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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썸머 필름을 타고!> 리뷰

영화는 시간과 소통의 예술

<썸머 필름을 타고!>는 사무라이 시대극 마니아인 여고생 '맨발'이 절친 '킥보드', '블루 하와이', 미래에서 온 '린타로' 등의 친구들과 영화를 찍는 과정을 담은 청춘로맨스SF 영화다. 흥미로운 점은 꿈과 사랑, 우정을 담은 청춘물과 시간을 초월하는 SF 장르까지 어우러져 어디에서도 본 적 없는 자유분방한 작품이라는 것이다.



눈물을 흘릴 정도로 사무라이 영화를 애정하는 맨발, 그녀를 응원하는 킥보드, 검도를 하는 블루 하와이는 서로의 고민을 나누고 응원하는 친구들이다. 맨발은 학교축제 출품작으로 영화 <무사의 청춘(武士の靑春)>의 대본을 제출하지만 로맨스 대본을 제출한 친구 '카린'에게 밀려 제작비를 받을 기회를 놓친다. 맨발은 노골적으로 사랑을 표현하는 영화에 열광하는 영화 동아리방 친구들에게 불만이 가득하다.


의기소침해진 맨발에게 킥보드와 블루 하와이는 동아리 활동과 무관하게 <무사의 청춘>을 찍자고 제안하지만, 맨발은 적절한 배우가 없다며 거절한다. 그러던 중 옛날 영화 전용관에서 동갑내기 린타로를 보고 필(feel)을 받은 맨발은 다짜고짜 다가가 "내 영화에 출연해줘. 너 아니면 안 찍을 거야"라고 호소한다.



린타로는 무슨 이유 때문인지 거듭 출연을 거절한다. 그러나 자신이 아니라면 영화 제작을 포기하겠다는 맨발의 말에 출연을 결심한다. 주연 배우가 확정된 후 본격적으로 제작팀을 꾸린다. 오토바이처럼 자전거 조명을 화려하게 개조한 친구를 조명감독으로, 공 받을 때 나는 글러브 소리만으로 누가 공을 던졌는지 알아맞히는 야구부 친구를 음향감독으로, 노안을 어필(?)하는 친구에게 주인공 라이벌 역을 제안하며 오합지졸 드림팀을 완성한다.



<썸머 필름을 타고!>가 정의하는 영화는 시간과 소통의 예술이다. "영화는 스크린을 통해 현재와 과거를 이어준다고 생각해. 나도 내 영화를 통해 미래를 연결하고 싶어"라고 친구들에게 고백하는 맨발의 말이 이를 설명한다. 어릴 적 할머니와 사무라이 영화를 우연히 본 후 골수팬이 된 맨발은 과거의 추억과 연결되어 있고, 린타로와의 영화 작업을 통해 '미래를 연결하고 싶다'는 소망을 달성한다.


한편 린타로는 미래에 거장이 된 맨발 린타로의 흔적이 사라진 데뷔작 <무사의 청춘>을 보기 위해 지금 이 순간으로 타임머신을 타고 온 소년이다. 린타로가 살고 있는 미래에는 극장과 영화가 존재하지 않는다. 동영상은 5초를 넘기지 않고 1분이 초과되면 장편영화로 분류돼 사람들의 외면을 받는다. 미래의 사람들은 타인의 이야기를 들어줄 시간이 없을 정도로 바쁘게 살기 때문이라는 말이 왠지 모르게 씁쓸하다.


과거 인기 장르였던 사무라이물이 지금은 많은 이들에게 잊혀진 상황이다. 변두리 옛날 극장에 상영되면서 절반의 객석도 채우지 못하는 실정이지만 여전히 진심으로 사랑하는 팬들이 존재한다. 맨발은 사무라이물이 과거의 흔적이 아닌, 미래에도 아름다운 예술로 승화되길 간절히 바라고 있다. 이는 특정 장르를 사랑하는 시네필들의 공감을 사기에 충분하다. 더불어 영화는 타인과 공간과 시간을 공유하고, 타인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을 무용하게 여기는 미래(현대)인들에게 일침을 가한다.



<썸머 필름을 타고!>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는 포스터에 쓰인 '청춘 로맨스X시대극÷SF영화'라는 카피 때문이었다. 장르를 뒤섞은 영화임을 절묘하게 보여준 문구여서 흥미로웠다. 내용을 들여다보니, 단순히 장르만 섞은 게 아니라 영화가 시간과 소통의 예술이라는 철학적 사유도 반영돼 있어서 흐뭇했다.


결국 <썸머 필름을 타고!>는 인간의 삶을 축약한 영화로 정리할 수 있다. 서로의 작품 세계를 이해하지 못했던 맨발과 카린이 갈등하다 서로를 이해하면서 혼성 장르의 영화를 만드는 여정은 다양한 경험으로 이뤄낼 수 있는 인생을 반영한다. 또한 인간은 타인과 영향을 주고받을 수밖에 없으며, 이것이 삶을 풍부하게 해준다는 것을 말한다.


깊은 철학이 담겨있지만 한없이 맑고 순수한 <썸머 필름을 타고!>. 참신하고 기발한 맛은 부족하지만 개성 넘치는 소년소녀들이 꿈을 이뤄내는 아기자기한 성장기가 주는 매력은 다분하다. OTT, 숏폼의 대세로 영화의 인기가 줄어드는 상황을 안타까워했던 이들이라면 공감할 만한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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