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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 시리즈
'히야마 켄타로의 임신' 리뷰

'남성 임신'이 현실적으로 가능할까. 흔히 볼 순 없지만 생각보다 많은 사례를 찾아볼 수 있다. 대표적으로 미국의 트렌스젠더 '토마스 비타'가 세계 최초로 임신한 남성의 실례이다. 일찍이 1999년 2월 영국의 한 불임시술 전문가는 "남성도 임신이 가능하다"는 주장을 펼치기도 했다. 물론 '자궁(태반) 이식' 방법을 통해서 말이다. 아직까지 시스젠더 남성의 임신 사례는 (당연히)없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히야마 켄타로의 임신'은 시스젠더 남성도 임신이 가능하다는 가상의 설정을 통해 상식과 통념을 완전히 깨뜨린다. 판타지스럽지만 고착화된 성 역할을 타파하고 소수자를 향한 편견을 조명한 데서 의의를 찾을 수 있다. 사카이 에리의 동명 만화를 원작으로 한다. 발칙한 소재에 반해 스토리의 전개는 극사실주의적이다. 성 역할만 바뀌었을 뿐, 흔히 보고 들어온 모습들이다.



37세 잘 나가는 광고대행사 크리에이터 히야마 켄타로(사이토 타쿠미)는 직장 내에서 촉망받는 인물이다. 다양한 여성들을 매일 바꿔 만나는 자유연애자이기도 하다. 일본 최고의 광고주가 의뢰한 프로젝트의 책임을 맡아 진행하던 어느 날, 컨디션이 급격히 나빠진다. 좀처럼 나아지지 않자 병원을 찾은 켄타로는 믿기지 않는 임신 통보를 받는다. 극소수로 발생하는 남성 임신 '사건'이 본인에게 일어날 줄이야. 켄타로는 충격에 빠진다. 임신 중절 수술을 위해 잠자리를 가진 날짜와 여성의 이름을 살핀 후, 상대가 세코 아키(우에노 주리)임을 알게 된다. 아키는 35세 프리랜서 작가로 바쁜 일상을 보내고 있다. 워커홀릭인 아키는 켄타로와 마찬가지로 연애와 결혼에 관심이 없다. 최근 육아에 대한 관심이 약간 생긴 정도다.


고민할 것도 없이 켄타로는 임신 중절을 택한다. 일과 성공에 지장을 줄 뿐더러 남성 임신을 징그럽다고 생각해왔기 때문이다. 육아 파파가 회식자리에서 일찍 빠지는 것에 대해 부정적인 시선을 보내기도 했다. 그랬던 그가 산부인과에서 같은 처지에 놓인 남성을 만난 후 생각을 바꾼다. 생명의 가치를 깨닫고 출산을 결정한다.

켄타로에게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한다. 시도 때도 없이 밀려오는 두통과 메스꺼움, 수염이 자라는 속도가 빨라지고 흘러나오는 모유 때문에 셔츠가 젖기 일쑤다. 신체 변화 뿐 아니라 호르몬 때문에 요동치는 심리 변화까지 겪으면서 비로소 임신의 어려움을 체득한다.



불편한 경험을 바탕으로 임부복, 수유·요실금 패드, 임산부 표식 등의 필요성을 절감하고 정보를 교환할 임산부 카페를 만들어 큰 호응을 얻는다. 뿐만 아니라 회사 프로젝트의 홍보 모델을 자처해 인기를 얻으면서 승승장구한다. 문제를 잘 극복한 케이스다.


'히야마 켄타로의 임신'은 임신과 출산을 여성의 역할로만 한정짓지 않는 등 고정된 성 역할을 뒤집어 흔든다. 켄타로가 아키에게 임신 소식을 전할 때 '내 아이가 맞냐'는 뉘앙스로 묻는 장면은 현실과 정반대의 모습이다. 불가피하게 경력단절이 되는 쪽도 남성이다. 대신 여성이 가장이 역할을 한다. 싱가포르 지사 근무 제안에 응하고 승진을 위해 커리어 쌓기에 매진인 아키의 모습이 그렇다. '남성다움', '여성다움'의 고정관념을 전복시킴으로써 '나 답게 사는 법'을 고민하게 만든다. '여자라면 당연히'라는 의례적인 통념에 반감이 컸던 아키는 책임의 원동력이 생기자 더 진취적으로 살아간다. 켄타로는 남성의 임신을 '징그럽다'며 배척하는 이들을 향해 "당신도 내일 어떻게 될 지 몰라요. 임신할 수도 있어요"라는 경고를 던지며 자신만의 삶을 구축해 나간다.


켄타로가 역지사지를 통해 체득한 깨달음을 전하자 "그게 뭐 대단하다고 폼 잡으면서 말해요? 여자들은 보통 다 그래요. 잘난 척하는 걸 보니 아직 멀었군요?"라며 응수하는 여성 동료의 모습에서 묘한 쾌감이 들었다. 거들먹거리듯 말하는 켄타로에게 제대로 한 방 날리는 신여성의 모습이 아직도 잊히지 않는다.


남성 임신이라는 파격적인 소재로 시작됐으나 전하려는 메시지는 소소하다. 예상치 못한 사건이 발생했을 때 도망치지 않고 자신만의 방식으로 슬기롭게 대처하라는 것. “예상치 못한 일은 인생에서 반드시 일어납니다. 막상 그런 일이 닥쳤을 때 어떻게 마주하고 대처하는지가 그 사람 다운 것이고요.”


보는 동안 영화 ‘거꾸로 가는 남자(2018)’가 떠올랐다. 남성우월주의에 빠져 여성을 폄하해오던 남자 '다미앵'이 갑작스러운 사고를 당하면서 여성이 지배하는 세상에 소속되며 겪는 혼란을 다룬다. 여성의 환심을 사기 위한 옷을 입고, 손톱 관리와 왁싱을 하는 등 외모 가꾸기에 매진하는 다미앵의 모습을 익숙(편안)하게 바라볼 남성은 드물 것이다. 그가 몸담은 사회 속에서 남자들은 성희롱을 견뎌야 할 뿐만 아니라 권리를 얻기 위해 사회활동까지 벌여야 한다. 남성 대부분은 전업주부로 살아간다. '히야마 켄타로의 임신'과 비슷한 포인트들을 갖췄으니 비교하며 보는 재미가 있을 것이다. 비슷한 소재를 다룬 ‘쥬니어(1994)’라는 영화도 있으니 참고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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