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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스다 미리 에세이 <최초의 한입>

'나의 최초의 한입 시절로 돌아가 보자'


누구에게나 있다. 어떤 먹거리를 최초로 접했을 때 말이다.

무엇이 됐든 '처음'이라는 것은 가슴 설레는 순간이다. 이 가슴 설렌다는 의미는 다양한 감정을 아우른다. 맛있어보이는 것을 오감으로 직접 경험할 수 있다는 데에서 오는 기대. 거기에 낯선 것에 대한 용기와 두려움도 포함된다.


사실, 우리가 보편적으로 먹고 있는 쌀밥을 처음 접했을 때의 기억은 모두에게 뚜렷하지 않을 것이다. 타의에 의해 최초를 경험했을 테니까. 그 외, 큰 카테고리. 가령, 과일이나 채소, 고기, 우유 등을 처음 맛 봤을 때의 기억은 뚜렷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시중에 나와 있는 먹거리. 그러니까 내가 직접 먹거리를 선택하고 그것을 접하기 전. 중. 후에 느꼈던 감각들은 개인에게는 특별한 추억일 것이다. 언제, 누구와, 어떠한 상황에서 먹었는지에 따라 최초의 한입은 나의 역사가 된다. 또한, 그 먹거리에 대한 호불호가 결정되는 중요한 순간이 되기도 한다.


마스다 미리가 기록한 그녀만의 최초의 한입은 역시나 세밀하다. 그녀의 기록들은 온전히 그녀의 것이지만, 솔직한 자기고백 덕분에 읽는 이들 또한 솔직하게 자신의 과거를 되돌아보게 만들어준다. 사실, 최초의 한입의 순간을 일상에서 떠올리기란 쉽지 않다. 대화를 할 때나 글을 쓸 때 그것이 소재가 됐을 경우에나 곰곰이 과거를 떠올려 보는 정도일 것이다. <최초의 한입>은 먹거리에 대한 첫만남을 회상하게 만들어주는 고마운 책이다.


지금은 먹거리들이 너무나도 많다. 그 수많은 먹거리들 중 작가가 선택한 것들에는 그녀의 추억이 깃들어 있다. 낫토를 처음 접했을 때, 용감하게 도전했지만 결코 맛이 없다는 걸 체감했을 때의 상황을 기록한 부분에서는 소리 내어 웃을 정도로 재미있었다. '나는 그날, 아버지 앞에서 낫토를 먹고 어떻게든 맛있다고 말하고 싶었다. 아버지가 먹지 못하는 것을 먹어서 아버지를 이기고 싶었다. 어린 나에게 아버지는 절대적인 존재였다. (116쪽)' 작가에게 있어 낫토에 대한 최초의 한입은 아버지와의 (암묵적인) 자존심 대결 상황이었던 것이다.


먹거리들 중에는 '일정한 때'가 되어서야 접할 수 있는 것들도 있다. 술·담배 등은 명확하다. 술을 접한 최초의 경험! 아마 이 때는 많은 이들이 그 상황을 정확히 기억하고 있을 성싶다. 나 또한 작가가 처음 술을 접했을 때의 상황과 거의 비슷하다. 여자들이라면 대부분이 공감할 것이다. 집 안에서가 아닌 바깥에서 처음 술을 접했던 기억. 술에 대한 호기심이 불탔던 10대 후반. 어른처럼 보이기 위해 과장된 화장과 옷차림을 하고 당당한 척 술을 파는 가게에 들어갔던 기억. 하지만, 작가도 고백했듯이 어른들의 시각에서는 '누가 봐도 어리숙한 10대의 일탈'로 보였을 것이다. 대개, 소풍 때 친한 친구들이 모여 술을 마시러 가는 경우가 많다. 부끄럽게도 나는 그날의 옷차림까지도 명백히 떠오른다. 올 블랙 패션. 10대에겐 도무지 낯선 세미 정장 차림의 나. 헤어도 일부러 웨이브를 주고, 장신구도 지나치게 과하게 했었다. 돌이켜보면, 촌스러웠는데 그래서 더 귀여웠다고 생각한다.


