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블루 재스민>

불쌍하고 처량해서 안아주고 싶은 그녀, 재스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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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블루 재스민>에서 재스민은 뉴욕의 고급 아파트에 살며 전용 수영장에서 수영을 즐기고 화려한 파티와 명품으로 채워진 삶을 사는 최상류층 부인이다. 신분상승을 꿈꾸며 부유한 이혼남이었던 남편과 결혼해 마음껏 사치를 누리던 그녀는 어느 날 남편의 외도를 알게 되고 사업마저 파산한다. 졸지에 빈털터리 신세가 되고 마는 재스민. 몇 걸음만 나가도 명품 매장이 즐비한 고급 주택가에서 차이나타운의 허름한 뒷골목으로 하루아침에 삶의 터전이 바뀌어 버린 그녀에게 인생은 빨리 깨어나고 싶은 악몽일 뿐이다. 마트 계산원으로 일하는 여동생과 그녀의 일용적 남자친구를 루저라고 생각하지만 현실은 그들과 함께 밥을 먹고 같은 집에서 살며 신경 안정제와 술로 하루하루를 버티는 방법밖에 없다. 그녀는 에르메스 백과 샤넬 재킷으로 그들과 자신을 구별하려고 하지만 그럴수록 자신의 처량한 처지만 더욱 부각된다. 재스민은 울부짖는다. "얼마 전까지 파티를 주최했던 사람이 지금은 신발 사이즈나 재고 있다고!"


재스민이 불행한 진짜 이유는 가난해졌기 때문이 아니라 화려했던 과거에 비해 현재가 너무나 보잘것없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뉴욕에서 가장 화려하게 살던 사람 중 하나'였던 자신이 명품이 뭔지도 모르는 사람들의 비위를 맞추며 돈을 벌어야 한다는 사실을 도저히 받아들일 수가 없는 것이다. 그녀는 끝내 현실을 거부하고 거짓말로 자신을 그럴듯하게 포장한 채, 상류사회로 데려다 줄 조건 좋은 남자를 찾아 나선다. 그렇게 하지 않고는 추락한 자신의 가치와 인생을 복구할 수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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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과연 그녀는 '진짜' 행복했을까? 위트있는 풍자에 탁월한 감독, 우디 앨런은 상류층 여인을 결코 우아하고 품격있는 캐릭터로 설정하지 않는다. 재스민은 대놓고 사기를 당하는 우둔하고도 가여운 여성이다. 물적으로 상대와 자신을 '비교'하기 좋아하는 그녀는, 물질을 잃어버렸을 땐 자존감까지 잃고 만다. 스스로 '잘난' 삶을 살아갔다고 믿었을 때도, 자신감에 차올랐던 인물은 자스민 본인 뿐이다. 그녀의 모습들을 지켜보는 스크린 안팎의 사람들은 그녀에게 혀를 내두르거나 연민을 표할 것이다.


재스민이 잃은 것은 돈, 집, 명품 등 물질적인 것만은 아니다. 가족, 사랑하는 이 등 더 소중한 '사람들'일 잃었다. 더불어, 꿈도 열의도 잃었다. 아니, 애초에 잃을 것이나 있었는지도 모호하다. '나는 누구인가'에 대해 자답하기 힘들 정도로 그녀는 자신의 참모습을 모르며 살아왔다. 타인에게 비춰지는 겉치레에만 신경쓰며 살아왔던 것이다. 결국 '모든 것이 무너진' 재스민의 삶. 밝고 화려한 배경에 값진 소품들로 치장해도 재스민이 풍기는 우울감과 허망함은 숨길 수가 없다.


우디 앨런 감독 특유의 위트와 풍자는 <블루 재스민>에서도 한껏 발휘된다. 땀과 눈물로 찌든 재스민의 모습을 담아내는 엔딩신은 특히나 착잡한 느낌을 전달한다. 두 번, 세 번을 봐도 좋은 작품. 자존감을 잃은 채 타인에게 의존적으로 살아온 여성, 혹은 그런 생각을 한 번이라도 해본 적 있는 여성들에게 일침을 가하는 영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