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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기의 모성애를 담은 영화
<비밀은 없다>

<비밀은 없다>에는 세상 모든 이야기들이 담겨 있다. 개인과 가족, 나아가 사회 문제까지 아우르는 이 영화는 오락성보다는 사건에 대한 추리, 그와 함께 이동하는 캐릭터들의 내면에 집중한다. 정치인 '종찬'과 그의 아내 '연홍'은 선거 준비로 바쁘다. 본격적인 선거 운동을 시작할 무렵, 갑자기 딸 '민진'이 실종된다. 딸의 실종에도 불구하고 선거에 타격을 입을까봐 신고조차 하지 않는 종찬. 그의 신경은 오로지 선거 운동에만 집중돼 있다. 그런 그에게 연홍은 분노한다. 그리고 딸은 변사체로 발견된다. 이때부터 연홍의 광기가 시작된다.


딸을 잃은 엄마. '슬프다' '고통스럽다' 따위의 단어로 표현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할 터. 딸과 가장 친했던 친구에서부터 담임 선생님에 이르기까지 용의자들을 직접 찾아다니며 직접 수사를 감행하는 연홍. 사실과 의심을 오가며 어떻게든 딸의 사건을 파헤쳐보겠다는 엄마의 마음과 행동은 무모하고 척박해보이지만 이해는 간다. 물론 나는, 엄마도 아니고 누군가를 끔찍한 사건의 희생자로 잃어본 적도 없다. 하지만, 광기의 주체가 된 적은 많다. 물론, 연홍이 처한 상황과 그녀의 심경과 동일한 경험은 아니었지만 그녀의 입장이 되어 영화를 감상해나갔다.


미칠 노릇이다. 아니, 미쳐가는 게 자연스러운 상황이다. 예상을 빗겨나가면서 의심은 또 다른 폭력을 낳는다. 개인의 잘못된 판단은 가해자 아닌 이들에게 상처를 입힌다. 딸을 죽인 자에게 복수를 결심한 엄마는 그렇게 다양한 사람들에게 생채기를 남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행동이 이해되는 건 왜일까? 이것이 바로 모성애다. 극단의 상황에서 발휘되는 모성애는, 때로는 무모하고 나아가 광기에 이를 수 있다. <비밀은 없다>는, 이 광기 서린 모성애를 말하고 있다.


연홍의 모습을 보면, 영화 <마더(봉준호 감독, 2009)>의 엄마가 연상된다. 그녀들은, 엄마라는 이름 하나만으로 자식을 위해 내면의 악(惡)을 끄집어낸다. 딸의 죽음에 대한 복수를 감행해나가는 과정에서 영화는 다양한 사회 문제들도 함께 다룬다. 사회적 지위에만 연연할 뿐, 가장으로서의 역할은 최악인 아버지와 그가 이끄는 가정의 불화, 정치계의 문제, 불륜, 학생들 간의 집단 따돌림 등 영화는 온갖 문제적 소재들을 끌어모아 영화의 궤를 짜맞춰나간다. 그렇다고 악만 다루는 것은 아니다. 어찌됐든 민진에 대한 연홍의 사랑은 모성애이며, 민진의 단짝친구와의 우정도 뼈속깊이 느낄 수 있다.


<비밀은 없다>는 잘 짜여진 시나리오와 탄탄한 구성이 돋보이는 영화다. 어쩌면 복잡할 수 있는 구성을 탄탄하게 만들어주는 배우들의 열연도 돋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중들의 사랑은 받지 못하고 있다. 이유는 오락성의 결여에 있다. 미스터리·스릴러 장르가 주는 어둡고 무거운 분위기는 연신 이어지지만, 아쉬운 점은 긴장감의 요소가 부족하다는 것이다. 오로지 내러티브에만 집중해야 하기에, 102분이라는 길지 않은 러닝타임에도 불구하고 지루함을 느끼는 관객들이 많을 것이다. 흥행력은 '글쎄'이지만, 연출력은 '인상적'인 작품. 감독의 차기작이 기다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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