽한 합을 자랑한다. 오랜만에 접한 우아하고 품격 있는 서스펜스 스릴러물의 탄생이 반갑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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