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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9회 칸 영화제(2016)
'경쟁부문' 감독 훑기

많은 씨네필들이 기다리고 있을 칸 국제영화제가 오는 5월 11일부터 22일까지 이어진다.

올해 경쟁부문은 여느 때보다 치열해보인다. 다르덴 형제, 켄 로치, 짐 자무쉬, 페드로 알모도바르, 자비에 돌란 등 쟁쟁한 감독들의 작품들이 경합을 벌이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반가운 것은 경쟁부문에 박찬욱 감독의 <아가씨>가 초대됐다는 점! 그의 팬이기도 하지만, 한국영화의 위상을 보여줬으면 하는 바람으로 그를 응원해본다. 뿐만 아니라, 비경쟁부문에 나홍진 감독의 <곡성>이, 심야상영으로는 연상호 감독의 <부산행>이 선정됐다. 작품들에 대한 영화인들의 반응이 기다려진다.


이번 칸 영화제에는 스타 감독, 즉 많은 이들이 알 만한 감독들이 대거 등장할 예정이기에 인기도가 높아질 것으로 예상된다. 필자 또한 설레는 마음으로 영화제를 기다리고 있다. 영화제를 즐기는 방법은 개인마다 다르겠지만, 어떠한 영화나 감독, 배우들이 수상을 거머쥘 것인가에 대해 예측해보는 것 또한 즐기는 방법들 중 하나가 될 것이다. 그래서, 경쟁부문에 작품을 내건 감독들 몇 명과 그들의 작품들을 정리해봤다.





[짐 자무쉬 Jim Jarmusch]

<천국보다 낯선>을 본 후, 반해버린 감독이다. 그의 영화는 영상과 특유의 분위기도 주목할 만하지만, 음악까지 멋있다. 알고보니, 그는 훌륭한 감독인 동시에 음악에 대한 열정도 지닌 인물이었다. 청소년기에 록밴드에서 기타 연주를 하는 등 관심과 재능을 가졌던 그는, 영문학부에 입학했으나 영화에 매력을 느껴 파리에 체류하기로 결정한다. 로베르 브레송, 장 뤽 고다르, 오즈 야스지로의 영화들에 심취한 그는 이윽고 빔 벤더스와도 친분을 맺게 된다. 자무쉬 감독이 대단한 건, 그의 첫 번째 장편영화<영원한 휴가>가 만하임영화제에서 수상한 데 이어, 두 번째 장편영화인 <천국보다 낯선>을 출세작으로 만들어놓는다. <천국보다 낯선>은 흑백영화다. 칸 영화제에서 황금카메라상을 수상하기도 한 작품인 만큼, '특유의 절제미'를 선보인 작품이다. 필자가 이 영화를 좋아하는 이유는 '분위기'에 있다. 원신-원쇼트를 과감하게 실행한 덕분에, 지금 봐도 촌스러운 면이 없다. 오히려, '미니멀리즘'이 강조되는 현 시대에 걸맞은 양식을 선보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 양식으로 인해 고립된 인물들의 서로 다른 이해, 그로 인해 빚어진 잘못된 소통을 그려낸다. 로드무비이지만, 열정적이거나 전투적인 열기가 아닌 을씨년스러운 분위기가 감도는 작품이다. 이방인, 냉소 등이 뒤섞인 영화들은, 짐 자무쉬 감독의 특기라고 볼 수 있다. 그의 영화들에는 색채들이 빛을 발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대신, 특유의 유머코드가 서려있다. 웃지 못할, 않아야 할 상황들이지만 보는 이들로 하여금 한기 섞인 미소를 끌어내는 것이 그의 장점이다. 짧은 에피소드를 이어 붙인 <커피와 담배>또한 필자가 좋아하는 작품이다. 보는 이들은 우습지만, 영화 속 인물들은 절대 웃을 수 없는 상황에 놓여있다. 찌질해서 밑보이고, 무시 당하는 그들이 때로는 안쓰럽기도 하다. 그의 특기는 <브로큰 플라워>에서 한껏 발휘된다. '옛 사랑을 찾아떠나는 남자'는 로맨틱하게 보여질 수 있지만, 그의 여정은 민망할 정도로 참혹할 때도 많다. 그는 '다양한 시도'를 즐기기도 한다. '사랑'과 '여행'을 이어붙이는 데 탁월한 기질이 있는 감독은 이윽고 '현대판 뱀파이어의 로맨스'를 그린 <오직 사랑하는 이들만이 살아남는다>를 선보인다. 다소 크로테스크한 느낌마저 감돌지만, 허당기 가득한 인간미(?) 넘치는 뱀파이어들의 로맨스가 인상적이었다. 이 작품에서 역시 '음악'이 인상적이었다. 다양한 실험 정신이 돋보였던 전작. 이번 영화<패터슨>은 어떠한 '특이 코드'를 안고 있을지 기대된다.


