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영화 <곡성>, 미치고 곡할 노릇

올해 가장 흥미진진한 영화가 될 거라는 '의심 없는' 예상!

장면을 보여줌에도 불구하고 답을 얻지 못함의 연속인 영화 <곡성>. 그야말로 '미치고 곡할' 만한 작품이다. 전라도 곡성(谷城)에서 울려퍼지는 곡성(哭聲)을 다룬 이 영화는 좁은 공간, 명확한 캐릭터들이 명시됨에도 불구하고 다양한 현상들 때문에 감상자들을 혼란의 수렁에 빠트린다.



영화에는 인간의 온갖 본성과 현상은 물론, 영(靈)과 종교, 꿈과 현실 등이 한데 모여있다. 이렇게 무거운 소재를 다룸에도 불구하고, 감독은 감상자들과의 소통을 위한 장치를 철저히 계산해낸다. 먼저, 감독은 감상자들을 '종구'라는 캐릭터에 몰입하게끔 만든다. 종구는 귀신 들린 딸 때문에 점점 미쳐간다. 귀신 들린 딸은 심신이 악(惡)으로 물들어간다. 그 악을 몰아내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아버지는, 우리들 자신이다. 가족 중 한 명이 종구의 딸과 같은 상황에 처했다면, 우리 또한 미쳐갈 것이다. 뜬소문에 휘둘릴 것이고, 그 소문으로 타인을 의심할 수 있다. 어떻게든 가족을 살려내기 위해 온갖 기댈 것들에 맹목적으로 의존할 것이다. 최후의 수단으로, 가족을 해한 이를 찾아가 폭력을 가하고 더 나아가 살인자가 될 우려도 있다. 그렇게 큰 사건이 벌어진 뒤 후회한들 무엇하랴. 영화는, 우리가 보이지 않는 것을 믿거나 의심함으로써 행동함으로써 벌어지는 끔찍한 사건들과 눈에 보이는 것은 무조건 실존한다고 믿어버리는 어리석음을 통해 우리 스스로를 성찰하게 만든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수많은 선택의 순간에 놓인다. 선택을 위해 보고 듣는 것들, 혹은 그 이외의 것들을 통해 '판단'이라는 것을 하지만, 그 판단은 과연 모든 것이 옳을까. 잘못된 현상들을 믿음으로써 본질이 파괴된다면 결국 우리는 모든 것을 잃게 되는 것과 다름 아니다.



영화에서도 등장하는 단어 '미끼'. 감독은 영화의 초중반, 심지어 거의 끝나갈 때까지 감상자들에게 미끼를 던진다. 수많은 미끼들 중 무엇을 물 것인가. 우리는 나름의 보고 듣는 것들을 통해 나름의 판단을 하게 될 것이다. 영화 속 캐릭터들처럼 누군가를 믿고 그 편이 되는가 하면, 믿지 않은 이는 의심의 대상이 된다. 그 판단. 영화의 끝이 다다랐을 때 완전히 옳았다고 여길 감상자들이 몇 명이나 될지 궁금하다. 필자 또한, 주인공 종구와 그 외 캐릭터들처럼 타인의 언행을 믿거나 의심하면서 영화가 끝에 다다를 때까지 긴장의 끈을 놓지 못했다.



영화 <곡성>은, 끝날 때까지 끝나는 영화가 아니다. 만약 섣부른 판단에 긴장을 놓아버린다면, 이후에 펼쳐질 반전에 더 큰 충격을 받게 될 것이다. 눈과 귀는 물론, 온간 촉각을 곤두세울 수밖에 없는 후반부는 나홍진 감독의 연출력이 여과 없이 드러나는 시점이다. 그간, 범죄·스릴러 장르를 통해 캐릭터의 치밀한 내면 묘사를 인정 받아온 감독. 이번 영화에서는 이전 작품들보다 훨씬 다양한 캐릭터들을 만들어내는 데 성공했다. 평범한 시골 사람들과 경찰, 악마와 도사, 살인자와 귀신 들린 사람들, 나아가 보이지 않는 소문과 영(靈)들, 그리고 제각기 상징을 지닌 동물들에 이르기까지 온갖 캐릭터들이 살아있다. 그들 중 몇몇은 입체적인 변신을 시도하기도 한다. 평범했던 사람이 악의 영향을 받아 좀비스럽게 변하기도 한다.


<곡성>을 다 본 후라면, 마치 장기전까지 이어진 힘겨운 접전을 치른 듯한 피로를 느낄 수도 있을 것이다. 영화는 디지털게임과 같다. 감상자들도 게임의 주인공으로 끌어들이는 이 영화. 영화값을 지불했다면, 우리는 온 신경을 기울이고 이 미스터리 게임의 출전 캐릭터가 될 준비가 됐다는 뜻이다. 아직 섣부르지만, 필자는 <곡성>이 올해 가장 흥미진진한 국내영화로 자리매김될거라 예상해본다.

매거진의 이전글 영화 <시 詩>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