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힐링영화 <하와이언 레시피>

당장 하와이안행 티켓을 끊고싶게 만드는 영화


일본 특유의 느린 감성의 영화를 좋아한다. '힐링영화'라 불리는, 잡념들에서 벗어나 편안하게 마음의 휴식을 허락하는 영화들 말이다. 번잡한 도심에서 벗어나 대자연 안에서, 간소하지만 허기와 마음을 든든히 채워줄 음식들을 즐기는 영화 속 주인공들에게 감정이입을 하노라면 마치 내가 그 장소에 있는 듯 착각하게 된다. 실질적으로 내 몸이 그곳으로 향할 수 없을 때, 힐링영화들은 대리만족을 선사한다. 여행에 대한 욕구 뿐만 아니라, 내면의 안정감도 전해받을 수 있다.


<하와이언 레시피 Honokaa Boy, 2009>는 이번 감상이 세 번째다. 같은 영화라도 다른 시기에 감상하면 다른 감흥을 느끼는 경우가 많은데, 이 영화는 한결같다. 변치않는 자연 같은 느낌을 지닌 작품이다. 편안함 위에 배어있는 소소한 위트들이 감상의 재미를 전해준다. 거기에 사랑과 감동, 나아가 기적과 성장의 메시지도 안고 있으니, 뭐, 이만하면 '좋은 영화' 아닐까?


여자친구와 '달무지개(moonbow)'를 찾기 위해 하와이 북쪽에 위치한 호노카아 마을을 찾은 레오. 하지만 애타게 찾아도 달무지개를 발견하지 못한 그들은 여행에 지치고 만다. 결국 여자친구와 이별한 레오는, 다른 방향의 삶을 체험하기 위해 호노카아에 머무르게 된다. 레오는 작은 영화관에서 영사일을 하며 마을에 적응해나간다. 노인들이 대부분인 작은 마을. 하지만 주민들은 하나같이 '강한 개성'을 지니고 있다. 캐릭터의 독창성. 일본 영화들이 지닌 강점이라 볼 수 있다. 한 명씩 소개되는 주민들의 개성을 보는 것만으로도 <하와이언 레시피>는 충분히 재미있다. 늘 잠만 자는 사람들, 멍하게 앉아있는 여인. 이들이 무슨 특징이 있겠냐만은, 나름의 개성은 확고히 지니고 있다. 그들은 분명, 스스로의 개성을 모르겠지만 지켜보는 레오와 우리들만이 아는 '재미있는 개성'이 있다.


비 씨가 레오에게 차려준 정성 가득한 밥상



레오와 가장 깊은 연을 맺은 인물은, 요리 잘 하는 노인 '비' 씨다. 우연히 비 씨가 만든 고양이밥을 먹고 반한 레오. 고양이밥에 흡족해하는 레오에게 비 씨는 매일 '사람이 먹는 저녁밥'을 해주겠다고 약속하고 그로부터 둘의 인연은 깊어지기 시작한다. 그녀는 남편을 여읜 후 외로이 살아가는 여인이다. 물론, 그녀에게는 밥을 지어줄 고양이가 있지만 '사람이 고프다'고 고백할 만큼 외로운 여인이다. 그녀에게 레오는 '외롭지 않느냐'고 질문하는데, 비 씨는 "사람은 모두 혼자예요. 그래서 사람들 옆에 꼭 붙어있고 싶어요."라고 말한다. 비 씨를 비롯해, 마을 주민들 대부분이 홀몸이다. 부인이나 남편을 여읜 이들을 비롯해 구체적인 연유는 드러나지 않지만 홀로 살아가는 '외로운 사람들'이 모여사는 곳이 레오를 둘러싼 호노카아 마을의 풍경이다. 하지만 이들은 개인의 시간을 보내거나 타인과의 접촉을 통해 그들만의 삶을 채워나간다. 표면적으로는 외로워보이는 사람들이 모여있는 곳이지만, 사실상 이곳은 외로움과 거리가 먼 장소다. 이 마을 사람들은 죽으면 바람이 된다고 한다. 죽어서도 마을과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치는 이들. 없어서는 안 될, 공기 같은 존재감을 갖춘 주민들의 정이 여기까지 전해진다.


한편, 시력을 잃었음에도 레오를 만난 후 처음으로 달무지개를 봤다는 비 씨. 기적은 '마음 속'에 존재한다는 걸 재인식시켜주는 장면이다. 내면의 기적! 어쩌면 비 씨는 레오와 깊은 사랑에 빠져있었던 건 아닐까?





호노카아 마을은 자연색이 고스란히 배어있는 곳이다. 푸른 빛과 색을 띤 풍광 위에서 여유로운 생활을 만끽하는 주민들. 혹자에겐 따분하게 느껴질 수도 있을 만큼 느긋함이 배어있는 곳. 레오는 과거를 추억하며 다시 호노카아를 찾는다. 레오의 추억을 따르다보니, 나도 호노카아로 향하고 싶다는 충동에 휩싸였다. 그곳이라면, 모든 걸 내려놓아도 불안이나 걱정 따위가 나를 지배하지 않을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완전한 휴식을 가능케 만들어줄 것만 같은 곳. 내가 그곳에 간다면, 영화 속 캐릭터들이 그랬던 것처럼 넉넉한 인심과 특유의 위트를 갖춘 주민들이 반갑게 맞아줄 것만 같다. 달무지개를 찾아 떠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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