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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어린왕자 禪선을 말하다>

서양 문학과 동양 사상의 만남


<어린왕자 禪선을 말하다>는, 발상이 좋은 작품이다. '선'이라는 것은, 불립문자(不立文字). 즉 문자로 설명될 수 없는 부분이 많은데, 저자 시게마츠 소이쿠는 우선 이것들을 문자로 설명한다. 더욱이, 우리에게 친숙한 문학작품 <어린왕자>를 빌어 독자들의 이해를 돕는다는 점이 인상적이다.


사실, 이 책은 쓰여진지 오래(1988)다. 저자는, 이후 <모모도 선을 말하다>, <앨리스 선을 말하다> 등의 시리즈를 발표하면서, 문학작품과 선의 조화를 실행해왔다. 그는, 시즈오카의 선사에서 태어나 유년시절부터 엄격한 동자승 교육을 받아온 인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미 문학 연구자가 된 그의 모습만 봐도, 얼마나 창의적이며 능동적인 인물인가를 가늠할 수 있다. 무엇보다, 동양의 오랜 전통인 선과 프랑스인의 가치관이 어울릴지에 대한 연구와 그것을 이어붙이는 데 성공했다는 것이 인상적이다. 물론, 읽어보면 완벽히 일치한다고는 할 수 없다. 하지만, 지구는 둥글고 결국 우리는 인간이라는 하나의 본질에 지나지 않는다는 저자의 주장(수많은 현자들도 이를 강조해왔다)을 빌어본다면, 인류보편적인 본질을 설명하는 데는 국가와 문화가 그리 중요하지 않다는 것을 깨닫게 될 것이다. 실제로, <어린왕자>는 국가와 세대를 막론하고 사랑받는 작품이다. 이 보편적인 사랑을 받는 작품에 대해, 저자도 감동을 받은 것이다.


<어린왕자>의 저자 생텍쥐페리가 선을 염두에 두고 작품을 써내려갔다고 단정지을 수는 없지만, 시게마츠라는 선승이 <어린왕자>에 매료됐고, 그것을 자신이 가장 잘 아는 선과 결합시켰다는 것. 이것이 이 책이 세상 밖으로 나올 수 있었던 계기이다. 독서가 흥미로운 것은 독자의 해석에 따라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와 가치까지도 확대될 수 있다는 점이다. 같은 작품을 접하고도 다양한 후기가 등장하는 것처럼 말이다. 필자는 이 책을 접하면서, 이미 자주 접했고 익히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해왔던 <어린왕자>에 대한 다른 관점을 접하게 됐다. 다소 충격이었다. 그로 인해, 이미 알고 있다고 자만했던 나 자신에게 스스로 반성하기도 했다.


책의 내용으로 들어가보자. '지금 여기에서 나는 그저 단순히 겉모습을 보고 있을 뿐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 수많은 사람들의 마음 속에 살아있는 어린왕자의 '명언'이다. 이 문장은 저자의 관점에서 재해석된다. 내면의 마음을 보기 위해서는 '심안'을 사용하라고 말이다. '보이지 않는 깊숙한 곳에 마음이 비치고 있어도 '보는 눈'을 가지고 있지 않으면 보이지 않습니다. 단순한 눈동자로는 볼 수 없습니다. 눈동자는 단지 신체의 외부를 향해 붙어 있기 때문에 공교롭게도 외부의 사물밖에는 보이지 않습니다. 내면의 마음을 보기 위해서는 마음의 눈, 즉 '심안(心眼)'을 사용하지 않으면 보이지 않습니다. (21쪽)' 이와 같이, <어린왕자 선을 말하다>는, 작품에 대한 저자만의 해석문이라 볼 수 있다. 어린왕자의 명언들 뒤로 이어지는 저자만의 작품 해석과 그에 걸맞은 선 사상이 더해진다. 한 가지 예를 더 들어보자.



"저 사람들은 지금까지 있었던 곳이 마음에 들지 않아서 어디론가 가는 걸까요?"하고 왕자가 물었다.

"자신이 존재하고 있는 곳에 만족하는 사람은 없다."고 철도원이 답했다.