영화<패터슨> 스틸 컷




[페드로 알모도바르 Pedro Almodovar]

이 감독에게 반하게 된 계기는 영화<그녀에게 Talk to her>를 본 이후다. 어쩌면 그의 다양한 작품들 중 가장 '정상적인' 영화. 다른 영화들은 타인에게 권하기 왠지 조심스럽다. 지식인, 도덕주의자, 순결성과는 꽤나 거리가 먼 영화들을 '많이' 만들어 온 그는 스페인을 대표하는 감독이다. 그럼에도 그의 영화들을 좋아하는 마니아들은, 양성애와 동성애의 자유분방한 표현, 죽음과 부조리, 초현실적인 독특한 발상, 기괴한 유머 등의 이유로 그를 추종한다. 어쨌든 그로 하여금 '스페인 문화의 파격성'을 간접적으로 느낄 수 있는 건 사실이다. 영화<마타도르>는, 가학과 피학, 음란과 오이디푸스 콤플렉스, 심지어 시체애호증에 이르기까지 혹자에게는 혐오로 느껴질 만한 소재들이 뒤엉킨 작품이다. 이 영화가 '이상'하다고? 아니다! <마타도르>는 그의 다른 작품들에 비해 '다분히 진지한' 작품이었다. <욕망의 법칙>과 <신경쇠약 직전의 여자>는 다양한 인물들이 얽히고설켜있는데다, 그 꼬임이 우스꽝스러운 코미디로까지 치닫는 '이상한 코미디'다. 필자가 그의 작품들을 보던 중 가장 '충격'을 받았던 영화는 <욕망의 낮과 밤>이다. 원제는 '나를 묶어줘요! 나를 풀어줘요! (Tie Me Up! Tie Me Down!)>이다. 제목만으로도 이상하게 느껴지겠지만, 직접 보면 그 이상이다. 단순무식에 과격하기까지 한 남자에게 납치당한 포르노 여배우는, 결국 그 남자에게 사랑을 느끼게 된다. B급 에로영화 수준의 시놉시스이지만, 묘하게 설득된다. 영화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모두 가짜 욕망에 갇힌 존재들이다. 가짜 욕망이 아닌 '진짜 욕망'을 거침없이 표현하는 남자주인공. 그를 다르게 표현하자면, 진정한 로맨틱가이 아닐까. 그의 영화들은 다양한 욕망들을 집요하게 다룬다. <브로큰 임브레이스>에서는 죽을 때조차 서로를 놓지 못하는 남녀가 등장한다. 성욕, 애욕이 넘쳐나는 그의 영화는 붉은 빛으로 가득하다. 애욕 뿐만 아니라 모성애도 '열정적'으로 보여주는 페드로 알모도바르. 그가 좋아하는 붉은 빛은 사랑과 죽음을 아우르는 색채다. 이번 영화<줄리에타>에서도 모성애 코드가 느껴진다. 이번에는 어떻게 사랑이 그려졌을지 기대가 크다.


영화<줄리에타> 포스터



[켄 로치 Ken Loach]

켄 로치는 유럽을 대표하는 좌파 감독이다. 선동을 원핮는 않지만 노동자들이 어떻게 살고 있는지, 그들이 일상에서 부딪치는 문제는 무엇인지에 대해 끊임없이 다뤄왔다. 70년대 중반까지 작품을 발표할 때마다 늘 검열과 맞서 싸웠고 다음 작품의 제작비 마련을 위해 고군분투해 온 그다. 그의 작품<교차로를 향해>는, 런던 남부 클래팜이라는 곳에 사는 세 노동자 여성의 생활을 통해, 사랑과 성, 낙태와 오염된 상업주의를 표현했으며 <캐쉬 집으로 돌아오다>는 카메라가 배우들을 따라다니는 형식으로 그려, 관객들로 하여금 진심어린 공감대를 이끌어낸다. 이런 영화들을 만들어 왔던 켄 로치의 90년대 이전의 삶은 까마득했다. 하지만, 90년대 이후 로치가 만들어 낸 영화들은 세계 곳곳에서 주목받기 시작했다. <숨겨진 비망록>으로 90년 칸 영화제에서 심사위원 특별상을 받았으며, <리프 라프>는 91년 '올해의 유럽영화상'을 수상했다. 딸의 예복 마련을 위해 고군분투하는 가난한 노동자의 일상을 담은 <레이닝 스톤> 역시 칸 영화제 심사위원상을 받았으며, 2006년 발표된 <보리밭을 흔드는 바람>으로 칸 영화제 '황금 종려상'을 수상한다. 로치의 작품들이 '끊임없이 주목'받는 이유는, 시대를 거스르는 세련된 연출에 있다. 지난 2012년에 발표된 <앤젤스 셰어: 천사를 위한 위스키>는 노장 감독이 만들었다고 여겨지지 않은 만큼 트렌디한 연출이 이색적인 작품이었다. 이는, 감독이 끊임없이 청년들과 노동자들에게서 시선을 놓지 않고 있다는 것을 입증한다. 이번 칸 영화제 경쟁부문에서 베일을 벗을 <아이, 다니엘 블레이크> 역시 사회적 약자에 놓여있는 이들의 이야기를 다루는 작품이다. 살아남기 위해 치열하게 싸우는 날 것 그대로의 모습이 어떻게 비춰질지 기대된다.


