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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바그다드 카페>

두 아줌마가 사막에 내린 기적

내가 태어난 해에 탄생한 영화<바그다드 카페>를 스무살 때 처음 접했다. 영화의 'ㅇ'자도 몰랐던 나였지만, 이 영화에는 푹 빠졌었다. 이후, 많은 사람들에게 이 영화를 추천했고, 며칠 전 나는 '신중하게' 이 영화를 재감상했다.


2016년 5월, 국내 재개봉 포스터



처음 접한 이후, 나는 이 영화의 'OST'에 가장 큰 매력을 느꼈다. 아카데미 주제가상 후보에 올랐던 주제곡 '콜링 유 Calling You'는 한 번 듣고도 절대 잊히지 않을 만큼 독특하고도 강렬한 음색을 지니고 있다. 뿐만 아니라, 영화의 색채 또한 인상적이었다. 수채화를 옮겨놓은 듯한 색감. 특히, 새파란 하늘빛이 뇌리에 강렬히 각인됐었다. 두 여주인공의 강인함과 그들의 우정이라는 줄거리 또한 내가 영화에 반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다. 페미니즘 영화들은 줄곧 나를 유혹해왔다. 그렇다고 <바그다드 카페>가 투박하거나 억척스러운 면만 지닌 건 아니다. '예상 외의' 로맨스도 갖추고 있다. 트레일러에 사는 늙고 초라한 남자 '루디 콕스'는, 그림에 대한 열정이 남아있는 로맨티스트인 동시에 그곳을 찾은 야스민과 사랑에 빠진다. 심지어 '독특한 프러포즈'도 감행한다.



<바그다드 카페>의 주된 소재는 '여성의 우정과 성공'이다. 남편과 렌트카 여행을 하던 중 싸움을 하게 된 야스민은 홧김에 황량한 사막 한복판에 내린다. 무더운 날씨에 모직 옷을 입고 땀을 뻘뻘 흘리는 뚱보아줌마 야스민. 그녀는, 길 한복판에 있는 바그다드 카페의 문을 연다. 가스와 오일을 팔며 모텔을 겸하고 있는 그곳에서의 투숙을 결정하는 야스민. 카페 여주인 브렌다는, 빈둥거리기 일쑤인 남편과 말 안 듣는 아들 딸 때문에 이미 지칠대로 지쳐있는 상태다. 그런 그녀가 타인에게 관대하길 바라는 건 과욕이다. 손님인 야스민에게도 브렌다는 불친절하다. 카페를 찾는 온갖 방랑자들의 삶 또한 물 한 모금 마시지 못한 사막 위의 사람들처럼 축~ 처져있기 일쑤다. 그렇게 삐걱대던 카페는, 야스민이 투숙한 이래로 달라지기 시작한다. 그녀는, 카페와 모텔을 말끔히 청소하는가 하면, 마술을 익혀 손님들을 상대로 마술 서비스를 한다. 이후, 거짓말처럼 손님들로 북적이기 시작하는 카페는 활기의 공간으로 변모한다.



영화는, 죽어있는 모든 것들에 생기를 부여한다. 가족관계와 경제적 빈곤을 앓고 있던 브렌다, 경제적으로는 큰 문제 없어 보이지만, 자식이 없고 남편까지 떠나버린 관계의 부재로 인한 고통을 겪고 있던 야스민. 죽어있는 카페와 그곳을 찾는 사람들. 이 모든 사람들은 결핍을 안은 '약자'였다. 하지만 그들이 서로의 고통을 어루만지고 소통해나가면서 '성공'을 맛본다. 전혀 다른 모습의 두 여성이 만나 기적을 이룬 셈이다. 물론, 영화는 '현실성'을 부여하면서 그들의 성공을 오래 지속시키거나 가속화시키게 내버려두지 않는다. 관광비자가 만료된 데다 취업비자 없이 일을 하던 야스민은 고국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는 상황에 처한다. 바그다드 카페의 성공은 반짝 빛나던 일시적인 현상으로 기억될 뿐이다. 결국, 바그다드 카페는 이전의 남루한 상태로 돌아가고 말지만, 두 여성의 관계와 그들이 빚어낸 성공은 확실히 멋있다.



'바그다드 카페'의 성공을 이렇게 표현하고 싶다. '황량한 사막 위에 활짝 핀 꽃'이라고. 비록, 모래바람이 휩쓸고 간 듯한 성공이지만 그 바람이 전하는 향기는 관객들의 마음 속 깊이 머물고 있을 것이다. 두 아줌마의 '뜨거운' 포옹은 가히 눈물겹다. 삶에 지쳐 힘들 때, 그 누구도 내 주변에 남아있지 않다고 여겨질 때 이 영화를 꺼내보면 어떨까. 지금의 환경이 처량하다 할지라도, 빛을 비춰주는 조력자가 언제든 당신의 눈 앞에 기적처럼 나타날 수도 있을 것이다. 그 힘을 믿어보고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태도를 갖출 것. 마냥 우울하기만 한 인생은 없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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