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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기 연애 커플의 현실적인 이별담

영화 ‘어쩌면 우린 헤어졌는지 모른다’

장기 연애를 하다 헤어지는 커플들의 사연은 더 이상 새롭지 않다. 서로가 맞지 않는 면이 있는 걸 알면서도 정 때문에 버티고 버티다가 견디지 못하는 시점에 이르러 붕괴되고 만다. 서로에게 애정과 관심이 떨어져 더 이상 흥미롭지 않은 순간부터는 사실상 이별이라 봐도 무방할 것이다.


영화 ‘어쩌면 우린 헤어졌는지 모른다’는 사랑하던 연인이 모르는 사람이 되기까지의 과정을 그린다. 준호(이동휘)와 아영(정은채)의 이별 여정을 현실감 있게 담았다. 장기 연애의 끝에 다다른 둘은 언제부터 헤어진 상태인지 모를 만큼 서로에게 둔감하다.


준호와 아영은 미대 CC부터 30대 중반에 이르기까지 10년 가까이 연애를 해왔다. 촉망받는 화가였던 아영은 준호와 결혼하기 위해 잠시 꿈을 접어두고 전공과 무관한 부동산 중개업에 뛰어들었다. 준호가 공무원 시험에 합격할 때까지 생활비를 보태며 뒷바라지 중이다.


반면 아영의 집에 얹혀사는 준호는 도통 공부에 집중하지 못하고 무력함에 빠져 시간만 탕진한다. 아영에게 도서관에 갔다는 거짓말을 한 뒤 친구와 게임을 하다가 걸려 집에서 쫓겨나고 만다. 후줄근한 모습으로 커플 모임에 참석하고, 라면 한 입 빼앗아 먹었다고 버럭하며 냄비째 개수구에 버리는 준호의 모습에 실망한 아영은 결국 무너지고 만다. 이 와중에서 자존심을 내세우며 ‘헤어지자’고 말하는 준호를 아영은 딱 잘라낸다. 과연 아영이 이번 사건만으로 준호와의 관계를 정리했을까. 아니다. 아마 수백, 수천 번의 크고 작은 아쉬움과 실망을 거쳐 이 사태에 이르렀을 것이다.



헤어진 두 사람은 각각 새로운 연애를 시작한다. 아영은 준호와 달리 번듯한 직업에 경제력도 있으며 매너까지 갖춘 경일(강길우)를 만난다. 준호는 자신에게 시험에 대한 압박을 주지 않고 응원해주는 안나(정다은)와 새로운 시작을 한다. 그런데 웬걸. 경일은 유부남이었고, 아영은 또 한 번 남자에게 상처를 받는다.


이후 부동산 중개업을 접고 다시 미술을 시작한 아영. 준호에게 연락해 빌려준 태블릿PC를 돌려 달라며 불러낸다. 안나와 함께 있던 준호는 자다 일어나 아영의 화실로 향한다. 재회의 기쁨도 잠시, 서로에게 원망 섞인 날 선 대화를 쏟아내기 시작하는 둘. 그러면서 은연 중에 여전히 남아있는 내밀한 감정을 내비치기도 한다.



‘어쩌면 우린 헤어졌는지 모른다’는 형슬우 감독의 단편 ‘왼쪽을 보는 남자, 오른쪽을 보는 여자’에서 시작된 장편이다. 끝난 것처럼 보이지만 오랜 세월 함께한 흔적을 완전히 지우기는 힘든 법. 어쩌면 미련일지도 모를 미묘한 감정을 갖고 대화를 나누는 장면은 누구나 한 번쯤 겪었을 이별담을 떠올리게 만든다.


남은 감정을 해소하고 서로의 연락처를 지우면서 완전히 남남이 되는 준호와 아영의 모습을 보며 과거의 연애가 떠올랐다. 너무 공감돼서 ‘피식’해버리고 말았다. 치열한 다툼, 식어버린 감정 등 이별의 이유는 다양하다. 어떤 것보다 사적인 게 연애사이지만 보편적인 감정선이란 게 있다. ‘어쩌면 우린 헤어졌는지 모른다’는 청춘이라면 공감할 만한 포인트를 자극해 감상의 재미를 전한다.


이별의 과정을 섬세하고 담담하게 그린 ‘어쩌면 우린 헤어졌는지 모른다’는 티빙, 왓챠, 웨이브 등 OTT에서 시청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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