영화<아이, 다니엘 블레이크> 스틸 컷



[다르덴 형제: 장 피에르 다르덴(Jean-Pierre Dardenne), 뤽 다르덴(Luc Dardenne)]

켄 로치와 같이, 노동자의 삶과 청춘의 방황을 끊임없이 이야기해오는 다르덴 형제. 이들의 신작<언노운 걸>은 최초 황금종려상 3회 수상에 대한 기대감을 높이고 있는 작품이기도 하다. <언노운 걸>은, 도움을 청하는 여자의 목소리를 무시한 의사가, 그녀가 사라졌다는 사실을 알게 된 후 겪게되는 의문의 사건을 다룬다. 다르덴 형제와 칸 영화제의 친분은 상당하다. <로제타>로 황금종려상과 에큐메니컬상을 수상한 데 이어, <아들>로 에큐메니컬상을, <더 차일드>로 황금종려상을, <로나의 침묵>으로 각본상을, <자전거 탄 소년>으로 심사위원 대상을, <내일을 위한 시간>으로 에큐메니컬상을 수상한 이력이 있는 그들. 이번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의 강력한 수상 후보로 언급되고 있다. 휴먼 다큐멘터리 형식을 취해, 한 인물의 동선을 따르는 다르덴 형제의 영화들은 집요하다. 최초 황금종려상을 수상한 <로제타>는, 알코올 중독자인 엄마와 단 둘이 살아가는 십대 소녀가 경제적 어려움에서 벗어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모습을 여과없이 담아낸다. 이후, 벨기에에서는 10대 노동자보호법이 개정된 바 있을 정도로 영향력을 발휘하기도 했다. 다르덴 형제의 영화들은 마치 이탈리아의 네오 리얼리즘 영화들을 보는 듯한 양식을 선보인다. 신예 혹은 비전문 배우를 주인공으로 선택하는가하면, 핸드헬드와 롱테이크를 즐겨 사용한다. 음악의 사용도 최대한으로 줄이는 식이다. 주인공들은 노동을 하지만, 어쩌면 완전한 노동자 계급에도 속하지 못하는, 그야말로 '어중이떠중이' 계급이다. 사회에 편입되려 '노력'하지만 결국 물거품이 되고야 마는 나약한 인물들을 그려낸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르덴 형제의 영화들 속 주인공은 '윤리'를 지키고자 노력한다. 삶의 모든 것을 잃어버린 주인공들은 죽음 직전까지 가지만, 결국 삶을 지키는 방향으로 나아간다. 대부분 열린결말을 취하지만, 분명히 그들은 긍정적인 내일을 택할 것으로 보여진다. 이들 감독의 영화들은 영화 그 이상의 가치를 실현한다. 사회적 영향력은 물론이거니와, 관객들에게 다양한 '질문을 던짐'으로써 사색을 고무시킨다. 이것이 영화의 '힘'이다. 그래서 다르덴 형제의 영화들은 끊임없이 칸의 사랑을 받아오고 있는 것이다. 이번 영화<언노운 걸>에서는 어떠한 질문을 던질지 기대된다.


