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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여름에도 서늘한 곳,
강원도 대관령 '눈꽃마을'

삶이 우리에게 선천적으로 주어진 여행길이라면, 우리는 그 장기간의 여행길들 중 단거리의 여행길을 능동적으로 선택할 수 있다. 여행은 누가 어떠한 시기에, 어떠한 마음가짐으로 떠나느냐에 따라 같은 장소로 향할지라도 그 의미가 달라진다.


지난 여름 태양이 몹시 뜨거웠던 주말, 휴식의 목적을 안고 강원도 대관령 눈꽃마을로 향했다. 수많은 여행장소들 중 내가 특별히 이곳을 택한 이유는, 반복되는 일상에 염증을 느껴왔던 터라 도심에서 벗어나 자연이라는 수영장에 ‘풍덩’ 뛰어들고 싶었기 때문이다. 초록과 푸름에 대한 경외에 늘 사로잡혀는 있지만, 현실에서는 그것들과 가까이 할 수 없었기에 욕망만 안고 있던 터였다. 나는 이따금씩 자연이 눈을 통해 들어와 머리와 심장을 정화시켜주는 공간을 찾아 훌쩍 떠나곤 습관이 있다. 그것이 내겐 ‘힐링여행’이다.



여행은 목적에 따라 홀로 가는 편이 좋을 때도 있고, 가족이나 친구와 함께 할 때가 좋기도 하다. 하지만 나의 눈꽃마을 여행은 오롯이 나만을 위한 여행길이었다. 혼자만의 여행은 ‘성장’의 여행이기도 하다.


홀로 떠나는 여행길은 ‘자유’라는 책임감을 껴안은 홀가분함을 선사하는데, 자신이 정해놓은 시간 동안 자유로이 발걸음을 옮기고 시선을 둘 수 있다는 것이 혼자 떠나는 여행의 장점이라면 장점이지 않을까? 그 어떤 누군가의 권유도 없이, 정해진 규칙도 없이 오롯이 나의 발걸음에 따라 평창 눈꽃마을로 향했다. 그곳으로 향하는 고속버스 창 바깥으로 펼쳐진 하늘과 병풍같이 이어진 녹음의 향연이 그간 잃었던 감탄의 표현을 깨웠고 그렇게 표현함으로써 일상의 답답함으로부터 정화되는 기분을 만끽했다, 고속버스 탑승으로 인해 평소보다 조금 더 높은 위치에서 맞을 수 있었던 태양볕이 선사하는 따스함은 마치 엄마의 품처럼 따스하고 포근했다.

영생하는 자연은 늘 세상에 잠시 머물렀다 사라지는 인간을 감싸 안아주는 부모와 같다. 우리는 그 넓고 한결같은 품 안에서 다양한 모습들로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대자연 아래에서는 우리가 한낱 미물에 지나지 않다는 것도 여행을 통해 절감할 수 있었다. 그렇게 자연 위를 달려 마침내 목적지에 발을 내려다 놓았다.



막상 평창이라는 곳에 도착하니, 설렘만큼이나 두려움이 나를 휘감았다. 자유가 주는 홀가분함보다 책임감의 저울이 더 기운 순간이라고나 할까? 하루 간의 여행을 계획했던 나는, 이곳의 공기에 매료돼 1박을 하기로 결심했다. 숙식문제를 해결해야 하는데 구멍가게조차 보이질 않는 이곳에서 ‘어떻게 이틀을 보내야 할까’라는 근원적인 걱정에 사로잡혔다. 먹을 것에 대한 고민은 차치하고, 당장 몸을 뉘일 곳을 찾는 것이 급선무였다. 스마트폰의 힘을 빌어 즉석으로 숙박장소를 찾았다. 바로 눈꽃마을 마을회관에서 운영하는 펜션. 이장님 관리 하에 운영되는 곳인데, 나의 현 위치를 알려드렸더니 픽업서비스까지 제공해주셨다. 어디 그뿐이랴? 초행길에 오른 나를 위해 대관령 양떼마을까지 동행하시며 산행 도중 보이는 고산지역 식물들에 대한 친절한 설명까지 해주셨다. 심지어 저녁 땐 허기진 나를 염려하시어 손수 고기까지 구워 흰 쌀밥 위에 올려주셨다. ‘시골의 인심’에 대해 익히 들어는 왔지만 애석하게도 도심 속에서는 자연스레 잊혀졌었다. 가족과도 떨어져 지내는 나로서는, 이러한 일상적이지만 선심과 정성으로 가득한 밥 한끼를 제공받으니 괜히 가슴이 뭉클해졌다. 밥상 앞에서 눈물을 흘리면 이상한 사람이 될 테니 촉촉해진 눈가를 눈웃음으로 변장시켰는데, 다시 생각해봐도 그때의 감정상태는 ‘감격’이었다.



여름철에도 선풍기나 에어컨이 필요 없다는 눈꽃마을은 믿기 어렵겠지만 한낮의 태양볕을 완전히 잊게 만들 만큼 선선한, 아니 조금은 차가운 밤공기를 뽐냈다. ‘태양과 함께 한 한낮의 시간들이 완연히 잊히는 건 아닐까’라고 느낄 정도로 밤공기는 시원하고 쾌청했다. 서둘러 숙소에 들어가게 만드는 저녁공기 덕에 나는 준비해 온 책 <월든>을 읽기 시작했다. 자연과 벗삼아 자연주의 책을 읽다 보니 자연스럽게 잠에 들었다.



이튿날 아침, 새들의 지저귐에 유독 내 귀를 두드려 일찍 잠에 깼는데 다양한 새들이 내는 앙상블을 벗삼아 한참을 잠자리에서 벗어나질 못하고 그들의 선물을 온 몸으로 반겼다. 자연에 귀 기울이는 법을 그때서야 비로소 처음 느꼈다.


비록 짧은 기간 동안 거창하게 즐긴 것도 없던 여행이었으나, 자연이 선사하는 기쁨과 시골인심의 감격 등을 느낄 수 있었던 눈꽃마을로의 여행. 뱀이 허물을 벗으며 성장하듯, 그을렸던 피부가 제 색을 찾아갈 때쯤 느꼈다. 나의 성장을, 홀로 떠나는 여행이 주는 최상의 가치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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