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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과 추억은 쉽게 떠나보낼 수 없는 법

영화 ‘너를 정리하는 법’ 리뷰

“미니멀리즘은 불교와 유사하죠. 집착을 버리는 거예요. 여긴 집이었어요. 집을 사무실로 개조한 거죠. 세간살이는 다 버렸어요. 쓰지 않는 물건은 불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영화 ‘너를 정리하는 법’의 도입부에서 주인공 진(추티몬 추엥차로엔수키잉)이 인터뷰어의 질문에 답하는 말이다. 진은 스웨덴에서 3년 간의 유학을 마치고 돌아온 뒤 미니멀리즘 철학에 빠졌다. 본래 미니멀리스트가 아니었던 진은 물건들을 정리하면서 가족과 의견 충돌을 겪는다. 특히 아버지와의 추억이 담긴 피아노의 처분을 놓고 엄마와 크게 대립한다. 곤도 마리에의 ‘설레지 않으면 버려라’는 주장에 경도된 진은 대부분의 물건들을 처분하려 하지만, 이 과정에서 물건이 추억의 산물이라는 것을 깨닫는다.



진이 정리에 매달리는 이유는 과거를 지우고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다. 과거에 갇혀 사는 것은 발전에 도움이 되지 않으며, 시대가 바뀌는 만큼 구식의 낡은 것들은 정리하는 게 마땅하다는 생각이다. 학창 시절의 성적표, 인화된 사진은 물론, 친구에게 선물 받은 음반 CD까지 버리려던 그 때. CD를 선물한 절친 핑크(팟차 킷차이차로엔)에게 들통난다. 핑크의 “차라리 돌려줬다면 덜 기분 나빴을 텐데”라는 충고를 통해 진은 물건의 가치를 다시 생각하게 된다.


물건들 대부분이 가족과 옛 연인, 친구들과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깨달으면서 진의 계획은 어긋난다. 물건을 버리는 대신 제 주인을 찾아 주기로 결심하면서 외면했던, 그리고 제대로 마무리하지 못했던 과거를 정리한다. 특히 인사도 없이 이별을 통보한 옛 연인과의 재회는 의미심장한 메시지를 던진다.



쌓인 물건들 만큼 돌려주는 것도 쉽지 않다. 어떤 친구는 추억의 징표를 받았다며 기뻐하지만, 또 어떤 친구는 만나자마자 대뜸 화를 낸다. 또 다른 친구는 돌려준 것보다 더 많은 물건들을 들고 나타나 미니멀리즘을 방해한다. 이처럼 사람 간의 관계는 복잡다단하다.


미처 몰랐던 사건들, 알지 못했던 상처들이 끊임없이 발견되면서 진은 이전의 자신을 돌아보고 관계의 의미를 재정립한다.



영화는 총 6개 챕터로 구성된다. 1. 목표를 정하고 영감을 얻을 것 2. 추억에 잠기지 말 것 3. 냉철해질 것 4. 흔들리지 말 것 5. 더하지 말 것 6. 뒤돌아보지 말 것. 다부진 결심과 같은 챕터의 제목이지만, 정작 진은 이를 따르지 못한다. 도입부 인터뷰에서 했던 말과도 불일치한 감정과 행동을 확인할 수 있다. 우여곡절 끝에 진은 끝내 정리를 성공한다. 그러나 텅 빈 감정, 표리부동한 스스로에 대한 씁쓸한 마음까지는 정리하지 못한다.


물건은 떠나보낼 수 있어도 사람과 추억은 쉽게 정리할 수 없다는 진실을 보여주는 ‘너를 정리하는 법’. 미니멀리즘을 소재로 한 인물의 성장기를 그린 동시에 ‘Happy Old Year’라는 영제처럼 지난 시간들을 기리는 영화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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