영화<언노운 걸> 스틸 컷



[자비에 돌란 Xavier Dolan]

혜성같이 등장한 무서운 천재 감독, 자비에 돌란. 1989년생인 그는, 데뷔작 <아이 킬드 마이 마더(나는 엄마를 죽였다)>로 영화제 최우수 작품상, 장편상 등을 거머쥐었다. 그의 나이 19세 때의 일이다. 이후<하트 비트>, <로렌스 에니웨이>, <마미> 등 제작되는 영화들마다 각종 영화제의 러브콜을 받아온 그다. 특히, 영화 <마미>는 칸 영화제에서 최연소로 심사위원상을 거머쥔 덕에 이슈화된 바 있다. 이후, 칸 영화제 최연소 심사위원으로 위촉된 그다. 자비에 돌란은, 영화를 통해 자신의 이야기를 꺼내놓는다. 즉, '자기만의 이야기'를 한다는 거다. 심지어, 직접 연기까지 하면서 그는 영상으로써 자서전을 써나간다. <아이 킬드 마이 마더>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찾은 그는 <하트 비트>에서 보다 과감한 양성애를 '미학적'으로 풀어낸다. 돌란은 섬세하다. 그의 작품에는 다양한 예술성이 묻어나온다. 다른 작품들을 끌어모아 편집하는 콜라주 양식을 즐기는가하면, 음악, 의상까지 자신의 손을 거친다. 특히 <로렌스 애니웨이>에서의 감각 넘치는 의상과 음악은 감독의 예술에 대한 열정을 한가득 느낄 수 있다. 자비에 돌란은 '자유분방한' 감독이기도 하다. 자유분방하지만, 그렇다고 관객들에게 불친절하지도 않다.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에 걸맞은 자유분방한 표현은 오히려 그에 대한 충성도를 드높이는 데 큰 몫을 한다. 자비에 돌란은 '아름다운 청년 감독'이다. 수려한 외모는 물론이거니와 그에 뒤지지 않는 실력까지 갖춘 그다. 감독, 배우로서의 힘은 많은 조력자들을 자연스럽게 끌어모으는 듯 하다. 이번 칸 영화제 경쟁작으로 선택된 <단지 세상의 끝>에는 쟁쟁한 배우들이 출연한다. 마리옹 꼬띠아르, 레아 세이두, 뱅상 카셀 등 이름만으로도 가슴 설레는 배우들이다.


영화<단지 세상의 끝> 스틸 컷



[박찬욱]

박찬욱 감독 영화의 중심에는 '죄의식'이 있다. 하지만, 그 죄의식은 악인만에 의한 것이 아니다. 늘 그 죄는 본능과 동행한다. 칸이 사랑하는 국내 감독, 박찬욱. <올드보이>와 <박쥐>가 칸 영화제 심사위원대상을 수상한 데 이어, <아가씨>의 진출 또한 반가운 소식이다. 잔인한 장면들을 '섬세하게' 묘사해냄으로써 관객들에게 '악'을 '독'하게 보여주는 장면들의 의미는 무엇일까. 과연 우리는, 그가 그려낸 장면들을 보며 주인공들만을 욕할 수 있을까? 아마 지켜보는 우리들도 '뜨끔'할 것이다. 이유는, 앞서 말했듯 악에 대한 본능이 우리의 깊숙한 곳에 자리하고 있기 때문이다. 박찬욱의 복수3부작 <복수는 나의 것>, <올드보이>, <친절한 금자씨> 속 가해자들은 죽이고 싶을 만큼 잔인하지만, 그들의 범행동기(속사연)를 알면 한편으로는 그들 편에 서게 될 수밖에 없다. 복수에는 동기(목적)가 있다. 본능과 목적달성의 시너지가 클수록 복수의 잔혹함은 가중된다. 이번 영화<아가씨>에서도 '다양한 욕망'이 얽히고설켜있다. 원작소설<핑거 스미스>와 동명의 드라마는 인물 개인의 심리와 관계의 줄다리기가 세밀하게 표현돼 있다. 과연 영화로는 어떻게 표현됐을까. 탄탄한 원작 소설과 그를 바탕으로 제작된 드라마가 존재하는 작품을 선택한 것에 대한 부담이 컸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박찬욱 감독의 신작에 대한 기대가 크다. 필자 개인이 염두에 두고 있는 <아가씨>의 감상 포인트는, 어떻게 작품을 '우리 식으로 해석'했냐는 점과 배우들의 표현력이다. 원작의 해석은 영화의 분위기에서 드러날 것이며, 그 위를 수놓는 배우들의 연기가 작품의 성패를 좌우할 것으로 보인다. 어떠한 욕망이 우리를 뒤흔들지 기대가 큰 작품이다. 물론, 칸 영화제에서 좋은 성적을 거뒀으면 하는 바람도 크다.


영화<아가씨> 스틸 컷



칸 영화제가 사랑하는 영화들은, 사람을 깊숙이 들여다 본 작품들이다. 깊숙이 내재된 욕망, 그것이 밖으로 분출됐을 때의 형태, 사회라는 환경과 개인의 관계 등을 '잘 풀어낸' 영화들이 사랑받아왔다. 이번 칸 영화제에서는 어떠한 작품이 영예를 거머쥘 지 기대가 크다. 5월 11일, 영화인들의 축제가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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