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영화 '더 웨일' 리뷰

구원이 필요한 당신에게 권함

‘더 웨일’은 제목처럼 고래만큼 거대한 남성 찰리(브렌든 프레이저)에 대한 영화다. 600파운드, 즉 272kg에 육박하는 초고도 비만인 찰리는 보행보조기 없이는 혼자 몸을 일으킬 수도 없는 처지다. 거동 문제 뿐만 아니라 급격한 심기능 저하 증상을 유발하는 울혈성 심부전으로 질식당하고 있다. 삶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직감한 그는 9년 간 한 번도 보지 못한 17세 딸 엘리(세이디 싱크)를 집으로 초대한다.


유일하게 찰리를 돌봐주는 간호사 리즈(홍 차우)는 "제발 병원으로 가라"고 애원하지만 도통 말을 듣지 않는다. 돈낭비라는 생각도 있지만, 엘리에게 모아둔 돈을 물려줄 결심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찰리는 엘리에게 매일 자신을 찾아와 에세이 한 편을 완성하면 전 재산을 주겠다고 말한다. 말썽쟁이로 자란 엘리는 찰리의 과제 대필로 정학을 면하고 돈도 받기 위해 제안에 응한다. 이 과정에서 종말론을 믿는 '새 생명선'교를 전도하는 선교사 토마스(타이 심킨스)가 찰리 앞에 나타난다.


찰리는 결혼생활 중 뒤늦게 자신의 정체성을 알게 됐다. '쓰레기'라는 힐난을 받으며 가족을 등지고 남자친구를 택했지만, 그는 얼마 안 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이후 찰리는 감당할 수 없을 정도의 음식을 입 안으로 밀어넣는 섭식장애를 겪으며 지방덩어리가 된다.


선교를 거듭하는 토마스에게 찰리는 "저는 구원 따위에 관심 없어요"라고 말한다. 누구보다 구원의 손길이 절박해보이는 찰리이지만, 오히려 자신 때문에 망가져가는 엘리를 구하고 싶어한다. 찰리가 딸을 구원하고자 하는 것처럼 영화 속 인물들은 타인의 구멍을 메워주는 것이 자신을 구원하는 길이라 믿으며 살아간다. 친오빠의 애인이었던 찰리를 돌보는 리즈는 찰리의 죽음을 막는 것이 오빠를 위하는 방법이라 생각하며 헌신한다. 토마스는 찰리가 신의 존재를 받아들이게 만드는 것이 자신의 쓸모를 입증하는 유일한 길이라 여기는 듯하다.


이처럼 ‘더 웨일’은 타인을 구원하는 것만이 유일한 삶의 목적인 이들의 모습을 보여준다. 흥미로운 점은 구원의 궁극적인 목적이 스스로를 구원하는 데 있다는 것이다. 전 아내 메리(사만다 모튼)를 향해 "알아야겠어! 내 인생에서 잘한 일이 하나라도 있다는 걸!"이라며 토해내듯 외치는 찰리의 모습을 통해 엘리를 구원하는 것이 스스로를 용서하는 방법이기도 하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다. 찰리는 죽음이 두렵지 않다. 죽음 그 자체보다 후회를 남긴 채 죽는 것이 두려울 뿐이다.



‘더 웨일’이 보여주는 죽음은 비극이 아니다. 찰리에게 죽음은 구원의 시작점이자 희망의 빛을 발견하는 여정이다. 흔히 구원은 신의 영역으로 여기곤 하지만, 영화는 사람이 사람을 구원할 수 있다고 말한다. 리즈가 "누가 누굴 구한다는 건 불가능한 일"이라고 말할 때, 찰리는 "사람은 타인에게 무관심할 수가 없다고, 사람은 놀라운 존재"라고 답한다. 찰리는 인간이 일으킬 수 있는 기적을 발견한 셈이다.


영화는 찰리의 집 안에서만 전개된다. 다분히 연극적이다. 때문에 배우들의 연기가 무엇보다 중요한데, 브렌든 프레이저는 완벽한 찰리가 되었다. 러닝타임 내내 섬세한 눈빛과 표정 변화로 경이로운 연기를 보여준다. 특히 엘리를 향한 미안함과 애정이 깃든 눈빛은 그 어떤 값비싼 보석보다 아름다웠다. 40일의 촬영기간 동안 매일 130kg에 달하는 보철 분장을 몸에 뒤집어쓰고 무게와 더위를 견뎌냈다. 이에 대한 결과로 95회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 남우주연상 수상의 영예를 얻었다.



‘더 웨일’은 진정한 구원, 스스로의 구원에 대해 생각하게 만든다. 사람이 사람을 구원할 수 있다는 믿음, 타인을 향한 헌신이 자구책이 될 수 있다고 말한다. 지금 당신을 구원해줄, 힘이 되어줄 대상이 누구인지 곰곰이 생각하게 만드는 영화이기도 하다.

매거진의 이전글 다큐멘터리 영화 <나의 문어 선생님> 리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