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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뉴 노멀> 후기, 일상이 되어버린 공포

귀신보다 무서운 게 사람!

'귀신보다 무서운 게 사람'이란 말이 있다. 미디어를 통해 접하는 온갖 흉악범죄들은 심장을 조여오는 공포를 자극한다. 예기치 못한 피해자가 되는 건 한순간. 그냥 길거리를 거닐다, 쇼핑을 하다 돌연 유명을 달리한 사람들도 많다. 인연이라 믿었던 관계가 악연이 되기도, 선의를 베풀어도 악의로 돌아오는 경우도 부지기수다.



<뉴 노멀>은 현실 공포를 다룬 스릴러 영화다. 흉악범죄들이 만연한 서울. 여섯 명의 주인공에게 4일 동안 일어난 오싹한 일상을 여섯 개의 에피소드로 보여준다. 여섯 명은 서로 깊이 알지는 못하지만, 어디선가 스치거나 만난 사이다. 저마다의 일상이 있지만 하나의 거대한 문화나 규범의 틀 안에서 살아가는 것처럼 각 에피소드는 주인공들을 중심으로 다른 이야기가 전개되지만 연결성을 지니고 있다.



첫 번째 에피소드는 '둘째날'부터 시작된다. 혼자 살고 있는 여자 현정(최지우)는 가스 점검을 나온 남자 정훈(이문식)을 끊임없이 의심한다. 단 한 순간도 웃지 못하는 현정, 기분 나쁜 농담을 던지며 현정을 해할 것 같은 정훈. 묘한 긴장감을 자극한다.



두 번째 에피소드는 생애 처음 타인을 자발적으로 돕게 된 승진(정동원)의 이야기를 그린다. 거동이 불편한 할머니(이주실)를 만난 후 벌어지는 사건. 승진이 과연 할머니를 잘 도울 수 있을지, 생애 첫 호의가 좋은 결과로 이어질 수 있을지 가슴 졸이며 감상했던 챕터다.



세 번째 이야기에서 드디어 '첫째날'의 정체가 드러난다. 첫 번째 에피소드에서 어렴풋이 드러났던 연쇄살인마의 정체가 드러나는 에피소드! 데이팅 앱에서 만난 남녀가 카페에서 첫 만남을 가진 후 누군가 밖에서 칼에 찔렸다는 소동이 벌어진다. 소동이 궁금해 보러 나간 현수(이유미). 무슨 일이 더 벌어질 것만 같은 긴장감이 이어지고 예기치 못한 순간에 사건이 발생한다.



네 번째 에피소드는 꽤 로맨틱(?)하다. 운명을 믿지 않던 훈(최민호)은 친구의 말을 믿고 우연과 인연을 믿어보려 한다. 우연히 자판기 안에서 발견한 편지의 안내를 따라가다 벌어지는 일!



다섯 번째 에피소드는 옆집에 사는 미모의 승무원(황승언)을 짝사랑하는 취포자 기진(표지훈)의 파렴치한 로맨스를 그린다. 어느 날 여자의 집에 몰래 침입해 자신만의 로맨스를 즐기던 중 예기치 못하게 귀가한 여자 때문에 몸을 숨기게 되는 이야기. 일순간의 욕망이 되돌릴 수 없는 악몽이 될 것만 같은 묘한 분위기가 이어진다.



마지막 이야기는 무례한 손님들 때문에 인간 혐오를 느끼는 편의점 아르바이트생 연진(하다인)의 일화를 다룬다. 누구보다 하루를 살아내는 것이 힘겨운 인물이지만, 누구보다 굳세게 살아가고 있다. 그러나 누군가를 '죽이고 싶다'는 욕망은 가슴 한 켠에 품고 살아간다. 그러던 어느 날 섬뜩한 사건 현장을 직접 보기 위해 나서고 무슨 일이 벌어질 것만 같은 긴장감이 이어진다.


주인공들은 2023년 현재를 외로운 현대인들을 대표한다. 현대인이 겪는 고립과 단절을 중심으로, 데이팅 앱, 칼부림, 청년 고독사, 스토킹 등 사회 이슈들을 엮어 경각심과 현실 공포를 선사하는 <뉴 노멀>. 지금껏 보지 못한 신개념 스릴러물이다. 고독과 외로움에서 벗어나고 싶지만 흉흉한 사건들 때문에 타인에 대한 불신으로 가득 찬 현실은 지옥과 다름 아니다. 선의, 사랑조차 그 이름값을 하지 못하는 현실이 안타깝기만 하다.


<뉴 노멀>은 <기담>으로 국내 공포 영화계에 한 획을 그은 후 여러 괴담을 엮어 실제상황처럼 그린 페이크 다큐멘터리 공포 영화 <곤지암>을 연출한 정범식 감독이 연출했다. 감독의 장면을 그려내는 힘, 미장센을 좋아하는데 이번 작품에서도 그의 특기가 잘 드러나 반가웠다.


한편 <뉴 노멀>은 각양각색 매력을 지닌 배우들의 새로운 도전과 신선한 앙상블을 발견할 수 있는 작품이기도 하다. 로맨스 주인공 이미지가 강했던 최지우의 도전은 완벽했다. 해사한 얼굴에서 드러난 섬뜩한 표정과 눈빛이 인상적이다. 표지훈은 오파렴치한 로맨스에 빠진 오타쿠 같은 모습을 온몸으로 표현해 인상적이었다. 신예 하다인은 거침없는 캐릭터를 훌륭히 연기해 눈길을 사로잡았다.



힙한 OST도 귀를 사로잡았다. 뮤지션들의 뮤지션, 윤상이 음악감독으로 참여하여 락, 클래식, K-Pop, EDM까지 다채로운 장르로 영화에 독특한 색을 입혔다.


공포가 일상이 된 시대. 더 이상 남의 일이 아닌 나와 당신의 일상이 될 수 있을 현실을 담은 신선한 현실공포물 <뉴 노멀>. 장범식 감독은 이 영화를 통해 다시 한 번 K-호러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 11월 8일 개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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