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그림, 여행기가 공존하는 감성 에세이
대인관계에서 변하지 않는 법칙 중 하나. 자기를 먼저 드러내야 타인도 내게 다가올 수 있다는 것. 결국, 나와 타인의 경계를 허물어야 한다는 것인데, 그에 대해 먼저 갖줘야 할 마음가짐은 '진정성'이다.
에세이<나는 아주, 예쁘게 웃었다>는 작가가 자신을 최대한 솔직히 드러내보였기에 친숙했고, 또한 공감할 수 있었던 작품이다. 작가 봉현은, 글 뿐만 아니라 삽화를 직접 그려넣어 독자들의 감성을 '톡'하고 자극한다.
그녀는 고향 부산을 멀리하고 서울로 상경했다. 하지만 서울에 대한 호기심과 흥미는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고 고백한다. 서울에서의 삶에 염증을 느낀 그녀는 '무작정 떠나기'를 실행한다. 그녀가 672일 간 떠난 '세계 방랑기'에 다름 아닌 이 책에서는, 작가의 자기성찰의 흔적을 곳곳에서 찾아볼 수 있다. 이 책은 그녀의 일정기간 동안의 온갖 기록들이다. 평범한 20대 여성의 2년 여간의 세계 방랑기는 즐김의 관광이 아닌, 치열한 자아찾기 여행이었다. 두 발로 걷고 또 걷는 것은 기본. 마땅한 숙소를 구하지 못해 잠을 설치는가 하면, 끼니를 때울 비용조차 없어 그날그날 그림을 그려 허기를 채웠다. 추위를 이겨내기 위해 남이 입던 옷가지를 주워입는 것도 마다치 않은 그녀. 그야말로 '고군분투 생계형 여행'이었던 것이다. 도피로써 시작된 여행을 통해 진짜 자신의 모습을 찾고 삶의 가치를 깨닫게 만들어준 것. 비록, 그녀와 동행하지는 않았으나 솔직하고 감상적인 문체로 그 순간의 공기를 온전히 느낄 수 있었다.
그녀가 여행을 통해 깨달은 것들. 사실 수많은 책들에서 강조되어온 메시지들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그것을 직접 경험을 통해 깨달았냐는 점이다. 불필요한 물질은 버릴 것, 허기를 달랠 정도의 소량의 식사에 대한 긍정성을, 땀을 식혀주는 바람과 함께 걸을 수 있는 친구가 존재한다는 것에 대한 고마움을 배운 그녀다. 또한, 상처받지 않기 위해 남에게 상처 줬던 지난 날을 반성하는가 하면, 삶의 의미를 찾지 못했던 그녀가 그림을 그리며 재미를 발견하게 된 과정 또한 흥미롭다. 코 끝 찡하게 만들었던 것은 '떠나기'에만 열을 올렸던 그녀가, 한국으로 돌아갈 것을 다짐하고 부모님께 감사한 마음을 써내려간 글귀. 언제 어디서든, 가족에 대한 이야기를 접할 때면 괜히 눈물샘이 말썽을 부린다(나만 그런가?). 작가가 여행 시, 항시 안고 다니던 책은 헨리 데이비드 소로의 <월든>과 법정 스님의 저작들. 책 속의 글귀들을 만나는 재미도 쏠쏠하다. 필자는 소로의 열혈 팬이다! 앞선 두 작가의 몸소 실천했던 무소유에 가까운 삶. 그 영향을 이어받은 봉현 작가의 자연주의 여행은, 미니멀리즘이 강조되는 지금, 많은 독자들에게 영감을 줄 것이라 믿어의심치 않는다.
길다 여기면 긴, 짧다 여기면 짧게 여길 수 있는 작가의 여행. 그녀의 여행은 외적 삶을 변화시키지는 못했을지라도 내면을 강화시키는 데에는 큰 몫을 했을 것이다. 20대였던 그녀는, 자신만의 '인생 포트폴리오'를 제작한 셈이다.
저자가 독자들에게 전하는 여행 팁을 옮기는 것으로 서평을 마무리해본다. '좋아하는 책 한 권 챙길 것'과 '오롯이 자신만을 위한 시간을 하루에 단 5분만이라도 가질 것'이다. 간단하다 여기지 말자. 삶 자체가 여행인 우리들의 여행길은 각자가 개척해나가야 할 몫이니까.
[본문에서]
나는 온실 속 화초 같은 도시 아이였다. 24시간 항상 열려 있는 편의점, 잘 다듬어진 채소, 달달한 간식, 아늑한 카페에 이미 익숙해져 있었다. 편안하게 많은 것을 누리면서도 그것이 잘못된 것인 양 죄책감을 느꼈었다. 일상적이고 당연한 것이 소중하다는 걸 몰랐다. - 42쪽
하루하루가 새로운 풍경의 연속이다. 얼핏 보면 비슷하고 똑같아 보이지만, 햇빛 따라 바람 따라 기분 따라 다른 풍경이 된다. 정말이지 아름다운 풍경 앞에서는 아름답다는 말밖에 나오지 않아서 그림으로든 사진으로든 남겨놓고 싶지만 백만 분의 일도 담을 수 없다. 나만이 찰나의 순간 느낄 수 있기에 더욱더 아름다운 것일지도 모른다. 오늘도 세상은 참 아름답다. 그저 길을 걸으면서, 이전에는 쉽게 지나쳤던 것들이 보인다. 나무가 흔들리는 모습에 감동하고 땀을 식혀주는 바람에 기뻐한다. - 144쪽
때로 비현실적일 만큼 행복한 순간이 오면, 시간이 흐르고 있다는 사실을 잊어버린다. 그렇게 아름답고 행복하기만 한 것이 삶이라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여전히 시간이 흐르고 있고, 나는 여기 있다. - 153쪽
말보다는 침묵이 가치롭다. 너무 많은 말을 했다는 생각이 들면 하루 정도 전혀 말을 하지 않고 지낸다. 말을 하지 않으면 생각이 깊어지고 행동에 조심스러워진다. 나의 많은 것을 성급히 이야기하지 않고, 사소한 것도 신중하게 받아들이려 한다. 말하기보다는 듣고, 느낀다. 그런 여백을 두어야 나 자신을 바라볼 수 있다.
- 195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