커피와 홍차에 대한 기억 또한 기록돼 있다. 작가가 고백했던 것처럼, 나 역시 커피를 좋아해왔고 지금도 좋아한다. 앞으로도 커피와의 인연은 지속될 듯 하다. 하지만 커피껌은 도통 나의 입맛에 맞지 않았다. 식감도 다른 껌들과 달리 탄력도가 떨어졌다. 그래서 '단물만 쏙 빼먹고 뱉어버린' 것이 커피껌이다. 작가도 이와 비슷한 고백을 해서 공감하며 읽었던 부분이다. 그리고 홍차에 대한 기억. 작가는 '초조함과 느긋함 사이에서 마시는 오후의 홍차는 청춘의 맛, 그 자체였다. (69쪽)'고 고백했지만, 글쎄 나는 청춘의 맛임은 잘 모르겠다. 우유가 더해진 밀크티나 그와 비슷한 차이(짜이)는 부드러운 풍미 때문에 좋아하지만, 홍차는 내가 좋아하는 음료는 아니다. 하지만 '어른의 맛'임은 맞는 듯 하다. 왠지 우아한 느낌을 준다고나 할까. 내게 있어 홍차는 청춘의 맛이라기 보다는, 중년의 맛이다.


그리고 수많은 간식거리들도 단연 기록돼 있다. 초콜릿, 아이스크림, 에클레르 등을 처음 마주한 순간들. 다행히도 일본의 간식거리들은 우리나라에서 만나볼 수 있는 것들과 비슷해서 공감하며 읽을 수 있었다. 어릴 때 초콜릿을 한꺼번에 많이 먹으면 코피를 쏟을 수 있다는 어머니의 말에 조금씩밖에 먹지 못했던 초콜릿의 아쉬움에 대한 다짐. '나는 절반밖에 못 먹는 어린이인 자신이 너무 안타까웠다. 어른이 되면 초콜릿을 잔뜩 먹을 거야! 그렇게 다짐했건만, 거칠어지는 피부와 체중 증가 등 초콜릿을 먹으면 뒤따르는 여러 문제들 때문에 어른이 되었다고 마음껏 먹을 수 없는 현실이 안타까울 뿐이다. (37쪽)' 그저, 이 문단에 대해서는 전적으로 공감! 하지만 나는 여전히 초콜릿을 사랑한다. 다이어트를 할 때에도 초콜릿 한 입(두 입, 결국 그 이상)은 절대 포기할 수 없었을 정도로 말이다. 그리고 간식거리에 대한 '감동적인 추억'도 기록돼 있다. '엔젤파이'라는 것이 있는데, 작가에게 그 간식은 우정이 깃든 먹거리였다. '개구쟁이에게 착한 마음이 들게 한 엔젤파이. 진정한 천사의 과자가 아닌가. (19쪽)' 내게도 친구의 우애가 깃든 달콤한 간식거리들이 있다. 더 먹고 싶은 욕구를 억누르고 나와 나눠먹기 위해 인내심을 발휘했던 소중한 친구를 떠오르게 만들었던 문장이다.


마스다 미리는 내게 '언니 같은' 존재다. 직접 만나보지는 못했지만, 왠지 자주 만나 수다를 떠는 가까운 사이 같은 친숙한 느낌. 그녀의 모든 책들을 다 읽은 나는 괜스레 그녀에게 미안한 마음도 든다. 그녀의 가치관과 생활들을 일방적으로만 너무 알아버린 탓에 가끔은 죄책감이 들기도 한다. <최초의 한입> 덕분에 나 또한 먹거리에 대한 추억여행을 할 수 있어서 좋았다. 작가의 에세이에서 빠질 수 없는 만화. 이번 책에서도 여전히 등장한다. 특히나 '추억의 과자'라면서 창의적으로 과자 먹는 방법들을 그려낸 것은 방에 진열해놓고 싶을 정도로 공감대를 자극했다. 독자들에게 먹거리에 대한 추억여행을 떠나게 만들어주는 책 <최초의 한입>. 이 책의 장르를 '여행서적'으로 둬도 좋지 않을까, 하고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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