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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콘크리트 유토피아> 리뷰

진짜 재난을 낳은 인간의 이기심

7월 마지막 날. <콘크리트 유토피아>를 시사회로 관람했다. 2023년 여름 텐트폴 한국영화 중 (적어도 나에겐)최고작이 될 것으로 예상해본다.



<콘크리트 유토피아>는 인간성에 대한 묵직한 질문을 던진다. 재난영화를 표방하지만 무너지고 충돌하는 상황적 요인보다 인간의 잔혹성이 초래한 공포를 앞세운다.


영화는 대지진으로 폐허가 되어버린 서울, 유일하게 남은 황공 아파트로 생존자들이 모여들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린다. 지진으로 모든 것이 무너지고 황폐해진 상황에서 홀로 우뚝 솟은 아파트는 생존자들의 유일한 낙원이 된다. 아파트 주민들과 아파트로 대비한 외부인들의 공생이 시작되지만, 이내 이기심이 발현되면서 '진짜 재난'이 발생한다.


<콘크리트 유토피아>에서 '진짜' 파괴된 것은 인간성이다. 무너진 건물들은 아무것도 아니다. 미래가 보이지 않는 막막한 상황에서 주민들은 식량과 식수 등에 대한 최소한의 생존 조건을 고민하게 된다. 나와 내 가족의 생존을 위해 오갈 데 없는 타인을 내쫓고 해하는 것을 당연히 여기는 자들. 이로 인해 잿빛이던 세상이 핏빛으로 얼룩지게 된다. 제 삶을 위해 서로에게 재난이 되는 인간 군상의 모습을 치열하게 그린 점이 인상적이다.



그렇다고 이들을 악인이라고 단정지을 수 없다. 평범한 사람들이었고 악행을 저지르는 이유가 충분히 납득되니까.옳고 그름을 가를 수 없는 상황이다. 가령 서로에게 소중한 가족인 민성(박서준)과 명화(박보영)는 재난 상황에서 가족을 먼저 생각하는 마음과 타인을 배려하는 마음 때문에 충돌한다. 누가 더 나쁘고 좋다고 말할 수 없는 문제다. 아파트 주민들과 외부인들은 생존이라는 같은 목표를 두고서도 서로 다른 입장으로 부딪친다. 아파트 주민끼리도 대립한다. 방법대로 나서는 적극적인 모습을 띠는 주민들과 그렇지 않은 사람들이 갈등한다. 온갖 욕망과 갈등, 권력이 뒤섞인 황궁 아파트라는 하나의 세계에서 발생하는 사건들은 '나라면 어땠을까'라는 고민을 끊임없이 하게 만든다.



<콘크리트 유토피아>는 김숭늉 작가의 웹툰 '유쾌한 왕따' 가운데 2부인 '유쾌한 이웃'을 원작으로 한 작품으로 <잉투기>, <가려진 시간> 등을 연출한 엄태화 감독의 신작이다. 거대한 세계관을 그린 비주얼 속에서 묵직한 이야기를 촘촘하게 다룬 섬세한 연출이 인상적이다. 더하여 이병헌, 박서준, 박보영 등 믿고 보는 배우들의 명연기가 말하고자 하는 바를 관객에게 명확하게 전달한다. 특히 이병헌은 영탁이라는 독특한 캐릭터를 생동감 있게 표현해 기대 이상의 하드캐리를 한다. 등장부터 강렬한 임팩트를 남긴 그는 다시 한번 명배우임을 입증했다.


황궁 아파트를 중심으로 펼쳐지는 디스토피아적 세계는 지금껏 본 적 없는 낯선 분위기와 다채로운 에피소드로 극강의 몰입감을 선사한다. 흔들림 없는 연출, 훌륭한 연기, 철학적인 메시지까지 두루 갖춘 <콘크리트 유토피아>. 참고로 반전도 있다! 생각할 거리를 주는 웰메이드 영화를 찾는 관객이라면 후회 없는 선택이 될 것이다.


상영이 끝난 뒤, 로비에서 마주친 엄태화 감독님께 "영화 잘 봤습니다"라는 소감을 표했다. 빈말이 아닌 진심이었다. 다시 한번 이 글을 빌어 좋은 작품을 만들어줘서 고맙다고 전하고 싶다. 8월 9일 개봉.



덧) 이 날 시사회에는 특별한 이벤트가 진행됐다. 바로 '리얼월드 체험존'을 경험할 수 있는 기회! 미션 달성을 통해 황도통조림과 포토티켓을 받을 수 있었다. 황도통조림의 비밀은 영화에서 확인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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