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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스즈메의 문단속' 리뷰

만약 당신에게 재난을 막을 능력이 있다면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기꺼이 몸을 던져 세계를 구하지 않을까.


영화 '스즈메의 문단속'은 이 가정에서 출발한 신카이 마코토 감독의 작품이다. 우연히 재난을 부르는 문을 열게 된 소녀 '스즈메'가 일본 각지에서 발생하는 재난을 막기 위해 필사적으로 문을 닫아가는 이야기를 그린다. '너의 이름은', '날씨의 아이'에 이은 신카이 마코토 감독의 '재난 3부작'의 마지막 작품이다.


'스즈메의 문단속'에는 강렬한 열망이 담겨있다. 특별한 힘을 가진 소녀와 소년이 일상을 위협하는 비극적인 재난을 막아 인류의 평온을 유지하기를 바라는 강렬한 염원 말이다. 신비한 힘을 사용하고 희생하여 위기를 극복하고 일본 사회(나아가 세계)를 구원하는 영웅 서사가 벅찬 감동을 전한다.



영화가 다룬 재난은 3·11 동일본대지진이다. 일본 본토 사람들이라면 피부에 와닿을 만큼 현실적인 장면들이 이어진다. 잦은 지진 경보가 익숙한 이들, 언제 발생할지 모르는 재난 상황에 대한 트라우마, 재난 이후의 폐허가 된 공간들이 직접적으로 묘사돼 있다.


시작은 등교길에 잘생긴 대학생 '소타'에게 첫 눈에 반한 스즈메의 평범한 하루가 비춰진다. 홀린듯 소타를 따라가다 한 폐허에 다다른다. 기묘한 위치에 세워진 문을 열자 그 안에서 기시감이 느껴지는 광경을 보게 되고, 아무리 문 앞뒤로 뛰어들어도 그 세계로 나아갈 수 없는 무서운 상황에 직면한다. 스즈메는 주위를 둘러보다 문 앞에 박힌 독특하게 생긴 고양이 형태의 돌을 뽑게 된다. 돌의 정체는 문의 기운을 단속 중이던 요석으로, 스즈메에게 뽑히자마자 고양이 '다이진'으로 변해 도망친다.


요석의 힘이 사라지자 스즈메가 열어둔 문을 통해 지진이 일어난다. 남들에게는 보이지 않는 지진의 기운을 느낀 스즈메는 문을 닫기 위해 나타난 소타를 돕는다. 가까스로 지진을 막아낸 두 사람 앞에 나타난 다이진은 "너는 방해된다"며 소타를 스즈메 엄마의 유품인 유아용 의자로 바꿔버린다. 소타는 다리가 세 개인 의자가 된 채 다이진을 쫓으며 다음 지진을 막으러 나서지만 역부족이다. 결국 스즈메가 의자로 변한 소타와 함께 다이진을 쫓기 시작한다.



재난을 몰고 다니는 다이진을 따라 배를 타게 된 스즈메와 소타는 규슈 지방을 떠나 에히메, 고베, 도쿄, 후쿠시마, 이와테 등을 잇는 여정을 한다. 다이진이 목격된 경로를 따라가다가 열린 문을 닫고, 또 다이진을 따라 도시를 이동해 열린 문을 닫는 이야기가 반복된다. 스즈메의 '재난 막기 프로젝트'는 꽤나 성실하게 진행된다. 스즈메가 여정에서 만나 인연을 맺는 인물들과 특별하고 따뜻한 에피소드를 만들어가는 서사가 인상적이다.


아름다운 미장센으로 매 쇼트를 예술 작품으로 승화시키는 신카이 마코토의 작품 답게 '스즈메의 문단속' 역시 다채로운 경관을 감동적으로 보여준다. 자연 경관과 빛의 질감을 살려 각 도시의 특색을 보여주는 장면들이 일본 여행 욕구를 자극한다. 특히 드라마틱한 색채는 절로 감탄사를 쏟게 만드는 포인트.


'스즈메의 문단속'에는 인류의 평화를 향한 염원과 상실에 대한 깊은 애도가 담겨있다. 폐허가 된 자리에서 살고 있던 사람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열쇠 구멍이 생겨나고 기도와 함께 문을 잠그는 모습에서 떠난 이들을 향한 추모와 다음 재난은 없기를 바라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재난을 막겠다는 일념 하나로 용기와 노력, 희생을 발휘한 스즈메는 어떠한 재앙도 인간 내면의 힘으로 극복 가능하다는 희망의 전령사다. 최근 전 세계가 '코로나19'라는 공통의 고통과 상실을 경험했다. 어쩌면 감독은 '스즈메의 문단속'을 통해 코로나19 종식의 염원도 담은 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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