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스다 미리 에세이 <뭉클하면 안되나요> 중에서 '공감 100%'했던…
나는 한 권의 책을 읽으면서 한 남자와 함께 있었다.
재미있습니다, 라고 해서 빌린 책.
그래요? 읽어볼게요, 하고 갖고 와서 이불 속에 뒹굴며 읽고 있은
그가 따라붙어 떠나지 않는 것이다.
책장을 넘기니 이따금 밑줄을 그어놓았다.
볼편으로 그은 거친 선.
나도 곧잘 밑줄을 그으며 책을 읽어서 기분은 안다.
그러나 그 책은 누구에게도 빌려주지 않는다.
어디서 마음이 끌렸는지 알려지는 게 쑥스럽다.
내 내면을 내보이는 것 같다…….
그의 책 책장을 넘기다보니, 나도 모르는 사이 그가 그은 밑줄을 기다리고 있었다.
앗, 여기에.
앗, 여기도 있네.
밑줄을 그을 때 그의 눈동자 움직임이 나와 포개져서 두근거린다.
빌린 책은 건전한 화학책인데 불건전한 독서.
짝사랑하는 사람을 역에서 남몰래 기다리는 듯한 그런 애잔함.
다 읽고 나서도 내용이 전혀 머리에 들어오지 않았다.
어떡하지, 이게 사랑으로 발전하면.
걱정하면서 책을 돌려주고 나니,
아ㅡ무런 감정도 없다.
책을 들고 있을 때만 훈훈하고 가슴 뭉클한 시간이었다.
- 책 <뭉클하면 안되나요> 210, 211쪽(마스다 미리 지음/이봄)
아니, 공감 수준이 아닌, 내가 마스다 미리가 된 기분!
같은 책을 읽는다는 것 자체부터
누군가와의 '교감'은 시작된다.
책의 저자, 그리고 같은 책을 읽는 사람들은 마치 한 테이블을 둘러싼 동행인과 같다.
그래서!
같은 책과 연결돼있다는 이유만으로도 괜스레 설렌다.
나도 누군가의 책을 빌려 읽은 적이 있었다.
그 사람이 밑줄을 그은 부분은 이상하게 주의깊게 읽게 되더라.
괜히, 그 부분은 '인상적인' '잊어서는 안 되는' 귀중한 문장처럼 느껴진다.
나도, 철저히 내가 갖겠다, 다짐한 책들에는 온갖 정성을 기울인다.
밑줄을 긋고, 책갈피를 끼워두는 탓에 그것을 덜어내도 그 부분은 틈이 생긴다.
마스다 미리 작가처럼, 내 내면을 내비치는 듯 느껴지기 때문에,
거기에, 타인에겐 손때묻은 책을 빌려주는 게 쑥스러워서
흔적을 남긴 책들은 좀처럼 (빌려)주지 않는다.
독서 취향이 비슷하고,
게다가 좋아하는 문체나 인상깊었던 부분이 어림 같은 사람.
왠지 나와 잘 맞을 것 같다는 생각에 '뭉클', 그리고 '두근'.
일순간이라 할지라도, 동감과 공감은 마음 한 켠을 조금 더 양보하게 된다.
- 2016.07.31. 7월의 마지막날, 일요일. 이날마저 나는 설렘을 안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