정말로 그렇습니다. 자신이 낯익은 것만큼 웬일인지 볼품이 없으며 시시하게 보이는 법입니다. 사람이나 장소나 모든 것에 대해서 그렇습니다. 가까이에 존재해 있는 것일수록 가볍게 바라보는 경향이 있습니다. 자신이 존재하는 곳에서 멀리 가면 훨씬 좋은 것이 있다고 착각합니다. (55쪽)



이 외에도 책에는, 각하조고(脚下照顧) , 색즉시공(色卽是空), 공즉시색(空卽是色), 자유 등 10가지 주제를 <어린왕자>와 함께 설명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자는, 책의 마지막에 일기일회(一期一會)를 강조하면서 '사랑'이라는 주제로 책을 마무리한다. '자신의 일생을 돌이켜 볼 때, 살아서 좋았다고 실감하기 위해서는 역시 누군가를 사랑하고 무엇인가를 사랑하는 것이 어떨까요? 대상은 가족이든 일이든 친구든 그 외에 무엇이라도 사랑하는 마음을 가지고 일생을 마치는 것이야말로 담백한 인생을 위한 원점이 아닐까요? 태어나서 사랑하고 죽는다. 이것이 짧은 세월의 인생을 부여받은 인간이 최선의 노력을 다 해야 하는 것임에 틀림없습니다. (185, 186쪽)' 사랑에 대한 <어린왕자> 속 명언은 색즉시공과 공즉시색을 다루는 장에서 구체적으로 언급된다.


이 책이야말로 범세계·시대적인 인문학 서적으로 볼 수 있겠다. 국가와 시대(세대)를 초월해 사랑받는 문학 작품과 종교(선 사상)가 만났다는 것과, 동서양이 만났다는 것. 이 형식적인 부분만 놓고 봐도 원형성이 느껴지는 작품이다. 쉽게 읽히지만 좋은 문장들을 가슴에 새기느라 예상보다 완독하는 데 오랜 시간이 걸렸던 책이다. 소장해두면 좋을 책이다. <어린왕자>가 '어른들을 위한 소설'이라고 불리는 만큼, 해석이 필요한 독자들에게 안내서로 권해도 좋을 것 같다.



[책 속에서]


자기 자신에 대한 사항들은 자기 스스로가 가장 잘 볼 수가 없습니다. 본래 우리들의 눈도 그렇습니다. 매우 아이러니하게도 인간의 눈동자는 눈동자 그 자체를 볼 수가 없습니다. 눈동자 이외의 물체라면 보이는데도, 중요한 핵심인 눈동자 그 자체는 볼 수 없습니다. - 54쪽


어린 왕자는 태어나서 자랐던 곳을 한 번 떠나와 다양한 체험을 통해서 자기가 자란 곳이 좋은 곳이라는 점을 재인식하고 본래의 장소로 돌아갑니다. 이 마음 여행의 종착지야말로 '각하(脚下)'에 있는 본래의 나의 집. 진정한 자기 자신임에 틀림없습니다. 이러한 의미에서 어느 적당한 시기에 '각하'를 떠나는 것도 인간의 성장과 성숙에 필요한 일 혹은 필연적인 과정이라고 생각하면 좋을 것 같습니다. - 57, 58쪽


인간에게 있어서 더욱 어려운 점은 눈을 '각하'로 향해서 자신을 '조고'하는 것, 그리고 공평하게 자기 자신을 심판'하는 것 등, 어느 것이든 정확하게 판단하기 위해서는 아무래도 자기라는 대상으로부터 한 번 떨어져서 적당한 거리를 둘 필요가 있습니다. - 91쪽


'사랑한다는 것은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항상 같은 방향을 바라보는 것'이라고 생텍쥐페리가 말했습니다. 이 말은 <인간의 대지>에 나오는데 사랑에는 여러 가지 형태가 있대도 이야말로 사랑하는 행위의 기본일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 101쪽


사랑하는 두 사람에게 있어서 정말로 중요한 점은 '함께 같은 방향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서로 나누는 '평등'의 세계를 향하여 새로운 가치 있는 세계를 둘이 손잡고 구축해 나가는 일입니다. 그리고 '같은 방향'을 바라보는 것을 외면하면 안 됩니다. - 10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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